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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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존 르 카레.

이년 전 연말에 ‘리틀 드러머 걸’을 인상 깊게 보았다. 이 소설은 그보다 이십 년 전에 존 르 카레가 쓴 작품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온도와 건조함에 이끌렸는지, 연말부터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바깥을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삶에 관해 읽는 내내 생각했다. 앞뒤가 맞아야 한다. 개연성 있고 설득되고 약간 흥미롭지만 지나치게 관심을 끌면 또 허점이 드러날 수 있다. 스파이와 소설이 유사하고, 그래서 첩보 경험 있는 작가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납득이 간다.
이념과 공동체와 대의를 위해 희생되는 개인에 대해서도 내내 생각했다. 리틀 드러머 걸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공산주의 국가든 거기 맞서는 영국 정보부든 어디나 조직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제 국가주의 공동체주의 공리주의 이런 걸 떠올리면 코로나가 처음 퍼지던 시절을 함께 생각한다. 사람들은 감염과 전파의 공포에 미쳐있었고, 개인의 움직임, 동선, 성적 지향, 여정과 여가, 모든 것은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낱낱이 파헤쳐지고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참 헬스장엘 열심히도 갔다고, 코인노래방에 미쳤다고, 연애에 미쳐서 연인을 만나러 탈주를 했다고, 욕을 했고 벌금을 물렸고 신상을 돌려보았고 단체로 춤을 추는 게이 새끼들 역겹다고 했다. 소수가 감염되었을 때는 모든 일상과 행동거지가 일탈이었고, 그로부터 일년 후 쯤 모두가 걸리는 시기에는 그건 그냥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 시기의 조직 생활이나, 언론보도나, 인터넷에서 남을 헐뜯는 수많은 사람들의 댓글 같은 게 나한테는 어느 정도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개인에 대한 건 생각보다 쉽게 너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고 그건 그걸 알게 되는 사람들의 관심과 의도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조리될 수 있다. 자유, 인권, 프라이버시, 그런 말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절대적인 가치가 되지도, 보호받지도 못한다는 걸 교훈처럼 알게 되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스파이 소설을 보면 그런 시간들이 떠오른다. 전략적으로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나에 대한 정보, 뻔히 감시 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연해야 하는 혹은 계산된 행동을 해야 하는 계산된 것조차 그게 본디 모습인 듯 스스로를 속여야 하는 삶이라는 게 너무 극적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결국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내가 인식한 세계가, 내가 놓인 판이, 사실은 또 그 위의 다른 누군가가 또다른 방향으로 짜놓은 전혀 다른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혹은 알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혼란.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 슬프다. 스파이의 사랑도, 스파이를 사랑한 사람도 죄다. 오점이고 치명적인 실수이다. 내가 작전을 망쳤어요. 난 붕괴됐어요.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그 붕괴조차 누군가의 한 수였다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미리 고려된 일이라면. 우웩.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디스토피아가 스파이 소설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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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광신자예요. 나는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무엇을 광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당신은 남을 개종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광신자예요. 그건 위험한 존재죠. 당신은… 복수나 무언가를 맹세한 사람 같아요.

-「그럼 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지식인인가요?」
여자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진보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는 반동주의자들. 저들은 국가에 맞서서 개인을 옹호해요. 흐루시초프가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혁명 사태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알고 있나요?」
리즈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흥미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여자한테 자꾸 말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작가 두어 명을 제때에 총살했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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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3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7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3-01-03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미크론 때 너무 퍼져서 그런지..
확실히 코로나 초창기랑은 달라졌죠..

반유행열반인 2023-01-07 23:32   좋아요 1 | URL
제가 걸렸을 때는 아무도 관심도 없을 시기였어요ㅋㅋㅋ휴직한데다 집에서 간이검사하니까 굳이 보건소 들러 등록하고 뭐 이런거도 없고… 그냥 아픈 건데 나쁜 게 되는 세상이 저는 참 힘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