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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사드 ㅣ How To Read 시리즈
존 필립스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20250405 존 필립스.
저자의 덧붙임인지, 역자의 첨언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보면 좋은 자료’(부록?)에 사드의 저작들을 이 순서대로 권한다.
-사드를 처음 읽는 사람은 리베르탱 작품 가운데 가장 덜 잔혹한 것으로 시작하고 싶을지도 모르니, 다음의 순서로 읽도록 충고한다. ‘규방철학’ ‘쥐스틴’ ‘신쥐스틴’ ‘쥘리에트’ ‘소돔 120일’ 이외의 사드 작품은 각기 취향에 따라 어떤 순서로 읽어도 좋다. (186)
역자 선생님은 후기에서 원전 보다 친절한 이 해설서에 대해 언급하신다. 그 말씀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이 책을 읽지 않고 사드의 글을 먼저 대했더라면 분명히 몇 장 넘기지 못하고 그냥 덮었을 것이다. 적어도 역자에게는 이 책이 사드의 원작보다 훨씬 재미있고 친절하다. 또 사드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보부아르, 크리스테바, 들뢰즈 등 당대의 대가들이 아무리 지지했다 한들 쉽게 손에 잡지 못했을 사드의 해설서를 번역하면 재미있겠다는 용감한 생각이 든 건 순전히 저자 존 필립스의 설득력 있는 해석 덕분이다. 각 장마다 실려 있는 사드의 원문, 참고하기 위해 뒤진 사드의 원저들은 과연 읽기에도 만만찮았고, 번역하기에는 더욱 힘겨웠다. (198,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하여간에 역자 선생님 힘드셨대….)
뭐든 거꾸로 가는 놈 답게 나는 아래 순서대로 이미 사드를 읽고 나서야 해설서를 뒤늦게 읽었다.
’소돔 120일‘(2013...와 일찍도 봤다. 그래서 동서문화사의 악명 높은 중역판 및 완전판도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을...그렇지만 역겹게도 두껍더라...)
https://m.blog.naver.com/natf/221297784892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규방철학, 2021, 민음사판. 사투리 번역이 진짜 우스웠던..지기미 죽이네유 이런 거...)
https://m.blog.naver.com/natf/222211254131
’미덕의 불운‘(2023, 이게 쥐스틴인지 신쥐스틴인지 모르겠다. 민음사판)
https://m.blog.naver.com/natf/223146766847
’악덕의 번영‘(2023, 이것도 동서문화사판만 있을 때라...소돔120일 보다도 난 이 책이 너무 힘들었다. 심장딸 시발거…)
https://m.blog.naver.com/natf/223155501988
많이 아프던 2023년 죽을 위기에서는 벗어난 뒤 그 7월에 연속으로 사드를 두 권이나 본 연유는 잘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생을 생생하게 감각하고 싶었는가...칠조어론도 그때 봤으니 그런데 소생 득도 열반 뭐든 간에 멀었고 아마도 나중에도 안 될 거야...
국내 번역서도 제대로 출간되기 이전인 2008년에 나름 해설서로 부분 인용하면서 맛뵈기로 감질나게 했을 이 책, 소설 원문 다 읽고 난 뒤에 봤지만 유용했다. 되새김이랄까...사실 당시엔 뭐 그렇게 진지 빨고 읽지 않았고, 이 반항아 새끼 변태에다 징그러운데 뭔가 짠하다… 빌런에 이입하는 병에 걸린 나는 그냥 기괴한 서술들이 고단수의 블랙코미디로만 읽혔다. 똑똑한 또라이 변태를 감옥에 가두면 인류는 이렇게 다른 의미로 초인간적 괴물이 되는 것이다…
국내 번역된 사드를 읽어야 하느냐, 누가 물으면 굳이? 굳이??하겠지만 해설서는 그럭저럭 흥미롭고 맛뵈기로 사드에 대한 배경 지식 쌓기에 좋았다. 본게임 다 하고 이제서야 배경 쌓는 나놈은 늘 반대라 쫌 그렇지만...뉴런하다 쎈 풀고 망하는 역방향의 인생이지만… 조용필도 사드랑 이 해설서를 읽었다면 노래 가사 바꿨을 거다. 나보다 불행하게 살다 간 사드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밑줄 긋기
-사드는 무신론적 유물론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논쟁적인 발언자로서, 계몽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담당한다. 그는 다른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감히 속삭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들을 크고 분명하게 발언한다. 신은 죽었으며 신 중심적 우주가 타버린 재에서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다. (18, 난 어둠을 맡을게. 니들은 빛이 되렴….)
-그러나 한마디로 요약해본다면 그는 최고의 회의주의자, 젠체하는 정통주의자들의 옷 솔기를 뜯어버리고 허세의 풍선을 터뜨리고 일관성 없음과 위선을 폭로하기로 작정한, 의심하는 목소리라 부를 수 있다. 실제로 독자들은 사드의 글이 풍자적이고 아이러니하거나 패러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자주 발견할 것이다. 사드는 철학적 논쟁에서의 의도적인 트집쟁이이며, 그의 작품에 나오는 지독하게 극단적인 문장은 무신론적 유물론의 논리를 극단적 결론에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 고안된 전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19)
-자신의 장점(정직성, 감수성, 자비심, 자선, 아내와 자식, 친척,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죄다 늘어 놓은 뒤 후작은 이렇게 계속한다. “나의 악덕에 대해 말하자면, 통제할 수 없이 화를 잘 내는 데다가 온 세상이 일찍이 보지 못한 종류의 도덕관을 갖고 있고, 광신적일 정도로 무신론자이니, 단 두 마디로 다시 한 번 말해보자. 나를 죽이든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든가 하라. 난 절대로 바뀌지 않을 테니까.”(56, 드 사드 부인에게 보낸 편지, 1783, 이런 고집불통, 그런데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는 구나...자존감 무엇...)
-...그 행간에서는 진짜 사드가 항상 드러난다. 그 사드는 규칙을 준수하기보다는 위반하려는 성향이 훨씬 더 큰 사드였다. 결국 그의 지속적인 명성은 그의 작품이 관례적인 문학적 기준에 어느 정도까지 들어맞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이 문학적, 예술적 규범만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과 가치를 어느 정도까지 전복하는 것으로 간주되는가 하는 데 근거한다.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카터가 지적했듯이, 사드에게 모든 예술은 오로지 “기존 질서의 영구적이고 사라지지 않는 전복”이다. (102, 전복죽 지난 주에 엄마가 해줬다.)
-과잉이란 인간을 인간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줄 지배력의 잃어버린 차원을 찾아내어 인간적으로(또는 초인간적으로) 가능한 한계를 끝없이 확장한다는 뜻이다. 과잉은 모든 기대를 넘어서며, 과잉은 리베르탱이 계속 위반하도록 강요되는 항상 움직이는 경계선이다. 신체적, 도덕적, 종교적 규범과 규칙을 위반하는 데서 가능한 것은 오직 향유 뿐이기 때문이다. (107-108)
-...사드는 동시대인들에게 선한 일을 하려는 충동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악한 행동이 따라 나올 수 있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견해를 직면하라고 강요하며, 그들에게 최근의 정치적 소동 속에서 새로운 공화국이 얻은 권위의 출처가 바로 그것이 행한 한 가지 불법적이고 끔찍한 행위, 즉 국왕의 참수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실 ‘쥐스틴’ 기획 전체는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덕성에 대한 비타협적인 헌신이 얼마나 쉽게 참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구상되었다. (127, 피 흘리지 않는 권력 교체를 생각하면 그래도 세상은 진보했다고 믿어야겠지...그런데도 이 구절은 현대 정치에도 왠지 오버랩된다. 내가 나빴네 어디 감히 민주주의를 깔라고)
-쥐스틴 본인은 결코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되지 않지만, 우리는 서술의 그늘에 숨어 그녀에게 공감하면서 독자들에게 윙크를 보내는 저자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마치 ‘당신들은 이 이야기가 실망스럽겠지.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이. (129-130, 가끔 이런 메타적 농담 버무린 표현 재밌다.)
-당황하고, 그런 배은망덕함에 굴욕감을 느끼고, 너무나 혐오스러운 일을 당했지만, 그래도 더 나빠질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달아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만족한 이 불운한 아이는 신에 대한 감사를 중얼거리면서 성문을 지나 큰길로 이르는 길을 내려갔다. 그곳에 거의 닿았을 때 하늘에서 번쩍이는 벼락이 떨어져 그녀를 때렸다. 번개가 그녀를 관통한 것이다. (…) “빨리 와요, 부인. 와서 하늘이 한 일을 보라고요. 하늘의 힘이 경건함과 선함에 어떤 보상을 내리는지 봐요. 덕성을 사랑하라고 말들을 하지. 그런데 그 가장 헌신적인 추종자에게 하늘이 어떤 운명을 마련해두었는지 봐요.” (131, 쥘리에트 일부 인용. 난 이걸 미덕의 불운인지 악덕의 번영인지에서 봤는데 하여간에 개충격적인 전개였다. 이 짓궂은+지독한 사드 새끼, 했던 부분)
-사드의 인간이 자신을 낳아서 신도 없고 적대적인 우주에 떨어뜨려 놓은 자연을 용서할 수 없다면, 혹은 자연의 공범자 행세를 하는 여성을 용서할 수 없다면 모든 여성의 대변인인 어머니와 비슷한 쥐스틴에게 인간의 상징적인 비출생의 장소만큼 더 어울리는 죽음의 장소가 달리 있겠는가. (134, 이전 이후 인용 부분은 이거 읽을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안 옮길 건데 이걸 이렇게까지 해석하냐 싶긴 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코미디와 멜로드라마에서 그날 공연의 결말을 최후의 순간에 해결해주는 기계장치의 신(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들어 있는 연극적 관습이 여기서는 전면적으로 도치되어, 구조의 주체이던 어머니가 오히려 구조의 대상이던 딸의 제물이 되어버린다. (161,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 결말 보면서 저렇게 외제니 엄마 능욕하고나서 다들 밥 먹자! 하는 새끼들 보고 진짜 질렸던 기억이…)
-하지만 사드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무엇보다도 이런 것보다 덜 특정적이고 더 널리 퍼져 있는 것, 즉 광신주의가 증식되는 시절에 종교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가리지 않고 건강한 회의주의를 지닐 수 있는 재능이다. 푸코에게 사드는 고전 시대와 근대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존재였다. 그의 작품은 낡은 군주제와 귀족 세계, 또 그것을 지지했던 종교적 신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총체적으로 제시할 뿐 아니라, 어떤 형태든 혁명 이후의 모든 독재주의가 끌어들이는 위험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이는 그의 동시대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멀리 나아간 비판이다. (178, 저자님 사드 못 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