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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전집 2 :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ㅣ 사드 전집 2
D. A. F. 드 사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8년 7월
평점 :
-20260209 D.A.F.드 사드. 재독.
사드의 소설에 붙은 해설이나 해설서들은 자꾸 내게 묻는다. 왜 사드를 읽냐고.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처음에는 궁금했기 때문일텐데, 정작 다들 고약하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읽었단 사람은 못 들어봐서 그럼 제가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하고 굳이 자기 희생은 개뿔.
이번에 느낀 건 이 책을 읽으면 역설적으로 평온해진다는 것이다. 이 있을 법하지 않은, 역겨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수많은 고통과 희생이 오히려 현실의 괴로움과 불안과 걱정을 마비시켰다. 그런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반대로 사드는 왜 이걸 썼을까, 혼자 상상했다. 나와 변기통과 흰두루마리. 세 친구만 덩그러니(아 엉덩이용 도구도 포함해야 하나…) 바스티유 독방에 갇혀 언제 나갈지도 모르고, 바람벽만 바라보며 뭘 어떻게 할지 몰라 미쳐갔을 똑똑하고 지독한 이놈은 하루종일 혹은 며칠을 비워지지 않는 변기통 속 똥과 함께 오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한가운데에는 유독 분변애호의 변태 행위가 많다. 치워지지 않는 것이라면 무감해지거나 사랑해야지 별 수 있었겠어. 그리고 부자유의 분노는 어디로든 향해서, 날 이렇게 만든 놈들, 다 고문하고 강간하고 죽이고 싶다, 그런 상상만 거듭했겠지.
어쩌면 리베르탱으로 대표되는 공작, 주교, 판사, 징세관리인은 구체제의 모순을 떠받치는 원흉들이자, 사드를 가둬놓은 권력자들의 표상일지도 모르겠다. 사드놈도 후작이긴 하지만, 죄수는 죄수인 거고 자유도 뭐도 없고. 날 가둔 이놈들 똥이나 처먹어라, 싶었을 것이고, 자신이 겪는 고통이 이놈들이 가하는 고통이나 비슷하고 부당하다 싶었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쓸데 없이 빌런의 마음이 되어 보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이건 위로가 될 때도 있지만(왜?) 대개는 그 과정에서 기분이랑 마음이랑 뇌가 상한다…
2월 되고도 완독한 책이 오래도록 없던 건, 이렇게 ‘소돔120일’과 ‘말레이제도’ 각 500여쪽, 700여쪽 되는 두 권을 자기학대, 자기치유 번갈아가며 냉탕 온탕 열탕 쑥탕 했기 때문이다. 2013년 다른 번역판으로 이미 본 책인데, 이 세월쯤 되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새 번역을 보면 이전 번역판이 제대로 된 건지 엉터리인지 알까 싶다는 건 핑계고, 이야기의 설정과 구성, 마지막에 대부분 끔찍하게 희생자들을 처형하고 악당들과 생존자들은 무사히 돌아온다는 결말만 기억에 남았기 때문에 후반부 볼 때는 아 나 왜 이걸 보고 있냐...내 뇌… 안 본 뇌 살려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드 읽기는 전혀 성적이지 않고, 쾌락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이 또라이 인물상들의 자연관, 세계관, 인간관 같은 것에 수긍하지 않으려고 싸워야 하고, 미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만큼 자유롭지 못한 사드 놈을 동정하다가도 미친년 왜 이딴 추악한 걸 상상하고 써질러낸 놈에 공감해, 해야 하고, 쉬지도 않고 이어지는 타락과 학살의 장면에 뇌가 썩는 걸 느끼며 야...이 정도면 현세에 만족해야 하지 않겠냐, 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일단 사드 감옥을 탈출했다… 살았다….
+밑줄 긋기
-알린의 아비이자 삼촌인 주교는 그녀를 친구들에게 양도함으로써 나머지 세 여자들의 남편이 되었지만, 질녀에 대한 기존 권한은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31, 복잡한 인척관계에서 대표적 막장인 한 줄만 끌어오기로…)
-하여, 독실한 신앙을 가진 모든 이에게 권하니, 누구든 죄를 범하고 싶지 않거든 이쯤에서 책을 덮으시라. 그다지 정숙하지 못한 줄거리임을 충분히 눈치챘을 터, 미리 단언컨대 그 세세한 내용으로 들어가면 정도는 훨씬 더 심해질 것이다. (60, 친절한 경고. 그치만 여기서 덮은 사람은 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강력한 힘을 가진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너희가 그토록 목매는 신을 향한 미덕이, 앞으로 보게 될 것처럼, 악덕과 방탕주의에 희생되는 일을 허락하겠느냐? 자기와 비교하면 코끼리 앞의 진드기에 불과할 나 같은 미물이 하루 종일 마음 내키는 대로 모욕하고, 조롱하고, 도발하고, 무시하고, 공격해대는 것을 과연 전능한 신으로서 용인하겠느냔 말이다! (94)
-빌어먹을, 내가 얼마나 저 태양을 공격하고 싶어 했는지, 우주로부터 저 태양을 빼앗거나 아예 태양으로 세상을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싶어 했는지 알기나 할까? 그 정도는 되어야 죄악이라고 할 수 있지. 1년 만에 고작 사람 열두 어 명 흙으로 돌려보내느라 제멋대로 저지르는 소소한 일탈 행위를 죄악이라고 할 순 없어. (215, 범죄 스케일이 태양계급)
-“맙소사,” 퀴르발이 말했다. “그것 참 까다로운 친구로군! 똥 좀 입에 넣었다고 화를 내? 그걸 아예 작정하고 먹는 사람들 얘기를 좀 해보라고!”(226, 뱉는 말마다 명작인 퀴르발, 앞의 태양 뒤져, 하는 것도 퀴르발)
-“(…)‘내가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은 오히려 당신을 깎아내리고, 나를 당신 위에 올려 놓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자 뒤르세가 대꾸했다. “바로 그런 생각들이 봉사 행위의 폐단을 입증하는 것이라네. 선행을 베푸는 행위가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말이지. 어쩜 이렇게 보 수도 있을 거야. 다 자기만족을 위한 짓이라고. 하긴 나약한 정신으로 그런 소소한 즐거움에 빠져드는 자들에게는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그런 즐거움을 경멸할 뿐인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웬만큼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걸로 쾌감을 느끼진 않을 거야.” (283, 내신 산출에서 봉사점수가 빠져나가는 중인 이유...아닌가)
-“그러자 공작이 말했다. ”그러니 미치는 것도 각자 나름이라니까. 그 누구의 광증 앞에서도 우린 놀라거나 비난해선 안 되는 거야.(…)“ (312, 공작 급 관용 발사ㅋㅋㅋ미친놈들끼리 위아더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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