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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박상륭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20260115 박상륭.
(문요어: 중원인들의 고전 ‘산해경’에 나온다. ‘...태산이라는 곳에는, 문요어가 있는데, 생김새가 잉어 같고, 물고기 몸에 새의 날개가 있으며, 푸른 무늬와, 흰 머리에 붉은 주둥이를 하고 있다. ...낮이면 날아다닌다. 그 소리는 난계 같고 맛은 신데, 이것을 먹으면 미친병을 낫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나타나면 대풍이 든다.’(2128, 정재서 역 민음사, 89 재인용))
박상륭 장편 읽기 여정이 아마도 끝났다. ‘죽음의 한 연구’(재독), ‘칠조어론’, ‘잡설품’, 그리고 새해 특집으로다가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까지 읽었다. 마지막 책은 이전에 서두를 읽기 시작하다가 힘들어 놓아 두었다가 다시 읽었다. 오랜만에 박상륭을 읽으니까 아, 어렵고 지루해 뒤지겠는데 그런데도 마치 고향에 온 듯했다. 나는 진짜 고향에 가도 거긴 이제 아무 것도 없고 정도 없고 의절한 사람 몇과 거친 과거의 기억만 남아서 별 감흥이 없지만, 이 익숙한 문체와 세계관은 하여간에 반가웠다. 그런데 친구에게 이 책 읽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번역될 수 없고 미래 독자들에게 많이 가닿지 않을 이야기들에 대해 말하다보니, 그 쓰잘 데 없음에 대해 동조해 버려서 약간 김이 빠지기도 했다. 나는 참 쓰잘 데 없는데 내 시간과 집중을 갈아 넣고 있구나… 무맛의 곤약을 마구 퍼먹고 있구나… 그래도 이거 자기 좋으라고 쓴 것만은 아니고 나중에 올 여래/미래 독자에게 열심히 말도 걸고 대답도 해놓고 설명도 해놓고 그랬다고, 해 봤자 그 미래가 한 줌도 아니고 한 톨쯤 될 나같은 빙충맞은 독자여서 그래 그게 다 뭐람...락 이즈 데드..,소설 이즈 데드…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마저 읽었다.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신을 죽이고 기독교를 까대고 초인 선언을 했던 자라투스트라를, 호기롭게도 박상륭 선생은 이상한 가학증 환자처럼 괴롭히다가 죽여버린다. 일단 절친 독수리와 뱀을 졸라 죽이고 태워버리고 길을 떠나게 한다. 하산의 길이다. 그러다 만난 늙은이 앞에서 지루하게, 신이 어때서 설마 죽었겠냐 죽인게 잘 한 짓이겠냐, 하고 설교들을 땐 한마디 입도 달싹이지 못하고 바위에 묶인 귀처럼 멍청 듣고만 있게 한다. 산 아래에서는 거지에게 밥 몇 술 얻어 먹고는 중요 부위 가리던 다 낡은 천쪼가리도 뺏기고, 그리워 다가간 인간들에게는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다가 하필이면 간 날이 장날이라 곡마단 오는 날 곡예사가 다쳐 제대로 된 쇼를 못 보게 된 마을 사람들이 폭동 일으키다 권력자에게 진압된 날이 그가 하산한 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죄양마냥 돌을 던져 초인이다가 다시 인간이 되려던 되었던 존재를 죽여 버린다. 산에서 나온 이 남자의 유언은 강과 바다가 닿은 데에다 장사 지내 줘라...이런 거고 이걸 유지로 받든 이는 역설적으로 성직자이다.
아직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를 읽지 않은 채 이 책을 읽어서 한 번 더 걸러 걸러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라 이게 맞나, 모르겠다. 긴 각설이타령은 일단 풀어 놓고 가신 건 다 봤고, 누군가 읽겠다 하면 ‘죽음의 한 연구’나 ‘칠조어론’까지는 도전해보라 하겠지만, 뒤에 두 권은 사실 잘 모르겠다. 앞의 둘에 비해 읽는 고통을 참을 만큼 즐거운 읽기까지는 못 된다. 늙음과 죽음 앞에서는 초인까지도 사실 초인이 아니었고 우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미약자, 소립자, 그렇게 쭈그러드는 게 인지상정인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소설마저 작가의 말년과 함께 그렇게 쪼그라든 느낌이 없지 않았다.
아직 안도하기엔 이르다. 산문집이랑, 중단편전집이 떡 버티고 있으니까...제일 큰봉우리는 넘었지만 자잘하게 읽을 거리들이 남아 신나고 괴롭다. 유기징역이지만 징역 2월도 괴롭긴 괴로운 것… 스스로 갇힌 감옥이래도 괴롭긴 마친가지이다. 이놈의 피학성 유희 같은 독서는 좀 던져버리면 좋겠는데 입 속의 마시멜로 같이 말랑하고 폭신하게 씹히는 책은 영 못 읽는 병에 걸렸다.
+밑줄 긋기
-‘정통’이라는 모태는 불모라는 것입네다. 정통 쪽에서 이르는 ‘이단’은, 모두 간음의 자식이거나, 서자들입네다. 마찬가지로, 어느 천재적 대가의 어록도, 그것을 잘 읽고, 잘 소화했을 때, 하나의 ‘정통’이 세워지게 될 터입네다만, 그 오독 내지는, 몰이해를 통해, 서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버글여 나타날 터입네다. 이 늙은네도 그래서, 공이 뽑아 심은 ‘신의 이빨’에서 까여져 나온 새기 독룡이라는 얘기를 드렸던 것이외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러니 이 늙은네는, 공의 설법을, 공의 의도대로 이해치 못한, 그 오독이나 몰이해, 또는 곡해의 결과라고 치부하시면 될 터입네다. ‘정통이라는 모태는 불모’여서, 사실은 새로 태어나는 자식들에 대해, 늙은 계모 같은 것일지도 모릅네다.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인류사의 변전은, 이 서자들에 의해 이뤄져 온다는 것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네다.(2007-2008)
-늙은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이미 여러 차례나 해버린 말을 다시 반복한 것이나 아니었는가, 그것을 반성해보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말은, 반복을 통해서만, 그 의미가 더 강조된다고, 스스로 위로를 꾸며낸 듯, 다시 시작했다. (2035, 이 바로 앞에 읽으면서 뭐야 왜 했던 말 또 해? 했더니 즉답해주는 저자여...죽어서도 친절하네)
-Nune Scripsi Totum Pro Homo Da Mihi Potum! :나는 인간에 대하여 너무 많은 말을 하였도다, 술 한잔 내게람!‘의 뜻이라고 하나, (2066, 이건 누가 한 말이야? 하고 제미나이에게 물으니 원래 사람, 이라는 자리에 그리스도, 가 들어가고 책 열심히 필사하던 수도사들이 여백에 끄적이는 낙서 같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언어란 그러고 보면, 중년 훨씬 지난 놈팽이모양, 제 계집과의 상관에서는 시랑토 못 하면서, 남의 계집 발가락 새 휘집어 드는 일엔 된장을 싸매고 덤비는 것모양, 즐비하게 널려 있는 사물이나 존재도 다 표현해내지 못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우주적 대력들의 불알도 까고, 공알도 뽑아낸다. 두려운 것은, 그것의 전와력이다. (2070, 패설가의 언어론은 비유도 참 상스러운 것. 전와력의 와는 그릇될 와訛, 와전할 때 그 와이다.)
-어느 날, 저 자식은, 이 푸타나의 품에 안겨, 비등하는 피뿐만 아니라, 골까지 빨리고 있음을 발견할 테다. 그리고 이 어미는, 자식이 병든, 황폐한 껍질만 남았을 때, 퉤 뱉어버려 버릴 것이다. 그가 버려진 자리에, 그의 늙은 어미의 자애로운 품이 열려 있다. 자식은, 당분간, 죽음에의 욕망이 차오를 때까진, 괄약근이 느슨한, 이 늙은 마누라의 품을 떠나려하지는 않을 테다. 역의 균형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 탈이다. 괄약근이 느슨한, 어미의 가슴을 차고 일어나는 자식에게, 그 어미를 배반해야 하는 데는, 꼭히 ‘명분’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다. 그 자식은, ‘균형 잡기’라는 그 역, 그 달마에 묶인 망석중일 뿐인 것이다. 상극적 질서 체계 속에서는, 유위도 무위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푸타나의 품으로 달려가는 자식에게, 늙은 어미의 자비를 들어, 만류하려 드는 일은, 나타나 보이기에는 긍정적이며, 정당하고, 아름답되, 실제에 있어서는, 그것이야말로 부정적 참전이라고, 독단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인간은, 푸타나 품에서도 못 살지만, 늙은 여신의 품도 오래 견뎌내지를 못하는, 역의 균형대 위에 올려진, 위험한 줄타기 광대이기 때문이다. (2172, 이놈의 모지란 남성적 인간. 폭도가 되는 것도 일탈 욕망도 다 남탓. 그런데 요즘 내가 공감할 만한 환상.)
-‘유행’이란 말은 ‘흘러 바뀐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되, 이래서 보면 ‘유행’이라는 것도, 흐름을 솔려놓은 역괘와도 비슷한 것이구나, ‘솔아 있음’이 바뀌는 것이구나. 역의 회귀, 되풀이되는 솔음(2173, 그래서 반유행 해봤자 레트로 되는 거냐...아휴)
-산로는, 허긴 고득의 까닭이었겠지, 자기가 그렇게도 못 잊어 했으며, 경애까지 바쳐, 그 품에 안겨, 삶을 쉬고 싶다고 했던, 그 대지, 인간의 대지의 한가운데 처해서, 구토로 목젖을 꼴록거리며, 뒤를 잘못 돌아본 이는, ‘롯의 아내’ 만은 아니었던 듯싶다고, 새로, 고향, 그 산정의 고독을, 그리워했다. 그러며, 혼자였을 떄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며, 다시금 인간이 되려 하강하련다, 고 하지 안 했던가, 라고, 자신을 추슬러보려고도 했다. (2174, 초인 무르려다 좆된 모성 모씨)
-인간은 뛰어넘어야 할 어떤 것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인간을 사랑한다고 믿어왔었는데, 자기가열심히 사랑해온 인간은, 결국은 자기 자신뿐이 아니었는가-회한이 그를 쳐댔다. (2175)
-전에 나는, 이 세상은, 끝날까지 그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돌아오고 또 돌아와, 죽어도 좋을 만큼 살아볼 만큼, 대지는 뜨듯하고 온화해서 좋은 데다, 세계는, 명주로 안 댄 풍더분한 옷처럼, 포근하게 감싸준다고 여겼으나,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리라. 살이 닿는 자리는 견딜 수 없이 싸늘하고, 사람들의 정이 닿은 자리에서는, 피와 걸이 흘러내리고 있는도다. 오 회귀의 바퀴여, 시간이여, 구르기를 멈추라! 생명의 불이여, 기름이 다했은 즉, 이제는 꺼질지어다, 더 타오르지 말지어다!(2178, 육조인지 칠조인지 입에서 설법했던 내용에도 있던 것 같은데, 오래전부터 나도 다짐하길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말기로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