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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20260328 조너선 사프란 포어.
‘사랑의 역사’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동시에 선물 받았다. 둘은 부부이고 둘다 작가라고 했다. 제법 그럴싸한 선물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에게 들었다. 그 둘은 진작에 헤어졌다고, 남자 작가 쪽이 모델과 바람이 났다고 했다.
이 책 시작에는 헌사가 있다. ‘니콜 내 아름다운 여신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13) 끝난 사랑 이야기를 들은 뒤 읽는 헌사는 조금 우스웠다. 그렇지만 사랑을 거둬간다고 바친 책까지 거둘 수는 없으니까, 이불을 팡팡 차며 사랑의 흑역사를 곱씹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작가님.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를 먼저 읽었다. 딱 4년 전 3월이라고 한다. 책 이야기는 별로 안 해 놓고, 내가 나중에 소설집을 내게 되면 ‘사랑의 흑역사’라는 제목을 붙일 거라고 야심차게 차례까지 짜 놨다. 이거야 말로 흑역사잖아.
왠지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얄미워서 읽긴 해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밀리고 밀렸다. 그러다가 읽었다. 신경과학적 실험을 한다고 책 곳곳에 이런 저런 그림과 텍스트로 장난치는 책을 함께 읽고 있었는데, 동시에 읽는 소설도 비슷하게 사진과, 겹친 글씨들과, 빨간펜과, 역재생되는 누군가의 소생 장면 같은 게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우연이었다.
오스카는 대놓고 양철북의 악동을 떠올리게 하려는 이름 아냐? 하고 어린 아이를 화자로 내세우는 건 치트키지...하면서 처음에는 조금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화자는 오스카와, 오스카의 할머니와, 할머니를 떠났던 할아버지를 오간다. 조금 정신 없긴 했어도 페이지는 잘 넘어갔다. 열쇠와 블랙을 찾아라! 뭐 이런 미션 내지 추리물처럼 오스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아빠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가보지 않았던 퀸즈와 스태튼 아일랜드에도 걸어간다.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는 이런저런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모습이 언뜻 보인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차라리 찾아다니는 일에 몰두하느라 힘들어하거나 슬퍼하는 걸 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학교에서 갑자기 방송부 애들이 텔레비전으로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장면이 나오는 뉴스를 틀어줬었다. 무슨 기분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20년이 넘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씨911 같은 영화를 보면서 부시가 잘못했네...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부시는 유치원에서 애들 책을 읽어주다가 귓말로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망연자실해 있었다. 정말 이건 어쩌지. 안타깝다는 생각 정도는 했겠지만 머나먼 나라의 무고한 사람이 무수히 많이 죽는 일이 벌어진 게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고통과,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건 남은 사람들끼리 아직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들여다 보게 해 주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저 멀리 떠났다가 40년 만에 나타나서 내 손자, 하는 토마스 할아버지는 왜 떠나고 왜 돌아왔는지, 아버지와 오스카와 이어지는 연결고리 내지 땅 파는 일 시키려고 소환한 건지, 조금 납득이 안 되었지만 말이다. 폭격에 사랑하는 사람과 뱃속 아기와 가족을 동시에 잃는 건 말을 잃을 만큼 충격적인 일일 수는 있겠다. 그래도 자기 삶이 박살난 걸 애나의 동생한테 과거의 무언가를 찾으려다 잘 안 되니까 아이를 가진 그녀를 버리고 떠나고, 뒤늦게 자기 아이인 토마스가 죽고 나니 돌아와서 뭔 사모곡도 아니고 사자곡 같은 편지를 줄줄 풀어 놓고 있어서 보기가 싫었다. 집안에도 비슷한 사람이 있어서 더 그랬다.
오스카가 아이어서 그런가, 뉴욕의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다. 아이의 고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모르는 척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방식대로 애도하는 걸 냅두는 엄마도 그렇고, 한동안 오스카와 블랙 씨들을 만나러 함께 다녀준 위층 블랙 할아버지도 그랬다. 할머니의 보살핌이며, 경비 아저씨들이며, 리무진 기사랑 그 모든 블랙들까지, 다 오스카를 애 취급하지 않고 진지하게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도 그런 어른들이 조금 더 많았다면 덜 불행했을까. 그런 어른들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있긴 있었어서 이만큼이나마 버틸 수 있는 인간으로 자랐을까. 나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직도 왜?를 향해 헤매는 아이인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시절도 온갖 공습 폭격으로 삶터가 다 망가지고 언제 또 죽음의 가능성이 다가올까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지금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456)는 닿지 않을 말이다. 그 우리는 살아남은 미국인들로 한정된다. 소설 속엔 제일 끔찍한 건물인 트럼프타워와 아름다운 건물인 유엔 본부가 잠시 나온다. 평화 대신 돈과 피를 택한 나쁜 사람들은 그만큼 되돌려 받았으면 좋겠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도 잘 안 되는 먼 곳의 사람들은 최대한 무사할 수 있었으면, 그래서 남은 고통도 사랑으로 문지르며 삶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밑줄 긋기
-나는 어떻게 하면 덜 느낄 수 있는지를 배우는 데 평생을 바쳤어.
날이 갈수록 느끼는 감정들이 줄어들었지.
이런 것이 늙어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늙는다는 건 뭔가 더 나쁜 것일까?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면, 행복으로부터도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단다. (248, 요즈음엔 비슷한 생각을 해요.)
-태어난 것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 말은 우리 삶이 고층 빌딩과 같다는 의미이다. 연기가 번져오는 속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불길에 휩싸여 있기는 다 마찬가지이고, 우리는 모두 그 안에 갇혀 있다. (340, 이런 세계관, 인생관을 아홉 살에 갖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그런데 내 아홉 살도 딱히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