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사드 전집 1
D. A. F. 드 사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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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3 D.A.F.드 사드.
 
 ‘소돔 120일’,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규방철학)’, ‘미덕의 불운’, ‘악덕의 번영’ 네 권이면 많이 봤다. 그렇지만 두 권을 중역에 발췌본으로 악명 높은 동서문화사판으로 읽다보니, 제대로 읽은 건가 미심쩍기도 했다. 굳이 제대로 읽어야 되냐 싶다만… ‘하우투리드 사드’를 읽으며 이미 읽은 것들(그동안 대체 뭘 읽은 거냐 우웩)을 복기했다.
 그리고 성귀수 번역가가 야심차게 14권 전집 옮기기로 기획한 것을 얼핏 들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많이 봤다 아이가… 그렇지만 어느 결에 2014년 처음 나온 사드 전집 1권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는 내 책장에 꽂혀 있었다… 2018년 나온 전집 2권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는 아 이전 판이 마지막엔 막 그냥 막버무리 요약본으로 끝나던데 새 번역으로 또 봐?(그걸?????) 하는 마음이 오락가락이다. 그런데 이번에 1권에서 입수한 정보로는 원작도 그렇게 앞의 150가지 이야기만 자세히 풀고 뒷부분은 종이가 모자랐는지 그렇게 압축 요약으로 끝낸게 맞나 보다… 이제 11년이 지나 2025년에 사드 전집3권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이 새로 나왔는데 이 속도대로라면 14권까지 나오는데 50년쯤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성귀수 번역가님 120살 넘게 사세요… 제가 프랑스어를 몰라 후계는 (니가 왜) 못되겠습니다 (니가 그러니까 왜)
 
 전집1권의 표제작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는 짧은 단편이지만, 사드의 주제의식이랄까, 인생모토랄까 이런게 챡 압축된 느낌이었다. 나머지는 이런저런 편지글과 완전판이 아닌 드문드문 남은 원고들 주워 모아 놓은 듯했다. 사드 원전들보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와, 사드 짱짱맨인데 니들이 너무 이상한 놈으로 오해한 거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자세하게 작품 요약이랑, 서신들이랑 넣어서 쓴 해설이 더 메인인가 싶게 비중이 높았다. 그런데 읽어보면 그냥 이상한 놈 맞다. 그러니까 2권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라, 하고 생애 연보랑 작품 목록 소개 이런 걸 제시하는 예열 정도라서, 걱정했던 것과 달리 별게 없었다. 그렇지만 2권 볼 사람들은 긴장하라고… 쥐스틴 시리즈는 이렇게 저렇게 개작에 개명에 여러 판 나온 걸 4,5,6권 이렇게 세 권에 각각 다 옮길 셈인가 본데, 사드 연구할 생각 있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되겠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는 굳이 반복해서 봐야 되나요… 딱 한 권만 추려주시면 안 되겠지요… 아니 그걸 또 보겠다는 건 아니고…. 쥘리에뜨는 확실히 다시 보기엔 심장에 무리가 (심장의 용도...하아…) 가지만…
 
 세상과 불화하고, 사실 세상에 그렇게까지 개긴건 아닌데 그보다 더 심하게 핍박 받고, 나쁜 놈은 맞는데 아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잖아요, 하고 징징대면서 산더미처럼 글을 써 놓은 200여년 전 괴짜 놈의 생애와 작품에 왜 이리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좀 억까다 싶으면 내가 후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듣고 싶던 개소리를 가학적이고 맛탱이 간 장면 사이에서 가끔 던져주는게 우스꽝스러우면서 통쾌한 느낌이 있었다. 감옥에 갇히고 정신병원에 가둬지면서도 써재끼길 멈추지 못한 그 에너지가 신기하기도 했다. 다음엔 곱고 예쁜 걸 봐야겠다. 사드 무덤은 흔적도 없고 그 위에 뿌린 도토리에서 자란 참나무도 다 죽었을 것 같다. 그래도, 아무리 지워 없애려 들어도, 뺏고 가두어도, 마구 불태워도, 늘 세상엔 한줌 반항아들이 있어서 꾸역꾸역 전승되는 미친 상상력…
 
+밑줄 긋기
-죽어가는 자. 바로 그자가 제일 당해야 마땅한 존재였으니까. 그는 선동적이고 과격하며 중상모략을 일삼는, 교활한 방탕아인 데다, 무식한 어릿광대이자 사악한 위험인물로서, 대중을 압도하는 기술을 가졌는데, 결국에는 당시 예루살렘 같은 왕국에서 처형당할 처지가 되고 말지. 그를 제거한 건 정말이지 현명한 조치였네. 다른 때라면 지극히 관대하고 온건한 나의 기준에서도 그 일은 법과 정의의 엄격한 적용을 받아들일 만한 유일한 경우라 할 수 있었네. (32-33, 신성모독 안 나오면 사드가 아니지… 그런데 소크라테스 이야기입니까?(딴청))
 
-내세에 대한 생각을 단념하게. 그런 건 결코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행복의 즐거움, 특히 이 세상에서 그것을 누리는 일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게. 그것이야말로 삶을 배가하고 확장할 유일한 방법으로 자연이 자네에게 쥐어준 선물이니까...친구여, 관능적인 쾌락은 언제나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네. 평생 나는 그것을 예찬해왔고, 그 품에 안겨 생을 마감하고 싶었지. 이제 나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네. (…) 죽어가는 자가 종을 울리자 여자들이 입장한다. 타락한 자연이란 어떤 것인지 결국 설명하지 못한 설교자는 여자들 품에 안긴 채 자연에 의해 타락한 인간이 되었다. (35-36, 행복해진 사제.)
 
-정당하지 않으면서 단지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모든 법은 단순한 횡포에 불과하다. 필요성이란 횡포의 구실이며, 부당함을 윤색할 수 있는 유일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모든 법은 그것이 정당한 만큼만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악인을 사회에서 단절시켜야만 하는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벌로써 응징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악인은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는 것인데, 만약 악인이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면 죄를 지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을 내쫓음으로써 제거하되, 파멸시키지는 마시라. (52-53, 여기서 사드의 사형 반대론 같은 게 도출되나. 일반적 법감정과 사법의 논리가 부딪히는 지점 같기도.)
 
-오, 인간이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판결을 내리는 일이 과연 너의 몫인가? 자연에 한계를 부여하길 원하는 것, 자연의 허용 범위와 금지 대상을 결정하고, 명시하는 것이 정녕 인간이라 부르는 초라한 개체의 속성이란 말이더냐! 아직도 자연의 가장 하찮은 작용조차 해명하지 못하는 너, 자연의 가장 가벼운 현상도 설명하지 못하는 너, 나에게 운동 법칙, 중력 법칙의 근본을 정의해보아라! 물질의 정수를 내게 차근차근 설명해보아라! 그것은 불화성인가 활성인가? 만약 그것이 스스로 운동하지 않는다면, 결코 휴식이라고는 없는 자연이 이제까지 그 안에 존재해온 무언가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내게 말해보라. 그리고 만약 자연이 스스로 운동한다면, 그것이 지속적인 생성과 교체의 정당하고 확실한 원인이라면,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지 말해보라.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지 증명해보여라. 공기란 무엇인지 내게 말해보라. 공기의 다채로운 현상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해보라. 산꼭대기에서 왜 조개껍데기가 발견되는지, 바다 밑바닥에서 어떻게 폐허의 잔해가 발견될 수 있는지 내게 가르쳐다오. 어떤 행위가 범죄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너, 콩고에서는 왕관을 씌워줄 만한 일로 파리에서는 목을 매달아버리는 너, 별의 운행과 정지, 성간 인력과 그 운동성, 별의 본질과 주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확정해다오. (65, 250년 쯤 늦게 태어났다면 이 궁금증쟁이 사드의 답답함이 다 해결됐을까? 과학적 이치에 골몰하느라 이상한 짓은 좀 덜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여전히 변태였을 것 같다…)
 
 -자연이 불어넣은 괴이한 성향들을 낱낱이 묘사한들
 범죄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리. (117)
 
-나는 내 말을 알아들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을 상대로 이야기하니, 그들은 아무 위험 없이 나를 읽을 것이다. (166, 봉쥬르, 해치지 않아요.)
 
-1814년 12월 2일 사드 사망. 유언(‘...무덤에 흙을 덮고 나면 그 위에는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등등의 열매들을 뿌려두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토양이 회복되고 이전처러머 덤불숲이 우거질 수 있도록 한다. 내 무덤의 흔적은 그렇게 하여 대지의 표면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질 것이요, 나로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나에 대한 기억이 깨끗이 사라지는 게 더 없이 기쁠 따름이다.’ 116, 정말?) 에도 불구하고 종교의식에 따른 장례식이 거행된다. 단 그의 바람대로 무덤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7년 전 압수된 ‘플로르벨의 나날들 혹은 폭로된 자연’의 원고는 차남의 요구에 따라 전량 소각된다. (187, 안 돼...나 못 읽잖아...아들이 태워버리자 할 만큼 매운 것이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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