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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포로부터 - 우리 안의 우주를 탐험하는 생명과학 오디세이
벤 스탠거 지음, 양병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20260416 (저자: 벤 스탠거)
자신의 시작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땐 신경 세포도, 감각 세포도 뭐도 없으니까, 그냥 수정된 세포 하나. 그런데 그게 자꾸만 나뉘고 또 나뉘어 이런저런 형태와 기능을 하나씩 갖추게 된다. 지금 이 책과 화면을 들여다보는 눈과 시신경을 이루는 세포들, 손끝으로 키보드를 더듬는 손가락과 그 끝의 죽은 세포 손톱까지. 바닥을 디디고 다시 뒤꿈치를 들어올리며 까딱거리는 나의 두 발. 무수히 많은 살아 있는 조각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니, 지금도 가만히 있지 않고 뭘 하든가, 죽거나 새로 생겨나든가 한다는 것. 이 책을 읽고 나니 새삼 신기하다.
이 책은 배아, 유전자, 동물 세포, 줄기세포, 암세포, 다양한 세포과학의 응용과 질환의 치료까지 우리를 비롯한 동물의 몸을 이루는 작은 단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대중서로 나온 것이라고는 하는데, 4장 유전자 켜고 끄기, 5장 유전자와 발생 같은 부분은 많이 어려워서 눈으로 붙들고 있긴 했는데 알아들은 부분이 유독 적었다.
인간과 생명의 이런저런 근원과 특성에 대한 자연과학 책들을 어쩌다보니 많이 모아놔서 하나씩 읽고 있다. 이번에는 아주 작아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확대해야 알아볼 수준에서 생명체를 살피게 되었다. 사실 더 작은 분자 수준에서 막을 사이에 두고 전자가 왔다갔다 하는 것부터 생명의 시작과 활동과 노화와 죽음까지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려다 접어두었다. 그래도 매번 비슷하게 나오는 이야기가 있어 다음에 또 같은 이야기를 접할 땐 어디서 들어본 거 같다, 할 수 있는 건 좋다. 읽다 말았어도 쓸데 없지는 않았을 거야…
나의 상상력으로 더듬어 볼 수 있는 작은 세계란, 분자나 양자 같은 소립자들 수준은 아닌 것 같고, 세포도 조금 힘들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는 이해는 다 못해도 좀 버티고 흥미도 가끔 느낄만 했다. 과학 시간에 염색한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경험이 도움이 되었겠다. 저 진하게 가운데에 염색된 게 핵이야… 양파뿌리 세포에서 염색사가 염색체로 변한 것도 전에 과학 선생님과 조교님이 구경 시켜줬던 것 같다. 책만으로는 안 된다. 경험이 중요하다. 알면서도 책으로나마, 책만으로 어둠 속에 더듬거리며 부스러기를 줍는다. 부스러기라도 줍게 이것저것 최대한 쉽게 쓰려고 애써주는 과학자들이 있어서 고맙다. 나는 이번 생에는 과학자 같은 게 되지 못하겠지만, 이것저것 실험하고 발견해줘서, 그 이야기들을 내가 듣게 해줘서 감사해요. 내 세포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 조금 더 고민해 볼게요.
+밑줄 긋기
-유전자만으로는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 놀라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모든 세포는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지며, 이것이 바로 유전자 내용만으로는 세포의 운명을 규정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증거다. (125, 동일한 유전적 지침서를 지닌 다양한 세포를, 이를 연구하며 우연과 시련이 겹쳐 노벨상까지 타게 된 거든의 생애에 빗댄 점이 흥미로웠다.)
-현미경을 통해 보면 대개 일관된 모양의 세포로 구성된 악성종양과 달리, 기형종은 신체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유형의 세포를 포괄하는, 말하자면 ‘세포판 노아의 방주’다. 근육과 신경, 연골과 뼈, 상피, 지방, 심지어 머리카락과 치아까지, 모든 조직 유형이 하나의 기형종에서 관찰될 수 있다. (271, 동생이 기형종 수술을 받아서 미리 알아보았었다. 우리 몸엔 참 별 게 다 자랄 수 있다.)
-본질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지식은 예측 가능성에 아랑곳없이 구불구불한 밤의 과학을 헤매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384, 그러니까 돈 안 되는 거 왜 해? 라는 물음은 접어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