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7 박상륭.

-경- 칠조 열반, 칠조어론 완독 -축-

칠조는 산 채로 해골 같은 석굴 아래 묻혔다. 감옥 문은 열려 있었고,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지만 촛불중은 어쩌면 스스로 땅 속에 담겼다. 누가 묶어둔 것도 아닌데, 이 여름 여기 붙박힌 나는 이런 나여서 촛불중의 그 시간과 사변을 제법 몰입해서 따라갔던 것 같다.

십 년 전에 그날 처음 본 사람들 몇을 엮어 울산 여행을 했을 때, 시내에 처용관광 이름 단 관광버스가 자주 지나다녔다. 삼국유사 읽다가 만난 처용 이야기는 제법 내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었는데, 울산에 처용암이 있어 거기서 여행사 상호를 따온 모양이었다. 달밤에 신나게 놀고 집에 왔더니 내 방에 다리가 네 개야… 이거 뭐야 몰라 무서워 하고 그냥 기어 나온 처용한테 침입자인 두 다리 주인 객귀새끼가 어이쿠 너그러움 니는 처를 용서해서 처용이가 처죽일 나놈을 용서해서 처용이가, 앞으로 니 얼굴 붙은 데는 안 들어가, 그 귀신놈이 역신이었다고, 사실 처용처는 바람 피운 거 아니고 역병 들어 앓던 거라고 금가루 뿌리는 해석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에 옛날 사람 눈에 보자마자 둘다 처죽이지 않고 내버려둔 처용이 난 놈이었나 보다.
아니 그런데...오래 지나 생각해보면 정말 처용이 그냥 별 상관 안 했을 수도 있지 않나… 질투란 감정은 본능이 아니라고, 학습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아니 또 그리고, 처용처 이야기는 아무도 안 들어 봐… 그냥 이놈저놈 토스하는 공 취급이네… 역신 새끼가 강제로 처들어온 거면 처용처 불쌍하지 않나… 역신 새끼가 처용인 척 혹은 불 끄고 살짝 들어왔는데 처용이랑 체온이랑 실루엣이 엄청 닮았을 수도...이건 확률이 낮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니… 몰루겄다.

칠조어론에는 수많은 동화와 민담이 변주되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고갱이를 이루는 서사는 바로 이 처용 이야기이다. 촛불중이 아직 중 되기 전에, 자기 처가 있는 신방에 (그냥 자기 처라고 하다가 나중에 신혼 첫날이라고 밝혀짐...개미친) 자기 친구놈을 자기 대신 들여 보냈다. 촛불중은 절시(관음증) 취미가 있었는데, 막상 그래 놓고는 빡이 쳤는지 도끼로 친구 골을 따 죽여버리고 (원래는 처까지 죽였나 했는데 역시 나중에 보니 부인은 그냥 청상생과부 만들었다고…) 그 길로 집을 나와 떠돈다. 자기가 ‘처용’하지 못한 게 내내 걸렸는지 막 자기 설법 펼칠 때도 처용과 역신, 처용처 이렇게 셋을 두고 수사학 썰 푸는 적도 많고, 뭐만 하면 처용 처용 한다. 육조랑 구조(장로손녀딸)랑 칠조의 삼각구도도 비스무레하다. 아 셋은 복잡혀… 사람 사는 건 몸도 마음도 왜 이리 복잡한지...

돌방에 갇혀 밥이랑 물대주는 화장장지기에 의지해 목숨 부지하던 촛불중은, 화장장지기가 소주 먹고 돌아버려서 소금이랑 모래랑 소주랑 물 섞어 바치자 벼락 같이 분노한다. 그러다가 완전 돌아버린 화장장지기가 밥 대신 똥이랑 오줌 넣어주니 그걸 먹고 또 연명한다. 또 그러다가 정신줄 잡은 화장장지기가 쌀죽 쒀서 공손히 바치니까 극락을 맛본다. 삶의 구차함, 삶에의 집념, 이런 거를 이렇게 써 놓으니까 진짜 눈물이 앞을 가려가지고…

칠조는 이미 묻혔고 곧 죽을 걸 아는데도, 아직은 안 죽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궁리도 하고 유체이탈도 한다. 사실 이미 죽었다고 체념하기에는, 세상 산 것들 모두 언젠가는 죽을 건데도 이렇게 열심히 살지 않냐…
촛불증은 죽음을 앞두니 자기가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도 떠올린다. 내가 그렇게나 코빼기도 안 쳐다본다고 화냈던 죽음의 한 연구에서 죽었던 수도부 보살스님도 꼴랑 한 쪽이지만 자기 때문에 죽었지...하고 조금 미안해 한다. 그걸로 땡이라 유감… 그러다가 자기가 굳이 자기 신방에 밀어 넣고 죽여버린 친구한테 갑자기 미안해져서 어딘가로 유체이탈을 하더니, 죽었는데 죽지도 못하고 갑자기 누군가의 혼이 죽음을 탈취해 버려서 객귀가 되어 버린 예전의 친구에게로 흘러간다. 그리고는 그 친구가 벌레에 담겨 죽도록 도와준다. 문득 박상륭 선생이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에 나가 텔레비전 쏼라쏼라 못 알아 먹는 중에 (캐나다 티비에도 놔왔을란가 모르지만) 그나마 더블유더블유에프의 레슬링을 즐겨 봤을 것 같다는 망상을 했다. 왜냐하면 죽음의 한 연구 대미로 가는 길에도 큰형장나으리와 눈 먼 육조스님의 한판 승부 격투기가 벌어지는데, 여기서도 객귀의 죽음을 탈취한 혼백 개구리와 객귀 까마귀의 결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냥 뭔가 갑자기 무협지마냥 패고 맞고 하는 거 보면서 웃겼다… 환호하는 신선, 요정, 귀신 등등의 관중들과 날리는 복숭아꽃… 개그 잘 치심…

어제는 우체국에 갔다가 갑자기 비가 뚝뚝 내리는데 집으로 발걸음을 안 돌리고 가던 그대로 걸어 3킬로 정도 거리에 있는 공원에를 갔다. 그냥 갑자기 연꽃이 보고 싶었다. 그 공원에 연못이 있지, 하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가다가 아이스 룽고 한 잔 사가지고 빨대 쭉쭉 빨면서 공원에 갔더니, 이 더위에도, 비도 오락가락 하는데도 사람들은 스케이트 보드도 휙, 나르고 배드민턴 테니스도 열심히 치고, 산책도 조깅도 하고, 풋살도 치고, 바닥에 앉아 명상도 하고, 다들 부지런히들 살고 있었다. 연못 근처에 가니 찔레꽃마냥 찌지한 쪼그만 장미꽃들이 심겨 있었다. 장미향이 좋아서 일단 연꽃 못 보더래도 이걸로 위안 삼기로 했다.
연못에는, 3년 전에 왔을 때는 꽃은 없어도 연잎이 무성했는데, 이제는 그 연잎도 다 죽어버리고 부들이랑 조릿대랑 풀떼기만 무성하고 연잎은 겨우 가물에 콩나듯 일부만 남아 있었다. 연꽃은커녕, 장기 두는 할아버지들만 정자에 한 트럭이었다. 그래도 연못 한 바퀴 빙 돌아 더위 구경을 하고, 좀 많이 걸어서 무거워진 발로 저벅저벅, 촛불중 마냥 고-해-고-해-해-고-애고애고 하면서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7킬로쯤 걷고 만걸음 쫌 넘게 걸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앞날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쓸데없는 고민만 많고,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자책을 하면 친구는 그런 말도 입버릇이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전화기 속에서) 혼을 냈다.

좀 못되먹은 무리가 장악했던 유리읍사도 판관 겸직 읍장과 그의 남자 애인의 급살맞음으로 정리가 되고, 장로손녀딸이 구조 겸 새 읍장으로 칠조의 장례를 정중히 치르고, 나도 긴 이 여름 함께 했던 촛불중과 작별 인사를 했다. 머리에 신발짝 얹고 죽은 거 조금 귀여운데 뭐 세상 바다 그렇게 떠받치고 죽는 건 큰 스승들이나 할 일이고, 나는 최대한 늦게, 덜 아프게 죽을 방법이나 궁리하면서 살아야지…

수능 끝나면 칠조어론 봐야지, 했는데 올해는 몸도 아프고 그래서 예상보다 조기 수능 종료(응 안 봄) 되었다. 그래서 다시, 칠조어론 다 보면 수학 다시 한댔는데 성질 급한 나새끼는 이미 산수 쪼끔씩 진작에 풀기 시작해서 뭐… 일신 달라질 건 없고… ‘륭’책 욜책 안녕… 이제는 ‘박’책이랑 ‘상’책이 기다린다. 이미 ‘죽음의 한 연구’를 봐버린 ‘상’책이 유리하기 때문에 다음 박상륭 독서는 ‘상’으로 간다… 나아아아아중에… 그냥 박상륭 안 보고 수학도 안 풀면 안 되니… 그러기엔 심심한 인생… 심심해서 그냥 볼라구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eagene 2023-08-17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끝나셨군요ㅎㅎ 열반인님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3-08-17 21:32   좋아요 1 | URL
예진님도 무엇이든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