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3 양지아링.잠에서 깨어 많은 생각을 했다.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살아왔다.내가 가진 감정적 육체적 경제적 에너지 거의 모두를 쏟았지만 그 열에 하나도 돌려주지 않고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았다.소모를 넘어 착취.내게서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것도 관심이고 사랑이라 생각했다. 외로움이 너무 커서 뭔가를 가져가기 위해 말을 걸고 접근하는 것조차 마냥 반갑고 놓고 싶지 않았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그들이 스치듯 말하거나 말없이 뉘앙스로 풍기는 바람들을 내가 알아서 이루어주려고 분투하고 있었다. 내 것이 아닌 상대의 욕망인데도 이루지 못하면 괜히 괴로웠다. 정작 받아도 크게 감사하지 않을 것들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고 앞에 바쳤다. 성취감에 빠진 노예의 삶.관계를 벗어나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채 바라볼 때에야 느꼈다.인생 망칠 뻔했구나. 곁의 사람과 연애 초기, 이 사람은 나에게 바라는 게 하나도 없다고 혼자 무척 슬퍼했었다. 바라지 않으면 줄 게 없고, 그러면 이내 나를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 돌아보면 만난 사람 중 가장 정신이 건강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내가 5를 주면 적어도 5, 6을 돌려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 나는 왜 7이 아니냐고 타박했지만. 못됐어.지금은 빈 공간이 10이라면 9를 채우고 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그러니 나머지 1을 채우겠다고 헛짓거리 하지 말자. 9를 덜어 채울 수 있는 1이라면. 멍청한 나의 셈법은 늘 뒤늦고 깨달음은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을 때에야 찾아온다. 죽거나 중환자가 되기 직전. 그렇다면 지난 마음들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파티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슬퍼할 일이 없다.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할 무렵 예약되어 있던 책이 자동대출 되었다. 타이밍이 늦은가. 적절한가. 내가 어릴 때 이런 책을 읽었다면 도움이 되었을까. 고통받는 관계를 정리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인간관계 심리학 책이다. 중국인(맞나)이 쓴 거라 사례 인물도 다 중국사람이다. 효도에 매몰되어 부모에게 휘둘리는 자식들의 이야기가 가장 많다. 유교 문화권이 그렇지. 초민감자 책에서 나와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방을 잇는 빛줄기를 떠올리고 고맙다고 하며 자르는 상상을 하라고 했었다. 여기서도 비슷한데, 단계를 정해놓고 서서히 해결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정리를 감당해야 할 사람에게 위로도 잊지 않는다. 그건 상대방의 문제야. 자책하지 않으면 괴로움이 줄어들 것이다. 부모든 친구든 상사든 동업자든 연인이든 친밀한 관계를 끝내야 할 때 조금은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그치만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니. 뼈를 자르고 살을 뜯어내는 고통은 피할 수 없지. 대신 그것도 지나가리라, 나아지리라, 하고 자르고 뜯어야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