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시인선 194
황인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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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3 황인찬.

북플에는 마니아라는 제도가 있는데, 잘은 모르지만 요렇고 저렇고 복잡한 로직으로 점수를 더해서 책이나 작가나 장르에 관한 순위를 매겨준다.
대부분의 순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왠지 황인찬 시인의 마니아 순위는 높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겨우 시집 한 권이랑 산문집 한 권을 보았을 뿐이었다. 아니 그림책도 한 권 보았다. 오늘은 시집 한 권을 더 보았고, 읽지 않은 시집 한 권은 잘 꽂아 두었다. 괜히 페이퍼에 한 번씩 끼워 놓으면 점수가 높아질 것 같아서 새로 산 초록색 키보드 색이랑 시집 표지 색이 같다고 슬쩍 들이민다.
그러고나서 나의 순위는? 빠밤 확인해 본 오늘의 나는 황인찬의 3번째 마니아이다. 1번째 마니아는 syo님이다. 그러면 나는 이길 수가 없겠다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syo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사랑을 제일 잘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런 마음조차 먹지 않고 사랑이 거저 되는 줄 알기 때문에 잘하겠다고 마음 먹고 애를 쓰면 이길 수가 없다. 그러니까 시에다가 사랑을 적는 시인의 마니아도 순위가 바뀌기는 어렵겠다. 내가 졌다. 알라딘의 사랑 요정은 부재중에도 건재하다.

그래도 잘 읽고 싶었는데 시집을 읽을 수록 조바심이 났다. 중간이 넘어가는 데도 나한테 닿았다, 하고 밑줄 그어 옮길 구절을 하나도 찾지 못할까 봐, 그러면서 무슨 마니아야… ‘사랑을 위한 되풀이’는 전자책으로 시집을 샀는데 너무 좋았어서 전자책으로 산 게 아쉬워서 중고서점에서 종이책으로 하나 더 샀다. 초록 시집을 읽다 말고 종이로 된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잠시 펼쳐 읽었는데, 역시, 여기에 시가 더 많아. 그리고 너무 좋아서 안 되겠다, 나중에 다시 읽자 하고 슈우욱 빨려 들려는 걸 탁 덮고 초록 시집을 마저 읽었다. 예전 시집에는 사랑이 많이 나오는데 지금 읽는 시집은 안 그런가? 그래서 그런가? 앞에서부터 다시 훑어보니 또 그게 그런 건 아닌데 앞부분에서는 뭔가 사랑이 부재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거의 전부 다 새로 읽는 시인데 자꾸만 읽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개가 나오고 새가 나오고 사랑이 나오고 영혼과 영원과 천사가 나와서 그랬다. 역시 저 말들은 시인들의 단골 시어였고 나는 엄한 시인들의 시집을 엮어서 상상연애와 상상이별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시집 읽기도 페이지 터닝으로 경쟁을 시키더니, 요즘에는 두 시집의 독후감 블로그 조회수로 또 누가누가 이기나를 구경하는 게 취미생활이 되었다. 처음에는 양안다 시집이 빠르게 앞서 나가고 있었는데, 아니 왜, 어느새 육호수 시집이 조회수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하아…지는 기분이 드는 건 나도 모르게 편애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나는 정말 시를 쥐뿔도 읽을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 뿐 아니라 그냥 온갖 소설들, 산문집들, 영화와 드라마와 서사들, 마냥 오독오독 씹어서 오독하면서 아이 재미있다, 이제 무슨 색깔 똥을 싸나 볼까? 하고 독후감을 대충 휘갈기고 산다.
뭐 그러면 어떠한가…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밑줄 긋기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예전에 누가 물었다는데

홀로 남은 개 한 마리가 이쪽을 보고 묻는다
거기서 혼자 뭐하시냐고

그냥 숨쉬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대답하고 말았네
(‘구자불성’ 중)

-불만은 없음
사랑도 없음

흘러가는 저녁에 마음을 기대고 그저 눈감고 싶은 고독도 없고 무너질 듯 애처로운 자세로 스스로도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바라는 비극도 없다

마음이 깨질 것 같은 사람이 길을 물어서
아뇨 저는 몰라요 그렇게 답했다
그때는 그 사람의 마음이 깨질 줄은 몰랐지만
(‘느린 사랑’ 중)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
애당초 마음도 없지만

눈을 뜨니 토끼풀 하나가 자신이 토끼인 줄 알고 머리를 긁고 있었네

좋아,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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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6-24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갠적인 생각인데 황인찬 시인의 전작을 읽고 이 시집을 읽었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6-25 08:10   좋아요 1 | URL
이것도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에 실린 시들이 뭔가 무르익은 느낌이요 ㅋㅋㅋ제 취향 일수도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