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200229 김금희.

2월 29일은 덤으로 받은 하루 같은 느낌이다.
1월 30일에 도서관 회원증 만들고 두 번째로 책을 빌리러 다녀왔는데 며칠 안 되어서 휴관 공지가 왔다. 그러고는 한 달이 지났다.
본의 아니게 같은 책 세 권을 끼고 있다. 자동으로 대출 기한이 연장되니 자꾸 전자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빌리고 새 책을 사서 쟁이며 도서관 책들은 읽기를 미뤄두다가 오늘 드디어 한 권을 다 봤다.
김금희의 최근 단편집 두 권과 장편 한 권을 봤었다. 문득 김금희 비긴즈도 궁금했다. 나랑 똑같이 김금희 좋아하는 친구는 굳이 예전 글까지는 찾아 보고 싶지 않다 했지만 난 왠지 보고 싶었다.
등단부터 첫 소설집이 나오기까지 5년 세월이 걸렸다. 그 기간 꾸준히 쓰면서도 얼마나 애가 탔을까.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디있어, 싶겠지만 여기 있다, 하고 싶다. 김금희 첫 책 역시 나와 결이 잘 맞았다.
단편 몇 편 읽다 말다 하며 한 달 간 천천히 읽었다. 읽다보면 좋은데 또 슬프고 또 좋고 너무 슬퍼서 읽다 쉬고를 반복했다. 오래 전에 읽은 소설들은 벌써 까먹어서 제목만 보면 생각나는 게 없다. 그래도 좋았어 좋았다고. 읽으면서 자꾸 소설 속 배경에는 감염병이 없나 하고 갸우뚱하고 있었다. 왜 내 현실을 여기다 대입하고 있나 싶었다. 슬프고 외로운 주인공이 많은데 그런 감정에 푹 절이지 않고 다 그냥저냥 겨우겨우 사는 거지, 견디고 버티는 거지, 하는 느낌이다.

최근에 읽은 글부터 역순으로. 아무말 감상.
-사북
젊은이의 양지라는 드라마 속 탄광촌으로 기억된 동네. 정선이랑 사북 각각 카지노가 있어? 하고 옆 사람에게 물으니 아닐 걸, 해서 그런가 정선군 사북면인가, 하고 검색하니 정말 정선군 사북읍이었다.
잃어버린 가족, 일상을 두고 카지노와 함께 사북의 검은 숲에 묻힌 중년 남성, 편의점 알바, 사북읍의 정경, 주변 도박쟁이들, 자영업자들. 소설 드라큘라를 동시에 읽는 느낌은 좋았는데 중간중간 페이지가 없어진 설정이라 이게 정말 원작 내용인지 책을 읽던 중년 남성이 상상한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남자와 드라큘라 백작이 교차되는 구성은 좋았다.
-릴리
프로작 제약사가 릴리인 건 처음 알았다. 내게 릴리는 스매싱펌킨스의 노래 중 하나지. 이 소설 꽤 좋았다. 비밀통로를 통해 집주인 집을 드나드는 간덩이 큰 세입자. 방 안 가득한 찾아가지 않은 맞춤옷들, 피팅 사진 찍어 포토샵 하는 나. 저축은행 직원 계아. 워킹 홀리데이를 꿈꾸지만 워킹만 있고 홀리데이는 없는 날들. 그래도 등장인물 너희들은 워킹 홀리데이 끝자락이라도 꿈꿀 수 있는 서른이구나. 나는 틀렸어 먼저 가...
혼자 집을 지키며 카세트테이프에 생애를 녹음하고 찾아가지 않은 옷들을 찾아가라고 우편물을 부친 할머니. 웃음소리. 아 이 소설 진짜 너무 좋았다. 아는 남자 덕에 고층 건물에서 사해에서 퍼온 해수로 공짜 스파 하는 거도 좋았다. 그 남자랑 주인공의 관계는 안 좋지만.
내겐 알콜도 릴리도 없는데 무엇이 위안이 될까.
이복 동생이 물건 부쳐오는 이야기까지는 한 이야기에 다 담기에는 무거웠던 것도 같다.
-장글숲을 헤쳐서 가면
고3과 4수생 남매. 라영이. 담임. 베트남에 다녀온 아버지의 놓지 못한 베트남 장글 드림. 인천이라는 도시. 장군님의 사학재단. 특색은 있는데 매일 택시 태워 산에 올라 맨손체조와 줄넘기를 시키는 아버지의 말을 잘듣는 남매는 참. 양희가 또 생각났다.
-우리 집에 왜 왔니
같은 제목의 눈뜨고코베인 노래가 있다. 외삼촌에게 이끌려 인도에 가느라 집을 비운 아미와 아미를 외사촌으로 칭할 아미의 이종사촌이 번갈아가며 화자로 등장한다. 아미는 집에 가고 싶고. 이종사촌은(이름은 나만 못찾은 건가) 아미와 외삼촌이 비운 집을 지키며 지낸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 신입사원이 되자마자 그만둔 회사. 친구M이 넘긴 외국어강좌 수강권으로 듣는 일본어 수업에서 만난 미니어처 공예가 L과의 짧은 인연, 아랫집 부녀회장 언니와의 역시나 짧은 인연,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분이 가득한 K시(경주네). 귀신이 나올 것 같지만 별 거 없던 외숙모 유품 담긴 작은 방, 고양이 이름 피카소, 엄마와 함께 찾아간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장례식...
한 사람이 만난 여러 사람들, 그들과 겪는 일들을 이리저리 짜 맞춰 놓는 재주가 신기했다. 아파트 쪽 서사가 강해서 정작 아미가 인도에서 요가 다니고 강을 건너고 비틀즈 생각하며 유적을 찾는 장면들은 희미했다.
-차이니스 위스퍼
화자의 이름 영리. 중국인이 아닌데 차이니스걸이라 불리는. 욜이라는 어린 연인이 사라지고 그를 찾아 나선 길. 부재중인 집주인 고양이를 돌보는 일. 어학연수에 왔지만 늘지 않는 영어. 떠나온 뒤에야 적는 모국어 단어들. 약사 엄마와 젊어 스스로 죽은 오빠. 차이니스 위스퍼라는 게임. 가족오락관에 나오던 고요속의 외침이라는 게임과 비슷. 게임을 못한다고 비난 받다가 화가 나서 해변 바위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소녀. 묻지 못한 고양이 이름.
-아이들
다단계 이야기는 매번 읽어도 슬프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다단계 들어갔다 빠져나온 사람들이 올린 게시물을 열심히 찾아 읽은 생각이 났다. 누군가 살고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이야기 꾸리기. 여기서는 새가정 아파트. 그 동네 아이들은 영주의 손에 이끌려 다단계에 넘어간다. 화자를 거기서 빼오려던 아버지는 지금 병석에 누워있다. 되게 쓸쓸한 이야기네.
-집으로 돌아오는 밤
철거촌 이야기도 자주 읽었지만 역시나 슬프다. 마트에 반품 들어온 물건을 정리하는 나. 저장강박증인듯 물건을 마구 쌓는 할머니. 할머니가 철거 예정 건물마다 그린 편물기호. 예전에 마을을 떠난 어떤 형제. 그녀가 잠못들게 만드는 어떤 밤의 소리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임대업자인 엄마와 외할아버지. 화자가 자라는 동안 영향을 준 세입자들, 새아빠인 김. 대학은 떨어지고 임신했는데 상대 남자애는 사라져버린. 자꾸 만날 구실을 만드는 재수학원 동기 마. 큰 강렬함은 없는데 그럭저럭 읽을 만했다.
-너의 도큐먼트
김금희의 등단작. 문득 드는 생각인데 김금희 소설은 좋은데 제목은 썩 잘 짓지는 못한다는 기분이다. 제목을 봐도 소설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사업이 망하고 도피하는 아버지를 찾아 지도를 펼치고 동선을 표시해가며 나와 엄마는 아버지를 찾아 헤맨다. 친구 채주는 살이 빠지지 않아 위절제술을 받겠다고 한다.
여미는 중국여행에서 만난 친구였지만 내 남자친구였던 주용과 사귀었고, 얼마전 죽었다. 나는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다가 여미 집에 자꾸 찾아가 그 집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인천 골목을 돌아다니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막판 도큐먼트 타령은 조금 작위적이다.
-당신의 나라에서
카페 이야기는 괜히 친숙하다. 금희언니도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 사람 관찰하는 짓을 한 적이 있겠구나. 나라는 사슴이 사는 일본의 지명인 나라이다. 주인공이 가려 하다 말다 하는, 카페에 앉은 신용불량자 구직인 M이 가 본, 전여친 W가 갔다던 나라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오래된 시계를 고친다.
카페의 여자 M은 노트북을 잃어버린다. 그러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화자는 뒤늦게 빌려갔던 자기 노트북에 M이 남긴 나라의 이야기를 읽는다.

음. 거꾸로 독후감 쓰다보니 느낀다. 처음부터 잘 쓴 사람은 없다는데. 김금희는 점점 나아지다가 기복이 있다가 지금은 엄청 잘 쓰는 사람이 되었다. 왠지 점점점점 더 잘 쓸 것 같다. 올초에는 산문집 낸다는데. 나는 금희언니 새 소설집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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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3-01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집 한 권에 실린 작품 수가 꽤 되는군요.
너무너무 사랑하는 금희누님이라 도리어 초기작에 손대기가 겁이 난다는....

반유행열반인 2020-03-02 11:19   좋아요 0 | URL
금희누님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기쁘게 읽을 소설집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