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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 ‘모두’의 페미니즘에서 누락된 목소리 ㅣ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미키 켄들 지음, 이민경 옮김 / 서해문집 / 2021년 3월
평점 :
-20230724 미키 켄들.
제목이 멋있어서 직장에서 책 사준다 할 때 갖춰 놨었다. 그냥 여성주의 책이겠지, 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저자가 어떤 이야기 하는 줄을 몰랐는데, 원제는 후드 페미니즘, 흑인,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지역, 음식이나 교육이나 사회 계층 사다리 올라가기 같은 기회가 제한된 곳, 주류에 속하지 못해 발언이 제한되는 사람들, 소외되고 목소리 지워지는 사람들에 대해 또다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존중받을 자격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대로 검색해보기도 하고, deserved, 이렇게 영어로도 쳐 봤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내 나름대로 이해해보려고 생각하다가 여러 사건들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돌아보았다.
비극적인 범죄나, 부조리한 시스템에 치여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라인 상에서 접한다. 아직도 희생의 과정에 놓여 있고, 갈려나가고 있지만 어찌어찌 생명줄은 붙들고 있는,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혹은 버티지 못하고 여러 방식으로 사회에서, 구조에서 소리소문 없이 이탈한 사람들은 잘 다뤄지지도 않는다. 죽음이라는 극단에 직면해야지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애도한다. 그런데, 죽은 이들은 효심이 깊고, 가족이나 자기가 책임진 사람들을 잘 챙기고, 늘 성실하고, 웃으며 친절하게 남을 대하고, 남을 위로할 줄 알고, 등등 온갖 미덕을 갖춘 이들이었음을 유족과 주변인들과 미디어가 열심히 알린다. 정말 그런 좋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런 좋은 말을 덧붙일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의 죽음은 덜 슬픈 일인 것일까. 덜 아까운 죽음일까. 아니면 적당히 나쁘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는 그렇게 더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숭고하고 아쉬운 죽음으로 그려지는 것일까. 극과 극의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은 적당히 착한 면과 나쁜 면이 섞여 있고 그 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달라 사람의 선하고 악함은 상대적인 것이라 여기는 나에게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해결될 수는 없는 궁금함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가진 이들을 안타까워하고 추모하는 행위는 그와 함께 하던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의 잘못까지 없던 일로 부정하고, 그의 잘못을 고발하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세상에 밝힌 사람의 피해까지 그저 호소, 주장으로 모는 인간들은 잘못되었다. 반대의 경우도 보았다. 관심을 가지던 퀴어 활동가가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과 함께 그가 저질렀던 성폭력, 연인간 폭력 등의 폭로가 이어졌고, 피해자들은 그의 추모 자체가 2차 가해라고 해서 모든 추모행사가 취소된 걸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피해자들의 회복을 빌고 행복을 기원하지만, 복잡한 마음도 들었다. 모든 죽음이 같은 무게는 아니라는 것. 추모와 애도를 금지당하는 죽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소리를 한다. 죽고 나서 조롱 받고 잘 죽었다, 소리 듣기를 싫어한다. 죽고나면 자신은 듣지 못할 말들인데도. 내가 죽으면, 저 하고 싶은데로 사는 팥쥐 엄마에다가 이기적이고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고 다하고, 악성독후가미스트였고, 투철한 직업 정신도 갖추지 못해서 맨날 도망갈 구석만 찾다가 결국 실패한 인간이었습니다… 하고 조문객 없는 텅빈 빈소에 누워 있다가 태워질까. 아니면 그래도 용인할 만큼의 나쁨이라서 그는 좋은 00였습니다...하고 옅은 화장 발라주듯 컨실러는 칠해주려나… 아직 안 죽어서 알 수가 없네. 죽어서도 알 수는 없겠네. 이러나 저러나 죽은 뒤의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종 문제와 성 평등 문제가 얽히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도, 범죄피해나 경찰의 과잉진압 등 억울한 사망 사건도 아주 많이 연루되어 있긴 하지만, 내가 고민한 것 이상으로 복잡한 측면이 많았다. 여성주의에 관한 많은 담론과 저술과 주도적인 운동이 시작된 것이 백인여성 중산층 계층에서 였고, 우리가 읽을 걸 많이 남겨준 것도 대부분 그 사람들이고, 그들이 제도, 인식 측면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전 읽은 책들의 퀴어 문제에서도 그랬고, 인종, 장애, 빈곤, 저임금 비정규 노동계층 등 다양한 교차적인 문제가 엮이기 시작하면 누군가의 권리 운동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을 더욱 소외시키는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책은 후드 페미니즘이라는 원제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 출신이자 흑인, 여성, 제도권 교육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겪어온 부조리들을 날을 세우고 비판하고 있었다. 번역자는 이런 부분 중 어떤 주장들(트럼프를 백인여성들의 지지로 당선된 것처럼 오도하는 등)은 많이 부당해 보였다고 했다. 우리는 흑인도, 백인도 아니지만, 어떤 목소리에 더 이입하게 되는지에 따라 옹호하는 입장이 달라지는 것도 신기하다. 어떤 책을 더 읽고 어떤 주장들을 더 접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공명할 만한 사회계층적 상황, 성적 지향, 비혼/혼인자 여부, 출산/비출산 여부, 소속 직업, 사는 동네, 장애나 질병 여부, 성폭력 피해 경험 여부 등등...다 쓸 수도 없네. 제목 그대로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가부장제나, 성차별적 제도와 인습과 가족 관계, 그런 공통된 투쟁의 대상은 있을텐데 거기에 인종, 장애, 이민자, 성매매, 교육, 빈곤 문제 등등...을 넣어야 한다, 그런 주장에는 그게 왜 우리 문제죠? 하는 벽에 부딪힌다.
특정 성별로 구성원이 쏠려 있는 커뮤니티에 가끔 간다. 그냥 뭔 생각들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주로 남초커뮤니티에 구경간다. 거기서는 시사 이슈나 뉴스, 유머 컨텐츠, 게임, 스포츠 소식 같은 것을 볼 수 있지만, 자신들과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 게시물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여성 혐오나 퀴어 혐오는 말해 뭐해...정도로 일상적이고... 인어공주 배역을 자기들 보기에 예쁘지 않은 흑인 배우가 맡았을 때는 온갖 욕설을 쏟아내며 흑어공주 어쩌구 난리도 아니었다. 동시에 흑인들이 아시안 차별하고 싫다고 하는 컨텐츠들은 어디서 또 잘들 퍼와가지고 지들 차별 당하기 싫다면서 지들도 차별해, 이러고 욕을 하고. 심각한 범죄가 발생하면 중국인이냐, 조선족이냐, 중국인에 대한 민족주의적 혐오는 진짜 어마어마했다. 히틀러 지지하고 유대인 멸시하다 못해 학살하던 평범한 독일사람들 모습이 아마도 저랬겠다...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타자에 대한 혐오 표출은 볼 때마다 섬뜩하다. 대상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어서 맘충, 잼민이, 어떤 때는 교사, 어떤 때는 학생(급식충), 또 어떤 때는 학부모...돌고 돈다. 어지럽고 슬프다… 뱅뱅 돌다보면 나는 어느 자리에든 앉을 수 있고 어느 자리에 앉든 손가락질 받을 수 있지...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100여쪽 쯤 되는 부분까지는 무리 없이 잘 읽혔다. 그런데 그 다음 가부장제 다루는 파트 부터 아니 문장이 왜 이래...번역기 돌렸냐...이 부분 읽기 싫었냐… 딱히 어려운 부분도 아닌데 말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읽다보니 개빡쳤다. 아 몇 번 더 윤문을 좀 하라고… 한 가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의 글을 만나려면 번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런저런 사상서들 읽는 사람들은 특히나 어려운 독서에 난감해 한다. 철학이라는 게 워낙 어렵기도 하고 논리적 글쓰기 따라가는 게 두뇌가 후달리는 활동도 맞지만… 이 책은 저자가 경험한 것, 주장한 바가 거의 다 이고 뭐 엄청 난해한 사상적 받침 이런 걸 가져온 책도 아닌데, 읽기에 이렇게 어색해서 아, 별 어려울 말도 아닌데 다시 돌아가 읽고 (그게 처음부터 그런 것도 아니고 책 중간부터 이러면 점점 대충 했네...할 수 밖에...) 그러면 진짜 나는 징검다리를 탓할 수 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다시 옮겨질 일이 드물 독점 번역서들은 진짜 역자들이 책임감 가지고 잘 옮겨 줬으면 좋겠다. 과도한 남성성, 유해한 남성성, 반복되어 제시되는데(검색해도 잘 안 나옴) 이게 사례나 개념 설명이나 원문 병기도 없이 붕 뜬 채로 나오는데 그걸 꼭 설명해줘야 아니! 이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개념이 지시하는 바가 뭔지 저자든 역자든 좀 멍청한 독자한테(멍청하니까 읽지 쓰지 않고) 친절했으면 싶었다. 같은 번역자가 옮긴 만화책 볼 때는 텍스트가 그리 많지 않아서 심각하지 않았는데, 좀 밀도 있는 텍스트 번역본은 앞으로는 믿고 거를 것이다. 번역이 게이트키핑이 되 버린다는 거 너무 슬픔...나의 독서 기회, 알 기회 앗아감… 그치만 참고 참으며 저자의 뜻을 암호 해석하기에는 진짜 견딜 수 없는 문장이라는 것이 있다… 그게 복수형이고 너무 심하면 전 못 읽겠습니다… 그래도 펼친 책이라고 최대한 읽어보겠다고, 그지 같은 문장들을 최대한 무시하며 전달하려는 뜻만이라도 알아들어보려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밑줄 그은 거 아니고 보다보다 빡쳐서 아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우 이래서 책 팔리겠어...번역 뿐 아니라 편집인들은 교정도 편집도 안 보냐 오타(곤론장(158),으료(319)가 뭐야…트랜스젠더들은~겪는다(309)...어려움 두 번 겪게 문장 중복...하아...)랑 비문 안 고치냐...개짜증난 순간들.(일일이 다 옮기지도 못함. 아 난 이러면 번역가 혐오냐 ㅋㅋㅋㅋ최대한 국경 건너 오는 말과 뜻들 섬세하게 전달하려고 불면의 밤 보내는 선생님들은 존경합니다...야 이새끼야 이건 존중받을 자격이냐 ㅋㅋㅋㅋ혼란하다 혼란해...혼란한 독서였다)
-중산층이 아닌 소녀들이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진열대에 놓인 예쁜 물건들을 찾고, 심지어 ‘적절한’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그들 자신이 여전히 길 찾는 법을 익히고 있는 시스템의 잘못된 끝에 다다르게 된다. (119-120, 아니 쉼표 앞까진 그렇다, 하겠는데 뒤에 문장 진짜 뭐라는 거야 ㅋㅋㅋ앞뒤 맥락 짤라내고 뭐라 하는게 아니라 앞뒤 다 봐도 저건 그냥 문장이 안 맞지 않나...이 챕터의 말들은 내내 저런 식이다. 지시어 남발에 문장 좀 끊거나 부연할 거를 그냥 영어 문장 질질질 뭔 영어독해 시간에 어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사람 헷갈리고 환장하게 하는 번역투들...)
-궁극적으로 주변화된 공동체 내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한 가지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 바로 가부장제 서사에 도전하는 대신 이를 반복하고자 하는 구조의 수가 감소하는 것이다. (124, 부사어 붙이려면 그게 뭘 수식하는지는 좀 명확히 해주고 ㅋㅋㅋ반복하고자 하는 구조의 수가 감소한다니…어쩌다 이런 문장을 만들어 내셨습니까...)
-오늘날 존중받을 자격의 정치는 한걸음 더 나아가, 흑인들이 자신이 가치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자력 구제라는 심상을 만들어내 요구했다. (134, 비문은 끝도 없다. 주어 서술어 연결을 어찌할지 도무지 모를 문장이 많다.)
머리 모양과 피부색, 외모에 관한 부분은 흑인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라서 조금 공감이 되었다. 나는 정말 심한 악성 곱슬 머리여서 어릴 때는 남자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고, 그나마 착한 이들에게는 동정의 대상이 되었으며, 미용실에 가서 커트 문의를 하면 늘 길게 기르고 매직스트레이트를 해서 머리 무게로 펴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 밖에는 솔루션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체념 하고 가끔 사회 생활 지장 안 가게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고 (그러면 동료들이든 학생들이든 우와 여신 되셨네요 하고 찬사… 긴 시간과 비싼 비용을 들여야만 관심 받고 사람 취급 받는 처지… 그래서 일부러 자주 미용실 안 가고 연례행사 이벤트 마냥 가는 쪽으로 ㅋㅋㅋ그 편이 평판이 후하다...) 살았다. 서른 살에는 처음 탈색과 염색을 해 보았고, 마흔 살에는 처음 숏컷을 해 보았다. 같이 사는 사람은 그렇게나 싫은지 왜, 마음에 안 들어? 하니까 대꾸조차 안 한다. 응답 거부...ㅋㅋㅋ 그런데 나는 와 진짜 곱슬이라고 커트 어렵다더니 세상 깔끔하고 편안하고 가벼운데 엉킨 양털 뭉치 같은 걸 억지로 달고 다녔구나...싶다. 내가 커트 할 때도 black curly hair short cut 이렇게 검색해가지고 이미지 저장해서 미용사님 보여주니까 대충 알겠다는 듯 끄덕끄덕 하셨는데 ㅋㅋㅋ 엄청 바글바글해질 줄 알았던 머리는 잘라내니 오히려 덜 바글바글하고 나는 뭔가 오랜 세월을 속은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음식에 대한 관점은 조금 슬프긴 했다. 당일 배송, 새벽 배송, 신속 택배 배송으로 집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고도 굶어죽을 걱정 안 하면서 살던 나여서 식품 사막, 이라는, 집 주변에서 저장 가공식품 외에는 신선식품 구하기 어려운 동네에 관해서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신선한 음식을 구하더라도 그걸 보관할 냉장시설과 조리도구를 갖추는 것도 큰 비용이고, 오염된 물보다는 탄산음료가 최선의 선택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집 주변에 대형 마트가 있어도 거기서 괜찮은 식재료를 살만큼의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고통이라는 것… 건강한 식단이나 음식 이미지들을 ‘흡사 요정들이 먹는 빵처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닿을 수 없는(170)’것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삶이란...그런데도 생존을 위해 살이 찌건 당뇨가 오건 일단 먹을 수 있는 걸 적당히 먹고 버텨야 하는 삶… 이건 굳이 다른 나라 빈곤층까지 안 가더라도 주위의 안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왜 그런 걸 먹니… 라면이랑 삼각김밥이 뭐니… 건강하게 챙겨먹어야지… 하는 것도 지가 챙겨줄 거 아니면 입다물어야지...에휴…
-“왜 그들은 네가 하는 걸 못 했어?”라는 질문이 아니라, “왜 우리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같은 지지와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싸워야 하는 전장이다. (341, 거의 막장 쯤 와서야 짜증 안 내고 오롯이 진지 빨고 밑줄...ㅋㅋㅋㅋ)
책 후반부의 주거 위기, 임신 중절과 임신 출산 중 사망(이걸 왜 모성 사망이란 불명료한 표현을 쓰는지 잘 모르겠음), 소수자의 양육에 대한 글들은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입장에서는 읽어 볼 만 했고, 학교 교육에 대한 입장은 요즘 일어난 사건과 한국 교육 상황과 비교할 때 완전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저 편하자고 반항아들 경찰 손에 넘겨 감옥 보낸다고 페미니스트 백인 여교사들을 엄청 까고 있어서 아야...했지만 뭐 인종과 계층과 평등 앨라이 등등 다양한 담론 연결하는 관점은 내내 생각할 만한 거리를 주었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