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민음의 시 252
양안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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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5 양안다.

간밤엔 열한시가 다 되어서까지 안 자고 노는 작은어린이에게 누워라, 했고,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시를 읽어줄까, 읽던 시집을 대충 끄집어내어 ‘언제나 무릎, 언젠가 지도’(나는 왜 오른쪽으로만 넘어져?/지구가 그쪽으로 자전하니까,), ’클로즈드 서클댄스‘(누군가는 죽어서 사라지고, 누군가는 사랑에 빠진 이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는데 우리는 왜 줄어들지 않는 걸까), ’연극이 끝나고 난 뒤‘(나의 역할은 너희들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일,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오버히트‘(나도 알아요 소년과 소녀의 표정이 같다는 것쯤은,) 이렇게 읽다 보니, 또 읽어 줘? 또? 하고 넘기다가 네 편이나 읽어 주었다. 생각보다 소리내어 읽기 좋은 시였구나, 양안다의 시는, 아이에게 읽어줘도 나쁠 장면이 안 나와서 다행이다, 했다. 그리고 불을 끄고 모두 잠이 들었다. 시가 대신 악몽을 꾸어 줘서 나는 꿈 없이 잤는데 작은어린이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어제 사 온 주니어와퍼를 데워 줬더니 양파를 전부 골라내면서 골을 내었다.

2023년 봄에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를 읽을 때만 해도 몰랐지. 3년 동안 한 시인의 시집들을 잔뜩 읽게 될 줄은. 동인 시집 같은 건 빼고 하여간에 읽었다.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2023)
https://m.blog.naver.com/natf/223100105624

작은 미래의 책(2018)
https://m.blog.naver.com/natf/223250955993

몽상과 거울(2023)
https://m.blog.naver.com/natf/223699901869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2020)
https://m.blog.naver.com/natf/223822354627

달걀은 닭의 미래(2024)
https://m.blog.naver.com/natf/223826755110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2018)는 제목이 다 했다. 다 읽은 줄 알았는데 시인의 남은 시집으로 ‘숲의 소실점을 향해’(2020)가 있고, 그리고 올해 또 새 시집 ‘이것은 천재의 사랑‘(2025)을 냈다고 한다. 이걸 또 보게 될지는 이제 모르겠다. 할 만큼 했어 난...

큰어린이와 여름방학 특집으로 박찬욱 영화 몰아보기를 했다. 방학 이전에 ’헤어질 결심‘을 시작으로 ’박쥐‘, ’올드보이‘, ’아가씨‘,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JSA‘,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뭔 전작주의 아카데미도 아니고...사이보그까지 오니까 모든 영화가 다 재밌는 건 아니란다… 나 어릴 때 혼자서 작은 화면으로 여러번 돌릴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미성년자녀랑 같이 보니까 아 이런 거 보여줘도 되나 되지 될 걸 이런 망설임이 영화 중간중간 스물스물 들기도 했다. ’스토커‘는 오티티에 올라온 데가 잘 없어서 이제 아마도 ’복수는 나의 것‘만 남았는데 그냥 송강호 아저씨랑 신하균 아저씨는 단골 출연이란다, 배우 재탕하는 거 보는 재미로 보기도 했단다, 하는 거 말곤 또 할 말이 없겠네 싶어서 이걸 볼 지 말 지는 또 잘 모르겠다.

한 시인 시집을 탈탈 털어보는 것도 어쩌면 감독 필모그래피 강박적으로 다 훑듯 누군가의 꿈을 훔쳐보려는 욕망으로 때때로 지겨움과 실망도 참고 그렇게 매달리는 일 같았다. 왜 이런 소리를 하냐면 이 여름에 봤던 작가들이었단 이유로 닉 레인 아저씨의 ’미토콘드리아‘랑 박상륭 할아버지의 ’잡설품‘을 꾸역꾸역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휴가 때는 벽돌 말고 좀 얇고 가벼운 걸 보란 말이다 멍청한 놈아… 더운 여름에는 묘하게 독서가 자학적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어제 만난 은사님께 한 소리처럼 책을 읽는 것도, 식도락이나, 스윙댄스나, 구슬팔찌 꿰기나, 넷플릭스 정주행이나, 좋아하는 가수 덕질이나, 무엇이든 삶을 견디느라 무료한 시간을 채우느라 아무거나 하는 거라고, 뭐가 특별히 더 낫고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또 했다. 그러니까 여름 신발을 신다 뒤꿈치가 까지면 반창고를 붙이고 그래봤자 자꾸 떨어지지만 희망을 버리고 힘을 내면 되는 것이다.

+밑줄 긋기
-너와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것 우리는 언제나 밤에 대화를 나누었지만 미래를 떠올리면 어둠보다 환한 빛이 떠오르지 과거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거나 서로의 눈을 감겨 주겠지 서로의 미래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걸 알게 되면 나는 너에게서 어떤 슬픔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너도 나에게서 같은 것을 보게 될 거야 네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하면 나는 너의 귓가에 속삭이고 잔잔한 파도 소리, 따갑지 않은 햇빛, 움켜쥔 주먹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 너는 해변에 무언가를 적겠지만 내게 보여 주지 않고 우리는 음악에 가까워지겠지 어쩌면 필름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무엇으로든 불려도 좋을 거야 이름을 잃고, 장르를 잃고, 목소리를 잃고, 끝내 마음을 잃었다는 착각을 하게 될 거야 서로의 착각이 놀랍도록 같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너지는 모래성을 바라보고 갑작스럽게 증발하는 바다, 해변이 좁아지고 좁아지고 좁아지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나면 해변이 아니라 너의 두 팔에 안겨 있겠지 영원토록 한낮 속에 머물지 못하고, 해변이 끝나고, 음악이 멈추고, 영화가 끝난다면 밤이라는 걸 깨닫고 우리는 죽어 있을 시간보다 살아있을 시간이 더 오래되길 바랄 거야 슬픔을 감각할 수도 없이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골몰하게 될 거야 만약 우리,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마음을 겹칠 수 있다면, 우리가 같은 장르로 묶인다면, 서로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본다면, 그때서야 나는 네가 모래 위에 적었던 문장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 안녕, 너는 그곳이 미래인 줄도 모르고 내게 인사를 건네겠지 빛으로 축조된 성, 그 한가운데에 서서 (‘밝은 성’ 전문)

-신은 의심을 확신으로 오독하도록 분노를 만들었잖아 누군가의 꿈속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싶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부딪쳐 온몸이 조각날 수 있다면, 조각난 채로 그의 꿈속에 스며들 수 있다면…...하지만 여전히

밤이 끝나지 않는다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중)

-언젠가 도로에서 죽은 쥐를 작은 그림자로 착각했을 때
내 머리 위로 어느 새 한 마리가 무리에서 이탈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나무 밑에서 너에게 말했다

확실히 그럴 수 있겠어, 너는 모순적인 대답을 하고

눈을 감을 때 보이는 어둠이 모두에게 같을 수 있을까
누가 더 어둡게 보이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사실 나무는 야행성이 아닐까, 낮잠을 자는 동안 자신에게 보이는 어둠을 그늘로 펼쳐 놓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헝클어진 네머리카락이 그림자로 엎어지고 있었다
어느 것도 날고 있지 않았다

어젯밤에는 네가 이 나무 밑에 묻혀 있는 꿈을 꿨다고
그곳에서 꺼내 달라며 내게 부탁했다고, 너는 내 꿈을 징조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저 멀리에서 납작한 새와 날아다니는 쥐를 봤는데 그건 확실히 그럴 수 없는 일이었고, 아마도 지금은
백일몽을 꾸는 중이라고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로 (‘불가항력’ 전문. 이 시를 베끼다가 문득 궁금했어요. 많은 시들이 쉼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더라고, 쉴 수는 있지만 마칠 수는 없는 거냐고,)

-지난밤을 견디자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 눈앞에서 섬광이 멈추지 않았고

희미해진다

밤하늘이 천체를 펼쳐 놓을 때
우리는 영원히 빛의 과거만 볼 수 있을 거라며

물 주는 것을 잊어서 화분이 시들고
물을 주었다는 것을 잊어서 썩고

신의 시간으로 가늠했을 때 우리는 오래 죽어 있었거나 오래 살아 있었다
너는 빛 속에서 죽어 간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혓바닥에 우표 한 장을 올려놓고
오래도록 녹여 먹었다

곧 섬광이 터지겠지
서랍에서 수많은 필름이 쏟아지고, 장면과 장면이 뒤엉키고, 누군가 죽으면서 동시에 태어나는데 도시가 무너져내린다 폭염과 폭설이 쏟아지는 동안 사람들은 여우비라 여기며 괜찮아질 거라고, 이 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익사하는 이가 있다

믿고 싶은 일을 기적이라 부르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을 재앙이라 부르고

너는 손이 차가운 사람, 같은 인간이면서 우리의 체온은 왜 다른 걸까

너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나의 몸은 떠오르고
물을 마시며 지난 악몽을 희석하지만

갈증을 잊은 식물, 빛 속의 얼굴 없는 인물, 끝나지 않는 피날레
그것이 너의 역할이었다. (‘테이블 데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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