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0 송찬호.여름이 왔다. 봄이 가득한 시집을 읽었다. 다양한 계절이 넘치지만 나는 자꾸 꽃과 나무와 빈집이 나오는 시들에 붙잡혔다. 잊으면 사라질 기억과 마음이 책장 사이에 물성 가진 채로 남았다. 내어버릴 수가 없다. 울 줄 알고도 펼치고 읽다 울고 덮고. 나는 예쁜 말은 커녕 못나고 모난 모진 말만 던지다 죽을 것 같다. 봄이 사라지고 네 색이 천천히 빠지고 있는 나는 자음 글자만 남겨 내 이름을 겨울로 바꿨다. 냇물에 떠내려오는 저 난분분 꽃잎들숲 자욱 얼룩진 너럭바위들사슴들은 놀다 벌써 돌아들 갔다그들이 버리고 간 관을 쓰고 논들이제 무슨 흥이 있을까 춘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염소와 물푸레나무와의 질긴 연애도 끝났다염소는 고삐로 수없이 물푸레나무를 친친 감았고 뿔은 또 그걸 들이받았다지친 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 숲으로 돌아가고염소는 고삐를 끊은 채 집을 찾아 돌아왔다그러나 그딴 실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돗자리 말아 등에 지고 강아지풀 꼬릴 잡고더듬더듬 들길을 따라오는 저 맹인 악사를 보아라저 맹목의 초록이 더욱 짙어지기 전에,지금은 청보리 한 톨에 햇볕과 바람의 말씀을 더 새어넣어야 할 때둠벙은 수위를 높여 소금쟁이 학교를 열어야 할 때살찐 붕어들이 버드나무 가랑이 사이 수초를 들락날락해야 할 때!(’오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