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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
박상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7월
평점 :
-20260810 저자:박상영.
표지 날개 안쪽에 작가의 책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중 하나도 읽지 않은 것이 없어서 새삼 놀랐다. 결국 이 책까지 샀으니 꼬박꼬박 따라가며 읽고 있구나 산문집 두 권마저 봤구나. 이번 책도 재미있으면 좋겠다.
술술 읽혔다. 걸리는 페이지가 없었다. 다만 장면을 눈에 보이듯 그리는 문장들, 서사의 구성 방식은 내가 알았고 좋아하던 그게 아니었다. 나는 드라마를 읽는 중이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쓴 건지 아닌지 몰라도 나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지 않는다. 책에 드라마가 묻었어...영화일 수도 있고…
좋은 글이 뭔지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쉽고 재미있게 금세 읽을 수 있는 글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보편적인 서사와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는 거니까. 클리셰라고도 하는 그것을 내가 진저리치게 싫어하자, 한 친구는 ’그건 클리셰를 싫어하는 클리셰’라고 했다.
띠지는 왜 저 문장을 뽑았나 모르겠다. ‘망해도 너무 망했다’ 사람들은 남이 망한 걸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대다수는 컨텐츠에서라도 승승장구하는 주인공을 더 좋아한다. 웹소설과 웹툰이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
이 책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제 박상영을 ‘졸업’한다. 내가 좋아하던 누군가들이 나 아니어도 더 많은 사랑을 받을 형태로 변해간다면, 그래, 행복하길, 많은 사람에게 읽히길, 하고 ‘좋아하는’에서 ‘는’을 ‘던’으로 바꾸는 짓을 많이 했다. 그걸 졸업이라 부르기로 했다.
재벌가를 둘러싼 출생과 죽음의 비밀, 권력 싸움의 이야기는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걸 어떻게 그리는지가 글의 갈 길을 가른다. 샤갈이 이제부터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가기로 했어, 하면서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입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길을 잘못 들었네, 길이 잘 못 들었네, 하면서 뒤돌아서 무수한 갈래길로 향한다.
+밑줄 긋기
-완벽히 모르는 세상을 쓴다는 건 결국, 절대 이해할 수 없으리라 믿었던 세상을 끝내 이해하고 말겠다는 욕망과 다르지 않다. (352-353, 작가의 말 중. 나도 노력은 했어.)
-“당신을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백골이 바스러져도, 온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당신의 만행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당신을, 당신을 파멸시킬 거야.” (131, 이 독후감은 이 문장까지 읽고 작성되었다. 그렇다고 읽기 중단한 건 아냐… 부디 내가 성급했다 생각하며 독후감을 처음부터 다시 쓰길 바라…)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입을 다물어야 했던 사람들, 말하지 못한 사연들은 결국 어디에 쌓이는 걸까. 기억에서 잊힌 이름들과 이야기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166, 그곳이 없다면 사람은 살아가지 못할 거야. 망각의 축복)
-나는 그런 그녀에게 요코하마의 ‘졸업생’이라고 불러주었다. 그 말에는 축하와 함께,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작별 인사가 섞여 있었다. (267, 이 부분 읽기 전에 박상영 졸업 선언해버렸는데...소오름 ㅋㅋㅋㅋ까지는 아니고 사람 생각이 뭐 다 거기서 거기여...)
-당신이 피로한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289, 적어도 네 번 마른세수하는 사람이 나온다. 나는 안경을 써서 못하는 그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