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사실 창비시선 481
전욱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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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 전욱진.


전에 살던 집에 주방 led조명이 나갔다. 수명이 10년은 된다더니, 전구만 10년이고 회로는 아닌가 보다. 동네 조명 가게에 가서 등값과 설치비 얼마에 5년 보증해준다 말 듣고 조명을 갈았다.
얼마 뒤 조명 가게는 없어지고 전자 담배 가게가 그 자리에 생겼다. 보증해 준다며. 가게가 먼저 없어지면 어떡해? 다행인지 우연인지 새로 단 조명이 고장나기 전에 새 집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우연히 산책하다 우리 동네에서 산 하나 터널로 넘어가면 보이는 옆동네에서 보았다. 그때 그 조명 가게가 산 너머로 이사와 있었다. 조명가게 옆에는 조명가게 주인이었다가 이제는 공인중개사가 된, 조명가게 주인 겸 공인중개사의 이름이 간판에 걸린 부동산이 바로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시험에 합격하고 사업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도망간 게 아니고 축하할 일이었다. 조명이 망가지면 그때 보증해주신댔죠? 그런데 가게가 확장한데다 직업도 두 개가 되셨네요 축하합니다, 하고 싶지만 조명을 두고 이사를 나와 이미 다른 집에 다른 새 조명을 달고 살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새 집의 주방 led조명도 이사한 지 채 3년이 되지 않아 고장이 났다. 구매처에서 분명 3년 보증이랬는데 다행히 몇 달 남았다. AS센터에 연락하니 처음에는 2년 보증이라고 하다가 다시 연락이 와서 그 업체 구매는 3년 보증이 맞다고 했다. 깜빡이는 조명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해달랬다. 그랬더니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설치 기사가 새 조명을 가지고 와서 금세 교체해 주고 갔다.
맨 처음 조명을 달고서 그렇게 4번째 주방등을 갖게 되었는데, 그 세월이 10년 넘어 이제 11년이 되고, 그렇게 마지막 교체한 지 3년 되가는 조명이 아직 고장은 안 나고 있으니, 어디서든 언제든 보증 받은 셈 쳐야 겠다.

+밑줄 긋기
-미리 연습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면
그랬으면 좋았겠다, 생각하면서
살아본 적 없는 아름다운 나날을
내가 살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그렇게 삶의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20, ‘신들을 위한 여름‘ 중)

-누추한 이 세상에 그래도 누군가는 사랑한다는 소문
(27, ‘잔서’ 중)

-이층의 약력은 내내 눈부시다

맹인이었던 큰할아버지는 그 앞을 지나는 저녁이면 무언가 훤하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아
보았다 (45, ‘조명 가게’ 전문)

-그러자 주성치마저 울리는 것이 세상의 일이라면
이 세상은 그만 망해버려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 세상의 끝이 밀려오는 와중인데 나는
그가 우는 꼴이 새삼 기막히고 우스워서

우는 사람을 보며 웃는 건 옳지 않으니까
계속 슬픈 생각만 했던 거 같다 (55, ‘삭제 장면’ 중)

-오늘내일 할 것 없이 매일이 그저
예상 가능하고 기정사실이었을 때
당신 눈빛이 내게 호외였습니다

타고난 다정은 내가 부럽고
그래서 부쩍 키가 줄었으나
마음 벼랑을 기어 올라왔으니
이게 다 덕분입니다

그윽하고 아늑한 게 당신 품이어서
고백은 메아리로 다시 올 거 같고
고개 들면 당신이 당신 얼굴에
어떤 표정 짓고 있을지 나는 압니다
일부러 거기 가담하지 않고
이대로 조금만 더 있겠습니다

당신의 품보다 밤이 더 느립니다
겨울인데 입김을 오래 못 봤으니
이 세상이 실내가 되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바라는
그때 내 표정은 나도 보고 싶지만

일단 이 마음을 내일 꼭두새벽부터
희게 내릴 풋눈으로 바꿀 생각입니다
차렵것이 없어도 우리가 따사해서
도리어 미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조금만 더 있을 겁니다 (‘단둘’ 전문. 달달한 것도 주긴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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