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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밑줄과 생각
정용준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2월
평점 :
-20250412 읽기 중단. 정용준.
또 생존 소설가의 산문집을 사서 읽으면 나는 개다.
아마 이 책 포함 얼마를 사면 알라딘이 사은품 준다 해서 마침 신간이네, 하고 전자책을 구매해 놨다. 20여일 정도 동안 읽어 보려고 가끔 펼쳐서 애를 썼는데, 30몇 퍼센트쯤 읽었다는 독서 진행 상태를 보고 생각했다. 전자책은 팔지도 못해.
집에 쟁여둔 정용준 소설은 아마 읽을 것이다. 소설은 좋았거든. 산문은 하아...식상하고 진부하고 쓸데없이 진지한데 껍데기만 뒤적이는 느낌이었다. 누구는 진지하게 쓴 건데 이렇게 말하면 속상하겠지만 견디면서 다 읽어 보자, 하다가도 야 왜 견뎌...인생 짧다… 이럴 시간에 이 작가 소설을 봐 그냥… 아니다 다른 거 봐 다른 거… 문장들이 도무지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 튕겨나갔다. 자꾸 왜 하나마나한 소리 하냐… 문학이 하는 하나마나한 소리는 가끔 울리기라도 하는데 이건 진짜 텅 공허해서 나랑 공명하지 못했다.
시보다 꽃을 잘 엮어서 꽃집 사장님 된 누군가가 갑자기 궁금해서 가만 꽃 사진들을 보고, 나는 문학에 애정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질투가 많아 엉망인 것이냐 이럴 시간에 재밌는 걸 읽고 쓰는 편이 낫지 않겠냐, 그러다가 전자책을 기기에서 지워버려야지, 했다. 그렇다고 밑줄을 긋지 않은 건 아닌데, 그어둔 밑줄들을 가만히 다시 읽어보니, 읽어 봐도 아...안녕. 소설 만세. 내 비슷한 혹은 조금 더 나이 든 사람들의 노화로 내 노화를 감각하는 게 싫다. 이미지든 글이든 사유든 싫어…
+밑줄 긋기
-그러나 동시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노력 탓이라면 합격하지 못한 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나쁘다면 게으른 청춘이자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침잠을 줄이며 이토록 열심히 매진했어도 당신은 더 노력했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
-사랑을 말할 때 사실을 말하는 이가 싫다. 팩트를 정의라고 믿는 이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일기와 편지를 미워하는 이들이 밉다. 소설책으로 머리를 때리는 선생과 이야기를 거짓과 가짜라고 가르쳤던 화학 선생이 싫다. 번호를 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뒤 책을 읽으라고 했던, 읽지 못하는 나를 죽어도 포기하지 않던 송곳니가 뾰족했던 국어 선생이 싫다.
-어느 날 티브이를 보다가 무심하게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할아버지에게 했던 말이 뭐였냐고. 엄마는 빨래를 개면서 말했다.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당신의 손녀가 천국에 먼저 가 있어요.”
-이 정도 나이가 됐으면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철들고 성숙한 몸과 마음으로 안정을 느껴야 할 텐데. 나는 불안했고 늘 초조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나는 속았다. 서른이라는 이미지. 마흔이라는 무게. 그것들은 다 허상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작하는 육십이 있고 도전하는 오십이 있고 포기하는 스물이 있으며 안주하는 서른이 있다. 나는 끝났다고 믿는 마흔이 있는 반면 새로운 꿈을 꾸고 배우고 도전하는 마흔도 있다.
-욕심. 욕망. 꿈. 소원. 그것들은 ‘지금’과 ‘여기’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그 충동들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삶을 나의 욕구와 나만의 가치로 살아본 적 없는 아무개가 될 수도 있죠.
어떤 충동은 미래를 품고 도래합니다. 어떤 충동은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집니다. 충동. 그것은 갑자기 빨라지는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중요한 에너지입니다. 우리는 물에 빠질 수 있지만 파도를 탈 수도 있습니다. 떨어질 수 있지만 하늘을 날고 더 빨리 더 멀리 이동할 수도 있죠. 박동과 충동은 변화를 위한 도약이자 도전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변화 그 자체입니다. 어떤 직관과 직감,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적인 그 느낌을 소중히 여기세요. 내 안에 무언가 들어왔다는 기분. 무엇이 내 마음속에 불을 놓았나. 나는 무엇을 향해 타오르고 싶은가.
-사유의 높이는 높고 크기는 무궁하며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그만큼 좌절한다. 이상이 큰 존재는 하찮은 자신에게 실망하기 마련이다. 비루한 육체는 사유와 정신이 만든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원하는 것이 눈앞에 있지만 움켜쥐지 못한다. 상상은 현실을 누추하게 만들고 어떤 생각은 현실을 한계와 낭떠러지로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자는 사랑받지 못함으로 우주에서 가장 슬픈 생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