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 진실의 그래픽 4
마고 투르카 지음, 김모 옮김 / 롤러코스터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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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31 마고 투르카. 원제 Mon Petit AVC 자그마한 뇌졸중 환자.

생각보다 이삼십대 젊은 나이에 뇌경색, 뇌졸중 발병한 주변 사람들이 많았다.
ㄱㅇ오빠는 함께 밴드하던 베이시스트였다. EP앨범 발매를 위해 기타리스트 겸 엔지니어인 (현 곁의 사람) 오빠와 연습실에서 녹음을 한창 하고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다. ㄱㅇ오빠가 어지러움과 함께 길바닥에서 구토를 하며 쓰러지자, 사람들은 처음엔 취객인 줄 알고 경찰차를 불렀다. 다행히 경찰들이 상황을 금세 파악하고 인근 3차 병원으로 이송해줘서 풍선으로 혈관 넓히는 시술을 받았다. 나는 늘 ㄱㅇ오빠를 이런저런 이유로 구박하곤 했는데, 입원실에 병문안 가서 더듬더듬 말하는 ㄱㅇ오빠를 보니 측은한 마음에 눈물이 돌았다. 그런데 ㄱㅇ오빠의 다른 지인들이 오자 오빠는 유창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를 놀래키려고 엄살 부린 걸 생각하니 또 구박하고 싶었지만… 이후 ㄱㅇ오빠는 회복 잘해서 국문학 박사졸업도 하고 어디 대학에서 교수 자리에 있다.


ㅂㅎ언니는 대학원 입학 동기였는데, 나중에 제법 규모가 큰 연수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언니는 뇌경색으로 한동안 치료 받았다고 했다. 많은 단어들을 잃었고, 다시 배웠다고 했다. 입원 초기에 배우자가 곁에 있는데 ‘자기야...자기는 누구세요?’ 그렇게 물었던 상황이 가장 슬프고 어이없었다고 했다. 이후 ㅂㅎ언니도 박사 과정 잘 마치고 논문도 여러 편 쓰셨고 아마 잘 지내시지 싶다.

ㅁㄱ오빠는 유명 밴드 기타리스트였는데, 역시나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회복한 이후 다른 친구 밴드 공연에 관객으로 오빠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배우자가 함께 와 있었다. 겉보기엔 전과 다름 없어 나는 실없는 소리를 하고, 그러면 오빠는 나한테 신경질을 내는 게 수순이었는데, 한참 대꾸없이 생각에 잠기더니 화도 안 내고 천천히, 진지하게,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지극히 이성적으로 보였지만, 감정적 반응이 동반되지 않는 걸 보며 (원래는 나한테 구박할 타이밍인데!) 조금 슬펐다. 이 오빠도 무사히 박사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해서 곁의 사람이랑 티비 만들다가 규모 작은 스타트업 기업으로 이직해서 신나게 잘 사는 것 같다. 막 회사 행사에서 코스프레 한 거 인스타에도 올리고...버거 사진도 열심히 올리고…

쓰고 보니 다들 고학력자야...여러분 학위 과정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공부는 뇌혈관 질환의 부스터인 것인가… 혈전 제조기인가… 중학교 때 친구인 근육부자 친구도 근래 뇌졸중을 앓았다는데, 무사히 스스로 운전해서 응급실 가서 치료 받고 금세 회복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냥 궁금해서인지, 중고책 사는 틈에 ‘30대에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에 끌린 만화책 한 권을 끼워 넣었다. 위치는 다르지만 나도 폐동맥에 혈전 낀 걸 녹이느라 반 년 약을 먹었으니까, 다른 사람의 투병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한참 전에 사 놓고 이번에 펼쳐 후루룩 읽었다. 만화책이니까 보았다고 해야 하나, 글도 꽤 많긴 하다구…

프랑스에 사는 마고는 나와 연령대 비슷한 1985년생이고, 2007년에 공립 미술 교사로 임용되었고, 2018년 발병 당시 아기를 키우고 있었으니 생애주기도 비슷하다. 집에서 아기 돌보던 중 뇌졸중이 온 걸 자각했고(남동생이 먼저 뇌졸중에 걸려 재활 받는 과정을 지켜봐서 금세 증상을 알았다), 병원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재활센터에서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다가 5개월 만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뇌졸중이 왔을 때 겪을 수 있는 실어증, 반신 마비, 신체 특정 부위의 신경통증, 의사소통의 어려움 같은 걸 만화로 잘 전해주었다. 병원 생활하면서 혼자 자기를 돌보는 일이 힘든 것도 그려주었고….머리 감기, 옷 갈아 입기, 용변 보기, 음식 먹기, 그냥 걷는 일 마저 힘든 도전이 된다는 걸 알았다. 난 심혈관쪽이라 그냥 몸 속만 안 좋았지 딱히 통증도 없고 일상생활도 지장 없어서 뇌혈관쪽 질환이 이렇게 무서운 줄은 잘 몰랐던 것 같다.

마고는 병원 재활 중 문득 그림 그리기가 재활에 도움이 되고, 또 뇌졸중에 관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만화를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공유했고, 2021년에 책으로 묶어 냈다. 남의 일기 보는 기분인데 그럭저럭 흥미롭게 질환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마고는 예민한 성격이지만 의외로 병을 앓으면서 더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기도 했다. 그건 나도 조금은 겪었던 부분…

아픈 사람 이야기를 문득 꺼내본 건, 반 년 전 8mm안팎의 결절이 다수 보인다는,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라는 유방 검진 소견 내준 병원에서, 이제 6개월 되었으니 병원 방문하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병원을 정말 가야 하나? 귀찮으니 그냥 다음 종합 검진인 12월에 갈까? 하던 차에 가슴을 촉진해보니 왜...안 만져지던 제법 큰 멍울이 만져져… 의료 전문가도 아닌 내가 만져서 알 정도면 이거 많이 커진 거 아니냐… 일단 근처 3차 병원 유방외과에 다음 주 가장 빠른 진료를 예약해 두었다. 그냥 섬유선종 같은 자잘한 이슈일 수도 있지만, 항상 최악을 대비하는 편이라 아...직장 어쩌지… 우리 애들은 알아서 크니까 걱정은 안 하지만… 또 휴직할 수도 있나… 이러고 망상하다가 형광주황색 이 책이 보여서 한 번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 치료기를 블로그로 검색한 것이 제법 도움이 되서 나도 간단하게 폐색전증 치료 후기를 남겼었는데, 만화책으로 찍어낸 질병 이야기도 제법 어렵지 않게 병에 대한 정보를 일부나마 전해주고 있었다. 뭐 그래서 진료 잘 받고 오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어 별거 아냐 다음 6개월 후에 또 추적관찰...이러면 가장 다행일 것이고, 어 별거 아냐 진공흡입해서 조직검사해 보면 별거 아닐 거야...하면 또 다행일 것이고… 이런저런 다행을 떠올리며 주말엔 책이나 읽고 먹을 거나 열심히 먹고 (현재 43킬로그램대인 나새끼는 건강할 땐 문제 없던 저체중이 아프게 되면 큰일이겠구나 싶어서 잘 안 먹던 탄수화물 마구 흡입 중...)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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