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1 (저자:김이듬) 나도 모르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채 하루가 갔다- 이렇게 시집 제목을 마음대로 쓸 뻔했다. 나의 그릇은 하루짜리이다. 않고, 하고 단정하지 못하고. 않은 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든다. 봄에 시인은 산불을 만나 집이 다 탔나 보다. 3부는 그런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불탄 자리에서 시가 나왔다. 어디에서든 글은 나올 수 있다. 그게 아무 소용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115, ’폭우가 우울을 부르지 않을 때‘ 중)를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로 읽었다. 나는 이제 삶에 미련이 있나 보다. 어쩌다보니 김이듬 시집을 세 권 읽었다.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싶었다. 아직 봄이 남았는데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계절을 보내는 게 더 어려운 일 아니야? 전에 이런 이야기 하지 않았나요? 계절은 정말 지나가는 걸까? 내가 이 계절을 지나간다. 나를, 나만 미워하지 않기만 해도 좋겠다. +밑줄 긋기-귤을 자세히 볼 때는 귤 따기 직전 크기와 색깔도 살핀다 감귤을 쥐고 가위로 꼭지로 자른다 가위를 바꿔 가며 잘라낸다 다알리아 가지를 청바지 끝단을 상자를 고기를 관계를 거머쥔 것이 태도를 형성한다 말과 시간을 잘라서 밭에 심었다. (34-35, ‘귤 따기 체험’ 전문. 말과 시간을 어떻게 살피고 거머쥐었나 궁금하다. 따고 난 직후에는 자세히 안 보려나. 귤이 아니니까 안 그러겠다.)-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땅은 발아래 없다. 그래서 인부들은 밤에도 사다리와 파이프 따위를 밟고 공중으로 올라갈까. 돌아갈 곳이 없어서 돌아보는 건 아니겠지. 표범 무늬 작은 고양이가 담에서 담을 건너 겨울로 사라진다. (50, ‘좋아하는 일’ 중)-다시 그곳에 간다고 해도 나는 지름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다시 또 이 집에 온다 해도 돌돌이와 밀대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파리채도 어디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리하여 내가 다시 태어나 두 번째 생을 살게 된다 해도 지금보다 썩 낫지도 않을 것이다 (61, ‘조감도’ 중. 한 번만 살려는 핑계일까. 운명론일까. 체념일까. 비슷한 생각을 하면 아프다.)-나는 꺾인 나무 같아서 지난 육 년의 기억을 지우려면 육십 년쯤 지나가야 할 것 같다. (123, ‘사월’중. 사월에 사월을 읽는데 어느 숲길 가다 저거 내 나무다 했던 꺾인 나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