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의 발화점 2 - 완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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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6 박선우.

 하안이는 은성이를 좋아했다. 몸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보일 만큼. 그런 하안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효정이는 하안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활활 타는 불이 옮겨 붙은 것 같았다. 잘 모르던 사이에서 조금 아는 사이, 친해질락말락 하는 사이, 그리고 좋아하는 사이,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거기서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이, 이런 미묘한 관계들의 지점을 잘 그린 만화라고 생각했다. 사실 많은 사이들이 그렇게 무 자르듯 선명하지 않고 또 가까워질 듯 멀어지기도 한다. 서사에서나 아예 헤어지거나 뭔가 명확하게 관계에 명명이 되거나 영원한 사랑 어쩌구 하는 거지. 그래도 친절한 작가, 핍진성 바르느라 조금은 고구마 먹은 기분이 될 독자들에게 마지막에는 원하는 장면(?)을 산뜻하게 건네주고 마무리했다.

 수능 국어 단골 작품 중 춘향전을 보다가 든 생각이다. 겨우 열여섯 된 여자아이 남자아이가 만난다. 그네 타러 나온 여자아이 겉모양만 보고 남자아이가 하인 보내서 찔러본다. 편지도 주고 어쩌고 저쩌고 플러팅 성공, 여자애네 집에 가서 폭풍 섹스한다. 정든다. 그런데 우리 아빠가 회사 다른데 발령 났어…서울로 가야 해… 여자애는 야 니가 나 꼬셔 놓고 뭐야 나 죽이고 가든가 데리고 가… 그러다가 체념하고 가라 가… 주안상 잘 차려 먹여 보내준다. 고을에 새 관료새끼가 춘향이 예쁘다는 소문 듣고 와서 야 니 엄마 기생? 너도 기생, 나랑 섹스 해, 한다. 춘향이는 나 이미 몽룡이랑 섹스, 다른 놈이랑은 할 생각 없어, 해 하라고! 안 하면 감옥 가라… 진짜로 감옥에 가두고 나중에 몽룡이가 와서 풀어준다.


 그때는 열여섯이면 어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열아홉 스물 이렇게 설정해도 뭔가 논란의 서사일 듯하다. 과거 사람들은 삶이 짧아서 그랬던가 그래서 고민할 시간이 짧았던가 좋아하는 마음 뒤에 상대와 뭘 하게 될지 뭘 바라는지 명확했나 보다. 요즘은 사랑은 그런게 아니라고, 너는 나랑 하려고 만나는 거냐고 개처맞을 일이 많아서 하여간에 뭐든 삼가야 한다. 


 청소년기의 사랑은 더 그렇다. 그랬다. 무얼 이루고 무얼 바라는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마음은 커지기만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개는 그냥 좋아만 하다 끝났다.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든 밝히든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귀는 애들은 고3 때까지도 되게 예외적인 경우였다. 경찰대 준비하던 같은 반 남자아이는 옆반 여자아이를 쉬는 시간마다 자기 무릎에 앉혀 놓고 놀았다. 그게 그렇게 열받더라… 왜 내가 열이 받던지 ㅋㅋㅋ 우리 시대에는 춘향이 몽룡이 되기는 드물고 되어서도 그닥 좋을 일도 못 된다. 고딩엄빠 이런데 나왔다가 조혼의 폐해만 보여주고 조기이혼하는 엔딩만 간간히 들리고… 뭐가 좋다 나쁘다 그런건 아니고 그냥 그렇더라고…


 효정이는 하안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사랑은 결국 솟구치는 불길 속에 자신을 던져넣는 것 만큼이나 지독히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조금만 맞는 이야기 같았다. 사랑의 감정은 자각했는데 거기서 뭘 더 어쩌지 못할 때 그런 것 같다. 이해 받고 아끼고 함께 좋은 순간을 나눌 수 있으면 괴로움이 본질은 아니겠지. 그런 좋은 것들을 갈망하지만 그것이 외부의 방해물이든 혹은 관계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든 얻지 못할 때 겪는 고통이지 싶다. 그런데 그렇게 이루지 못해 괴로운 건 사랑만은 아니다. 성적 향상도, 취업도, 선거 당선도, 공모전 당선도, 한정판 굿즈 획득이나 최애 가수 콘서트 티켓 획득도 그러하다… 그런 욕망조차 사랑의 범주 안이겠지만… 그러면 살아가는 중의 너무 많은 것들이 다 사랑하는 일이겠다. 


 읽은 것도 쓴 것도 너무 없어 주절주절 말이 많네… 이 웹툰 완결은 2019년도였다는데 단행본은 2023년에 나왔다. 오늘 3년째 공부하고도 개빠가인가 나아질 기미 안 보인다고 징징 좌절했는데 연재+책 엮기 까지 저렇게 걸린 거 보면 내가 징징댈 일도 아니겠다… 아니 그래도 수험 생활 9수 10수 할 수는 없잖아… 그러면 사람이 좀 많이 망가지지 않겠니… 그런 망가진 사람들도 사랑하겠다고 사랑하는 사람 지키겠다고 개삽질도 하고 그러지 않니… 부정칭 미지칭 읍읍 아무말 대잔치

나는 이상하게 이런 장면이 좋더라. 생활의 지혜. 여름 끝나면 보호 덮개를 꼭 씌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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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essa 2024-05-0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ow

반유행열반인 2024-05-07 15:53   좋아요 0 | URL
Wow!!! l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