-
-
율리시스 1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9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평점 :
-20260830 저자: 제임스 조이스.
집에 표지가 시커먼 ‘율리시스’가 있다. 내 것이 아니라 엄마가 디지털대학 문창과에 다닐 때 산 것이고, 읽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발목 인대가 파열되었을 때 그 책을 발받침대로 썼다.
두껍기만 한 걸 뭐. 남들이 우와 새로운 문학 어쩌고 이러면 괜히 피했었다. 그런데 ‘나보코프 문학 강의‘를 읽다가 나보코프 선생에게 낚였다. 강의를 하기 위해, 강의록을 쓰기 위해, 아니면 진정 재미있어서, 나보코프는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친절하게 나보코프 선생은 줄거리와 책 속 문장과 자신의 해석을 비등비등 적어 주었다. 그렇게 나한테 ‘율리시스’ 영업을 했다. 나는 그의 수강생은 아니므로 읽기 숙제 따윈 없었다. 그런데 발받침 말고 또다른 번역본이 비교적 최근 나온 걸 알게 되었다. 그럼, 이건 긴 여정일테니 시시때때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하고 전자책을 샀다.
오디세이가 열풍인 시기에 율리시스1권을 일단 마쳤다. 1권이라니. 2권이 남아있다니. 해도 졌고 하루가 저물었는데(다 읽은 건 정오 무렵이긴 한데, 소설 후반부에서 해가 졌으니 저녁 8시께라고 블룸이 추측해서 시간을 알려줬는데.) 뭐 더 할 말이 남은 것인가. 아아.
어느 땐 내가 이걸 휴대전화랑 태블릿 번갈아가며 병원 대기실 같은 데서 드문드문 읽으니까 파편처럼 보이는 걸지도 몰라, 했는데, 1권의 후반부를 진득하니 앉아서 이어서 읽어보니 어떻게 읽든 상관없었다. 그냥 적당히 뒤죽박죽이다. 귀찮아서 미주를 안 봤더니(일부만 보고 나중에 책 다 본 후에 끝에서 훑어봄) 더 그랬겠다. 운율, 말장난, 그런 걸 친절한 번역가 선생님이 각주로도 달아 설명해주셨는데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도 친절한 각주에도 불구하고 다 읽는데 8년 쯤 걸렸었나. 이번엔 이 정도면 신속했다.
1권 끝, 나보코프 선생이 말하는 2부 10장(내 책에서는 13장)까지 읽었다. 나보코프 선생 말로는 내가 읽은 번역본처럼 장마다 오디세이와 관련된 제목이 붙은 판 때문에 사람들이 온갖 개소리 같은 해석을 내놓아서 조이스가 그 제목들을 다 지워버리고 다음 판을 냈다고 주장했다. 뭐 그랬다는데 이 책에서는 세이렌, 키클롭스 그런 게 살아 있다.
읽다가 아 이게 맞나요, 내가 영업 당한 이 책이 맞나요, 하고 중간에 ‘나보코프 문학 강의’를 펼쳐 다시 읽기도 했다. 다는 아니고. 그런데 같은 책인지 모르겠더라. 1권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나보코프를 넘겨보니 이제 좀 짝패는 맞출 정도, 이 장면 기억나지, 그 정도까지 읽었다. 읽었냐. 넘겼다. 읽는 내내 남은 페이지 수를 얼마나 자주 흘깃댔는지.
스티븐은 초반부에 나오고선 찾기 힘들었다. 아일랜드의 너저분한 아저씨들이 블룸이 쏘다니는 곳마다 널려 있다. 아주 잠시 누군지 모를 화자가 술집에서 대화에 참여하며 관찰하고 빈정거리기도 하고, 3인칭인 척 1인칭에 가까운 해변의 아가씨 시점을 가장한 아저씨 시점도 있었다. 어절마다 어쩌고, 섹스, 저쩌고, 섹스 이렇게 안 쓴 거 보면 내내 그 생각만 한다더라 하는 말이 늘 그렇진 않은가 했다. 그렇지만 블룸의 대가리 속은 저렇게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불쑥불쑥 성에 대한, 아내 몰리에 대한 회상들이 스쳐간다. 블룸은 몰리가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한다고 생각하며 이곳저곳 다니면서 하루를 보낸다.
오쟁이 진다는 말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번역본에서 처음 봤다. 멀리 보면 처용가부터 이상의 ’날개‘도 그렇고 최근에는 박찬욱 영화까지 다 나열하기 구차할 만큼 많은 작품들이 같은 소재를 변주한다. 주제일 수도 있고 이야기 속에 곁다리로 나오기도 한다. 주로 남자 문학가들이 소재로 쓰는 영역인데, 그게 남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일까 싶었다. 이 소설 속 블룸의 분노도 두려움도 슬픔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의 바깥 상황과 뇌내 망상, 회상, 잔상, 거기에 감정은 거의 없다. AI처럼 줄줄 읊고 있다. 사람이 생각보다 조리있게 완성된 서사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은데, 아, 사람은 저렇게 쓴 것처럼 사고하지도 않는다, 싶었다.
두꺼운 책을 약간 겁낸 적이 있었는데, 꾸역꾸역 어떻게든 끝장을 본 책이 늘수록 이제 두께는 책 고르기에 중요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그점이 좋다. 그거 말고는 뭐 분량 상관없이 재미있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런데 두꺼울수록 지루한 위기 구간을 좀 더 자주 만날 가능성은 있다. 그래서 율리시스2권은 다음이 궁금하기도 하고, 내내 이럴 거냐, 더 재미없어질 거냐, 뭐 그런 복잡한 마음이라 천천히 틈틈이 봐야 겠다.
+밑줄 긋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우리 어머니에 대한 모욕이 아니야.
-그럼 뭔데? 벅 멀리건이 물었다.
나에 대한 모욕이지, 스티븐이 대답했다. (나보코프 책에 인용된 부분에도 똑같이 밑줄을 그었다는 사실. 패륜 개그에 약한 나)
-못나고 모자라: 가냘픈 목에 숱 많은 머리에 달팽이 살 같은 잉크 자국. 그래도 누군가는 저 아이를 사랑했고 낳아서 품안에도 품고 마음속에도 품었겠지. 그런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저 아이를 발로 짓밟아 뼈도 없는 달팽이처럼 으깼으리라. (대놓고 뼈를 때리는데 너무 잔인할 정도로 인간 혐오다.)
--우린 관대한 민족이지만 동시에 정의도 지켜야 한다네.
-그런 거창한 말이 전 두렵습니다, 스티븐이 말했다, 우리를 아주 불행하게 만들거든요. (정의는 공정을, 그리고 불행을.)
-역사는, 스티븐이 말했다, 제가 깨어나려고 애쓰는 악몽입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 골. 그 악몽의 뒷발에 걷어차이면 어쩌지? (스티븐의 말이 계속 마음에 들었나 보다.)
-까마득한 옛날에 사라진 한 사람이 쓴 이런 신기한 책장들을 읽다보면 누군가와 하나가 되는 느낌을 갖는데, 그 누군가는 한때 ...... (독자에게 그렇게 하나가 되자 하고 있다.)
-그래, 내 자리는 지금 여기야. 암, 지금 여기고말고. 아침의 입 탓에 나쁜 이미지만. 꿈자리가 사나웠는지. 그놈의 샌도 아령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어. (3월에 그은 밑줄인데, 고작 아령 나왔다고 그은 거냐?)
-우리의 수의. 우리의 죽은 몸을 누가 손댈지 우리는 결코 모른다. 몸 씻기고 머리 감기고. 분명히 손톱과 머리카락도 자를 것이다. 약간은 봉투에 보관하고. 그래도 나중에 또 자란다. 궂은일이다. (생전에 시신 기증 서약을 하면 결코 까지는 아닐 것 같다.)
-젊을 때 소망하는 것을 조심하라, 어차피 중년에 구하게 될지니. (오히려 젊을 때 소망이 없는 것을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중년에 구할텐데)
-놈들의 문명이란 문명은 죄다 우리한테서 훔쳐간 거야. 잡놈 귀신의 혀짤배기 자식들. (이 말하는 아일랜드인은 영국을 증오하면서 동시에 유대인도 증오한다. 뭐 그렇다고…)
-그런 부류의 사람, 그러니까 저 너머 도더 강변 홍등가에서 처녀의 명예를 존중할 줄 모르고 군인들이나 천박한 남자들과 어울리면서 여성의 품격을 깎아내리다 경찰서로 끌려간 타락한 여성들을 혐오했다. (이런 장면과 사고 어디서 봤는데, 하고 겨우 생각해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 ‘율리시스’는 1922년 2월 2일(조이스의 생일)에 출간되었다고 하니까 이런 생각은 최소 25년 이상 아 아니다 100년 이상 이어진다. 그들과 다른 우리라고 선 긋고 우아해지기)
-바로 그때 불꽃 하나가 귀가 멍멍하게 뻥 소리를 내며 솟구치는가 싶더니 오! 그때 원통 폭죽이 터지는데 마치 오! 하는 한숨소리 같고, 모두들 황홀감 속에 오! 오! 소리칠 때 폭죽이 한줄기 비 황금 머리칼 실들을 내뿜고 나서 그것들이 떨어지자 아! 그 모든 게 황금빛을 띠고 떨어지는 녹색 이슬 같은 별이 되니, 오 너무나 아름답고, 오, 부드럽고, 감미롭고, 부드러워라! (나보코프가 뭐라고 했나 봤더니 이 장 대부분을 통째로 클리셰라고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몹시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항상 어떤 친구의 약점은 그 마누라를 보면 안다. 그래도 사랑에 빠진다는 것, 그건 운명적이다. 자기들끼리만 아는 나름의 비밀을 갖고 있다. 누군가 여자가 돌봐주지 않으면 개차반이 될 작자들. (블룸은 대놓고 커플 혐오. 그런데 자기 혐오로는 생각 안 하나 보다.)
-내게는 긴 하루였네. 마사, 목욕, 장례식, 열쇠의 집, 그 여신 조각상들이 있는 박물관, 데덜러스의 노래. 그다음엔 바니 키어넌에서 고함치던 그놈. (1권 줄거리 버전1.)
-오 내 사랑 그대의 아담하고 흰 처녀 살을 나는 죄다 올려다보았네 야한 가죽띠 거들 땜에 난 끈적끈적한 사랑을 했네 못된 우리 둘 그레이스 달링 몰리는 삼십분에 그놈과 침대에서 멧 힘 파이크 호시스 라울 아무개를 위한 주름 속옷 선생님 부인 향수 검은 머리 풍만한 살 아래서 끙끙아가씨 젊은 눈 멀비 통통한 젊은이들 나를 제과점차 윙클 빨간 슬리퍼를 아내가 설친 잠 방황 수년에 걸친 꿈이 돌아온다 꼬리 끝 아겐다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가 자기 걸 내게 보여줘 내년에 팬티 차림으로 돌아와 다음에 자신의 다음에 자신의 다음. (1권 줄거리 버전2.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