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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밤 ㅣ 샘깊은 오늘고전 2
이옥 지음, 서정오 옮김, 이부록 그림, 안대회 해설 / 알마 / 2006년 8월
평점 :
-20250903 서정오.
이옥의 산문은 수능 국어 대비 문제에 여러 번 등장했다. 마음을 끄는 데가 있어 선집인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를 읽고, 전집 세 권도 고이 모아 두었다. 그런데도 읽기가 더딘 때는 꾀가 나니까, 큰어린이 어릴 적에 읽으라고 사줬던 이옥 단편 모음 ‘일곱 가지 밤’이 눈에 띄자 뽑아 들었다. 한문 문학은 옮기는 사람의 글투가 중요한 것 같다. 서정오 선생님이 다듬어 쓴 이 책은 말맛을 살려 옛이야기 듣듯 쉽게 읽혀 좋았다. 이부록 선생의 삽화도 독특한 맛이 있었다. 몇 이야기는 국어 지문이나 선집에서 겹치는 글이 있었겠지, 그런데 대부분은 새롭고 또 독특했다. 시험을 보다보다 임금한테 찍혀서 잘 안 되고, 끝까지 자기 문체 고집하며 그냥 벼슬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속세 묻혀 살며 내 맘대로 살랜다, 그래도 나 잘 쓰는데 인정도 못 받고 임금한테 혼만 나고 아쉽네...했을 이옥의 마음을 되짚어 보면 이렇게나 잔뜩 쓰지 않고는 답답해 못 살았겠다.
유약한 내 마음은 또 이런저런 바람 같고 물결 같은 잔챙이 사건들에 겁을 먹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도 마냥 걷고 단 것도 먹고 꽃도 보고 물도 보고 그러면 좀 살만해지는 것이다. 힘들지 않은 글을 읽고 힘들지 않게 글을 쓰면 또 조금은 나아지겠지. 나는 이옥을 읽을 때마다 우린 좀 닮은 구석이 있네요 반항아 반쪽 양반아…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 또 위로가 되는 것이다.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이옥이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밑줄 긋기
-그런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마는 이익만을 좇아 사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이익 때문에 망하거든. 그래서 정말 훌륭한 사람은 이익이란 말을 입에 담지도 않아. 그저 어리석고 못난 사람들이나 이익 때문에 죽고 살지. (73, 선생님, 맨날 가성비를 입에 달고 사는 저 같은 놈은 부끄러워지는 구절이구만요)
-나이 열여섯 먹은 처녀와 나이 열여덟 먹은 총각이 사귄다고 칩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자주 못 만난다 쳐요. 만나면 언제나 새롭고, 헤어지면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나날이 커져만 가겠지요. 이럴 때 어쩌다가 서로 만나면 어떻겠어요? 옷자락을 부여잡고 반가워하다가, 맛난 음식도 나눠 먹고 향불도 피우며 밤을 지새우겠지요.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하다 보면, 마음은 앉은자리처럼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고 정은 솜이불처럼 점점 더 두터워질 것입니다. 몸은 봄날의 졸음처럼 노곤하고 마음은 술에 취한 듯 몽롱할 거고요. 좋은 꿈은 오래 가지 않는다더니, 어느새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려 합니다. 첫닭이 울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비단 휘장 드리운 문이 어두컴컴한 것을 보고는 아직 날이 새지 않았다고 좋아하지요. 하느님이 부디 이런 마음을 헤아려 보름달이 기울지 않게 해 주십사고 간절히 빌 텐데, 이럴 때도 밤이 길다 하실 건가요? (125-126, 애틋해라, 암암 짧다 짧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