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20260616 저자: 줄리언 반스.



책의 말미를 거의 앞두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책 뒤편으로 갔다. 옮긴이의 말이 있었고, 친절하게도 줄거리를 써 놨다. 그렇게 뒷마무리를 스포일러 당한 후에 마저 읽었다. 결말을 모르고 읽었어도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을 것 같다.

오랜 친구이지만 성격이나 삶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스튜어트, 올리버, 그리고 스튜어트의 여자친구였다가 부인이 된 질리언, 결혼식날 질리언에게 반해버린 올리버, 엄청 꼬셔대는 올리버에게 넘어가 버린 질리언, 두번째 결혼식, 올리버가 두 커플을 지켜보고 지분대던 시절처럼 그 주위를 맴도는 스튜어트.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퇴마해버리고 어딘가로 떠나는 가족.

이게 다였다. 세 인물이 화자로 왔다갔다 하면서 방백처럼 독자에게 말을 거는 형식은 그렇게 정신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 일단 말마다 프랑스어 섞어 써서 빡치게 만드는 올리버를 가르치는 학생 성희롱이나 하고 남의 부인 빼앗고도 전원에서 유유적적하게 그려 놓아서 완전 나쁜놈의 전형처럼 미워하게 만들어놨다. 질리언은 그렇게 입체적인 인물도 아니고 이 남자 저 남자 쉽게 빠지고 쉽게 갈아타고 그런 마당에 뭔 지혜로운 포샤처럼 잔재주를 쓴다. 스튜어트는 올리버가 워낙 나쁘게 말해대니까 좀 불쌍하다 싶은데 작가가 혹여 독자들이 얘한테 이입할까 봐 좋은 놈 아니게 하려고 이혼 후 성매매 순례 다니는 놈으로 망쳐놨다. 좀 어거지였다.

있으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이지만, 결혼-이혼-또 결혼 이 사이를 어물쩡 얼렁뚱땅 제일 갈등 심할 구간을 적당히 비벼서 지나간다. 작가는 그저 위치가 뒤바뀐 두 남자가 거울처럼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것 같다. 하여간에 개빻은 남자들이랑 똑똑한 척 하는 멍청한 여자가 나오고 막 엄청 재미있는 척 재치있는 척 하는데 작위적이란 생각만 들었다. 차라리 두 번 결혼해서 둘다 같이 살았던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 씨 같으면 깜찍한 구석이라도 있지… 일처일부제와 독점적 이성애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구식책은 새롭게 읽히는 게 없다…

책 앞표지로 가서 언제 나온 책인지 보니까 1991년도라고 한다… 이제 줄리언 반스 선생은 소설 안 쓴다고 했댔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연애의 기억’, 산문집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산책’(이거는 읽었던 것마저 잊어버림)은 아주 오래된 책들은 아니라 그냥저냥 읽을만 했다. 그런데 내 또래 때 쓴 소설은 영 후졌네요… 그동안 적당히 즐거웠어요. 또 만나지 않아도 건강히 잘 사세요.


+밑줄 긋기
-<스튜어트>는 계속 중도 노선을 대표하는 ‘그들의’가 제일 좋다고 주장했다. (15, 에브리원이나 썸원을 데어라는 대명사로 받는 거 나름 선구적이었는데 소설의 다른 인물들은 반대했다. 퀴어들이 대신 받아들였다.)

-세상 사람 중 반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건너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만해야 한다. 그건 악순환이다. (36, 악순환이지.)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 나도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그 상태를 견디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녀는 변할 것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모습의 자기 자신으로 바뀔 것이다. 난 그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 (76, 찐사랑이네)

-사람들은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 연민에 빠져 혼자 앉아 있어선 안 된다고.
인생에서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고, 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인식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결정해서, 그걸 목표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난 생각해. (80, 다른 건 다 해 봤는데 아직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는 못 찾았다.)

-그래서 난 다음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스튜어트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올리버와 사랑에 빠진것 같다는 사실.(181, 질리언은 진부하게 올리버의 꼬임에 넘어가고 선언까지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구질구질했는데 남은 페이지는 얼마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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