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소설Q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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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31 이주혜.

작년 연작소설 ‘연년세세’를 펴낸 황정은 작가의 인터뷰를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그해 읽은 가장 인상 깊은 두 권으로 작가는 ‘도어’와 ‘자두’를 꼽았다. 도어는 올해 일월에 읽었다. 그게 아직 올해인 게 놀랍다. 자두는 마련해두고 오래 꽂아두다 여름이 되고부터 가까이 쌓아 놓았다.
인터넷 슈퍼에 자두를 주문했는데, 나는 아직 읽기도 먹기도 전인데 이웃의 자두 이야기에 눈물을 쏟다가, 그래도 결국 자두를 먹긴 먹었는데 그 며칠 사이 비 그치고 쨍한 햇볕에 더 익은 자두, 딱딱한 복숭아, 수박 모두 다 달았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렇게 단맛을 가끔 누린다. 그 모든 단맛을 비롯한 즐거움은 삶을 추동하는 힘, 살아있으려면 그걸 계속 먹으라고, 유전자를 전달하려면 그걸 계속 하라고, 그런 뭔가의 부름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책 몇 권 보며 알게된 건 겨우 그 단순한 사실인데 가끔은 그런 오래전에 새겨진 명령어가 있다는 걸 다 잊고 아 달다, 아 좋다, 하면서 온전히 즐겁고 싶다.

첫머리를 보다가 각주에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인용구 일부와 역자 이름을 보고, 어어, 정말? 하고 예전 이웃 독서목록에서 스쳐지났던 책을 검색해보니 이 소설을 쓴 이주혜 작가가 그 책의 번역가였다. 이러면 제가 안 읽을 수가 없잖아요…보관함에 담아 놓음…
94년 무덥던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또 어어, 72-1 버스라고? 그 없어진 노선, 서울대에서 여의도 가던 그 버스 맞나? 나는 김일성이 죽었을 때 피아노학원에서 수안보온천으로 여름캠프를 갔었어. 나라이름 대기 할 때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댔더니 애들이 내가 같은 나라를 두 번 말해서 졌다고 해서 울었어.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조금씩 미쳐갔어. 그때 아빠 나이가 지금 내 나이고, 그때 내 나이가 큰아이 나이네.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은아와 세진은 부부이고, 은아의 시아버지, 세진의 아버지가 담도암으로 입원한 동안 간병을 하다 지쳐 간병인 영옥씨를 고용한다. 갑자기 심해진 병세에 섬망까지 와서 이전과 달라진 모습으로 은아에게 상처를 주는 시아버지와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세진에게 은아는 실망하고, 간간히 영옥씨로부터 힘을 얻는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자꾸만 영옥씨에게 욕을 하고, 세진은 영옥씨를 해고하고 불성실한 남자 간병인을 다시 고용한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은아와 세진은 헤어진다.
영옥의 존재는 도어의 에메렌츠와도 약간 겹쳐 보였다. 중간에 영옥의 목소리나 시아버지 병일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만 세진의 목소리만은 흉내내지 않는다.
이 책은 번역자인 은아가 자신의 번역한 책 뒤로 길게 붙인 역자 후기이다. 이렇게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로 초대하는 소설을 읽고나니 읽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당장은 아니라도 조만간…

막 서른이 된 해에 이곳저곳이 아팠다. 충수염 수술을 하고 석달 만에 성대폴립 수술도 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고 젊어서 그런가 많이 아프지 않고 회복도 빨랐다. 짧은 입원 기간마다 당연하다는 듯 곁을 지키고 돌봐준 사람이 있다. 아직 취업 전의 대학원생이라 가능했겠지만. 반대로 나는 아직 누군가의 간병을 해 본 경험이 없다. 감사한 일이지만 언젠가는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약해지고 아파하다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 지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잘 돌볼 수 있을지, 나를 미워하지 않고 회복되거나 떠나가도록 할 수 있을지,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더 자신이 없어졌다.
수술이나 출산을 앞두고 유서 비슷한 걸 미리 써둘만큼 걱정이 많은 나였다. 오늘 화이자 백신 맞으러 가기 전에도 아, 뭐라도 써둘까, 했는데 그만 두었다. 나는 사실, 나야. 했는데 내곁을 죽음으로 떠나버리는 사랑했던 이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어떤 걸까. 직접 겪고 싶지는 않다. 책으로 충분해.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내 사랑하며 삽시다.

+밑줄
-리치가 말한 ‘레즈비언 연속체’는 정확히 무슨 뜻일까. ‘mothering’은 ‘어머니 되기’일까 ‘어머니 하기’일까? 그렇다면 어머니는 자격인가, 상태인가, 아니면 행위인가? 적당한 한국어를 고르기 전에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만, 작업 내내 저는 이해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애초에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떠올랐습니다. (14-15)

-“사람한테 충이 뭐예요, 충이? 농담이라도 사람을 벌레라고 부르는 사람이 무슨 의사가 되겠다고 그래요? 사람이 웃겨요? 목숨이 우스워요?”
제일 심하게 놀려대던 젊은이는 입까지 쩍 벌리면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일행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다물더군요. 카페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던 게 기억납니다. 그들의 떨떠름한 표정이 바로 벌레 씹은 얼굴이었다는 건 6 층까지 올라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시럽충 운운했던 그 젊은이는 재수 없게 별 이상한 진지충을 만났다고 아마 그날 내내 떠들고 다녔을 겁니다. (44)

-죽어요…...죽어요……
환청이 아니었습니다. 착각도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나무 그늘 쪽으로 다가가는 길에 분명히 영옥씨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이며 그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영옥씨의 목소리는 저주에 어울리지 않게 나직하고 평온했습니다.
“어르신, 죽으려거든 날 좋을 때 죽어요. 이런 염천에는 죽지 말아요. 이런 날 죽으면 자식들 고생합니다. 부디 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날 죽어요. 그래야 자식들이 덜 서럽습니다. 알았지요? 꼭 좋은 날에 죽어요. 우리 어머니처럼 염천에 죽어 자식 가슴에 한을 심지 말아요.” (77)

-지금 생각하면 시아버지의 방식은 좀 치사한 데가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아기 이야기를 꺼내놓고 갑자기 제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어 버리거나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러면 저는 죄도 짓지 않았는데 용서를 받는 더러운 기분이 들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세진에게 이런 찝찝하고 억울한 기분을 털어놓았습니다. 처음 몇번은 세진이 대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세진도 시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부모의 반응에 비하면 시아버지의 반응은 굉장히 너그러운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너도 결국 아이를 가져보려고 더 노력하지 않는 게 잘못이라는 말이지? 왜 이야기가 그리 튀어? 어른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럼 나는?죄도 없이 맨날 용서받는 내 심정은 누가 이해해주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네 팔은 늘 아버님 쪽으로만 굽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너랑 아버지를 저울질하지 않아. 둘 다 내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왜 꼭 편을 갈라야 해? 너야말로 늘 편을 가르려고 들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어떻게 둘이 될 수 있니? 너는 언제나 뒤로 밀리는 내 마음을 절대로 이해 못해. 싸움은 계절성 기후처럼 반복되었습니다. (91-92)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암이 더 진행되어 고통이 커진 후 죽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이란 원래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이 향 연기처럼 제멋대로 피어올라 허공을 떠다니는 곳임을 이때 배웠습니다. 그중 어떤 말들은 옷과 머리칼에 깊이 배어 쉽게 빠지지 않는 향냄새처럼 뇌리에 진득하게 들러붙어버린다는 것도요. (116)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하얀 눈가루가 쌓이지 못하고 바람에 이리저리 날렸습니다. 잠시 가만히 서서 눈을 보았습니다. 저들은 왜 나의 애도를 방해하는가. 왜 내 마음을 슬픔 대신 분노로 채우는가. 무슨 의도인가.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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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31 2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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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1 0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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