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김태우 지음 / 돌베개 / 2021년 2월
평점 :
-20260812
20여년 전, 최고 단계의 스테로이드 연고를 그런 줄도 모르고 남용하다가 아토피성 피부염이 심해졌다. 연고는 듣지 않게 되었고, 염증이 온몸으로 퍼지고, 감염된 부위도 있었다. 가려움, 긁으면 안 되는데 잠든 채 벅벅 긁다 놀라 깨면 엉망이 되어 버린 상처, 삶을 놓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부모는 어려서부터 그전까지도 나를 낫게 하겠다고 피부과, 나병 환자 의원, 1년 안에 치료하겠다고 정체 불명의 조제약을 지어주는 약사, 온갖 민간요법까지 안 해본 것,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이제 막 만20살이 된 나는 상처와 진물에 달라붙는 바지통을 떼어가며 겨우 걸어다녔다. 한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로 염증을 가리고, 축제 무대에서 노래할 때는 챙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마지막 시도로 아토피성 피부염과 건선을 전문으로 한다는 한의원에 갔다. 침대에 누워 침을 맞았던 거 같은데 별로 안 아팠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탕약값이 매우 비싸서 난감해하자, 저렴한 환약을 선택지로 줬고, 병변에 소독솜으로 찍어바르라는 약도 줬다. 알갱이들을 먹고 한약냄새 나는 묽은 액체를 염증 여기저기에 발랐다. 수돗물이 나쁘다 해서 내가 사는 원룸에 부모가 연수기까지 달아주었다.
여전히 가려웠고 방법이 없다, 싶어서 몇 달 다니다가 결국 비싼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그만두었다. 다행히 피부염으로 죽지는 않고 아주아주 오랜 시간 거쳐 모든 염증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일부만 작게 고질로 남은 채 대부분의 손상된 염증 부위에 새살이 돋았다.
10년 단위로 돌아오는지, 10년 전에는 몸과 얼굴까지 염증으로 뒤집어졌다. 어린이집에서 만난 할머니가 EM용액이 좋다고 써보라고 해서 비료나 할 것을 발랐다가 감염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피부과를 찾았다. 스테로이드제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의사는 본인과 자신의 자녀도 비염이 있다며 심해지고 필요하면 약을 쓴다고,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먹는 약도 연고도 가장 순한 종류로 처방할 것이고, 그러고나면 스테로이드의 대안으로 프로토픽 같은 연고도 나중에 처방해주겠다고 달랬다. 00대병원에 가면 달맞이꽃 종자유를 처방하는 선생님도 계시다고 나중에 필요하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더디긴 했지만 낫긴 나았다. 스테로이드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배웠고 특정 성분에 대한 공포도 사그러들었다. 그러고나서 10년이 또 흘렀는데, 지금은 허우대 멀쩡하지만 방심할 순 없다…
그렇게 마지막 한의원 치료를 20여년 전 경험한 이후, 나는 한의원에 가지 않는다. 발목을 다쳤을 때도 한의원에 가보라는 이웃이 많았는데 안 갔다. 나중에 여러 병원을 전전해 겨우 인대 파열과 심부정맥혈전증, 폐색전증으로 진단받은 이 병을 한의원에만 맡기고 병원에 안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알고 싶지 않다.
서양 의학과 한의원을 대비시켜 설명하려는 시도는 처음에는 흥미로웠다. 그런데 의학은 진료 과목이 무엇인지에 따라 선생님들의 시선이든 환자와의 접촉이든 다 달라진다. 주로 내과 진료실 풍경이 예시가 되는데, 그걸 의학의 전반적인 특징으로 일반화하며 한의학을 설명하는 건, 뭔가 한의학과 짝이 맞도록 짜맞추는 느낌이 들었다.
사상의학이나 동양철학, 거기에 푸코와 현상학, 언어학, 존재론 같은게 튀어나와서 동양의학의 존재 가치를 열심히 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잘 알아듣지 못했고, 그래서일까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부분이 없었다.
이 책을 갖추고 읽은 건 내가 한의학을 너무 몰라서, 알면 이해하고 마음이 열릴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시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새끼 생각보다 철벽이었다.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아진 사람들은 진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아프면 뭐라도 하고 싶은 사람 마음이라 가장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이 그곳이라면 가는 게 맞겠다. 그냥 나만 안 가면 돼…
+밑줄 긋기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산다. 우리가 세계를 아는 방식은 곧잘 말 속에 체화되어 있다. 말 속에 이미 어떤 관점의 틀이 자리 잡고 있을 때, 그 말을 사용하면서 다른 틀로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언어의 변화는 사고의 변화를 수반한다. (73-74, 예전에 말/글을 바꾸면 내가 달라질까? 하고 ‘언어의 밝은 집’이란 사고실험 같은 걸 잠깐 했는데 금세 집어치웠다.)
-고흐는 그가 바라본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구도, 색감, 붓터치 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구성해 그림 속에서 실현한다. 마찬가지로, 맥에 대한 동아시아의서의 표현은 기혈의 흐름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이며, 묘사적 서술 역시 흐름이 있는 생명의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주의와 후기인상주의의 차이를 서양의학과 동아시아의학의 차이로도 읽을 수 있다. (93, 여기서 어떻게 ‘마찬가지로’가 나올 수 있는지 전후를 살펴도 납득을 못했다. 시점은 참신하지만 거참…한의학은 후기인상주의 미술과 특성을 공유한다는 말.)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의학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은 맥락을 다 잘라버린 선언일 뿐이다. 대상의 특정과 지시를 강조하지 않는 동아시아의학의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는 단정적인 언사다. 여기에는 또한 모든 의학이 대상을 강조하여 객체화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심하게 말하면, 그런 선언들은 폭력적이다. 후기인상주의 그림을 보고 사실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105-106, 발췌를 삼가야겠다 싶은게, 특정 부분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면 책 전체의 흐름과 맥락을 보라고 혼날 거 같은 느낌이다. 누가 그랬어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 누가 언제 어디서 했어, 혼 좀 나자, 하는 기분)
-세계에 대한 앎의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객관 아닌 앎을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106,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브로콜리너마저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가 듣고 싶어져서 들었다.)
-아날로지즘은 존재들의 기저를 흐르는 이치에 주목한다. 그 이치가 근간을 이루면서, 또한 변주하면서 세계를 구성한다. 이때 아날로지는 그 근간의 이치를 이르는 말이다. 음양, 사시, 오행, 주역 괘가 동아시아 아날로지의 예시들이다. (127, 동양철학과 한의학의 연결성을 강조하는데 이 분야에 문외한이라 연결하기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