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 읽는 법 - 시와 처음 벗하려는 당신에게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9년 3월
평점 :
-20200130 김이경
송인 -정지상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긴 둑에는 풀빛이 짙은데
그대 보내는 남포엔 슬픈 노래 울리네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 건가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강물에 더하는 것을
고등학교 때 한문 교과서에 실린 이 한시를 정말 좋아했다. 짝사랑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일기장에 베껴 적었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더 어릴 때는 시를 찾아 읽은 적이 있었다. 처음 인터넷을 시작한 중3-고1 무렵엔 이상의 시 전작을 올려놓은 홈페이지를 찾아 우와! 횡재했어! 하면서 잉크젯 프린터로 슉슉 뽑아 A4용지에 호치키스 박아 책인 양 고이 들고 다니며 읽었다.
중학생이 알아야 할 시 라는 책을 엄마가 사줬는데 꾸역거리고 보다가 마음에 들어서 종이에 옮겨 적은 시도 있었다. 황석우의 벽모의 묘. 어쩜 파란 털 고양이래, 하며 중이병답게 하늘색 펜으로 적어놨다. 생각난 김에 시인의 다른 시들을 검색해 읽어보니 캬아 나란 놈은 역시 이런 취향이군. 몰랐는데 이 시인 자체가 되게 기인에다 여자 밝히는 놈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린 나는 주로 세기말적이고 퇴폐적인 1920, 30년대의 시를 좋아했던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에 실린 걸 보고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읽으려다 실패했던 기억도. 어둠의 자식아...
그나마 읽었던 것 중 가장 예쁜 시는 엄마가 화장실 벽에 붙여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다. 거기 이국적인 소녀 이름 중에 내 이름자가 있어서. 그래도 화장실 휴지걸이 위에 올려둔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게 처음 시를 건네준 건 제도권 교육이다. 다만 계속 찾아 읽을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을 뿐. 수능 문학영역 준비하며 시며 소설이며 나름 재미거리 위안거리로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 오면서는 많지도 않은 읽는 거리가 그나마 산문으로 치우쳤다. 말이 많고 친절한 말을 길게 건네 듣는 게 좋은 나한테는 시보다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짧게 요약할 만큼 시와 만난 시간이 짧고 경험도 부끄럽게 부족하다.
이 책은 얇아서 읽은 책 권수를 늘리는 데 아주 유용하다. 전자책을 빌려서 쪽수만 보고 처음엔 좀 두껍나했더니 뒤에 1/3 정도가 유유 출판사 책 광고였다. 세상에…
얇지만 시에 관해 나처럼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수업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어려운 말은 거의 안 하고, 서술도 강의에서 말로 전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작가가 실제로 시에 관해 가르쳤던 강의록을 바탕으로 한 책인 듯하다.
나한테는 시가 별로라고,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괜히 겁을 내고 벽을 쳤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가로막힘을 살살 걷어내고 시를 읽어야 할 이유를 조금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말과 글을 잘 갈고 다듬어 건네는 사람을 보며 느낀 점이 많다. 나도 그런 고운 말을 써서 마음을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친 말들은 고운 사포로 열심히 문질러서 부드럽게 전하고 싶다. 말로 누구를 다치게 하는 일이 너무 많았어서 이제는 줄이고 싶다. 내 속에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걸 잘 풀어줄 단어와 문장도 가지고 싶다. 소설과 다른 좋은 산문 독서도 꾸준히 해야겠지만 뒤룩뒤룩한 내 글을 날씬하게 하는 데 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시 읽는 법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마음을 갖추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다음 달부터는 매달 시집 한 권씩을 읽어야 겠다. ㅎㅎㅎ엄마가 모아둔 책들이 아주 많다.
+밑줄 긋기
시를 읽을 때는 시가 가진 형식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는 다양한 라임(압운)과 장치로 운율을 만드는데 때로는 시구의 내용이나 의미보다 이 리듬이 더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19세기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말했어요.
어떤 책을 읽는데 전신이 얼어붙어 어떤 불기로도 몸을 덥힐 수 없게 되면, 나는 그것이 시인 줄 안다. 머리 맨 위가 떨어져 나간 듯 몸이 반응해도, 나는 그것이 시인 줄 안다. 이것이 내가 시를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시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반성이에요...반성이 한자로 反省인데 돌이켜 살핀다는 뜻이에요. 돌아본다, 다시 살핀다는 건 내가 무엇을 봤는지, 제대로 봤는지, 왜 그것을 봤거나 못 봤는지 의심하고 확인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란 눈에 보이는 사물, 현실을 돌이켜서 다시 보는 것이란 뜻입니다.
보는 것은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지만 시인은 이것을 의식하고 내가 어떤 대상을 왜, 어떻게 보았는지 스스로 자문합니다. 대상을 정확히 보았는지, 본다는 행위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보는 ‘나’는 어떤 존재인지, 계속 묻는 거죠. 시란 이런 물음의 과정이고 탐구이고 그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물음에 쉽게 답하고 안주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이고요. 그러니까 이 말은 시란 끝없는 질문이고 의심이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회의를 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언어를 배려한다는 건 말만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의 틈, 여백에도 마음을 쓴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백에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쉼보르스카는 시인에겐 모른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자세히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새롭게 보게 되고 새로운 것을 보게 돼요. 새로운 발견, 새로운 표현이 나오는 거지요.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질문 자체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하라”고 조언한 것도 비슷한 얘기입니다. 모른다는 마음,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이런 겸손과 호기심이야말로 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조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을열려고안열리는문을열려고. (이상-‘가정’)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째서 독을 품고
거북은 무엇을 생각할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은 무슨 노래를 부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을 맞을까
나뭇잎은 어째서 초록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도 못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네루다, 「다문 입으로 파리가 들어온다」, 『에스트라바가리오』,1958)
요즘은 책들도 그렇고 시들도 위로와 공감을 앞세우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사실 괜찮지 않잖아요. 그렇게 간단히 괜찮아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지요. 괜찮다고 말하는 건 하얀 거짓말 같아요. 우리는 괜찮다고 최면을 걸면서 살아요. 그런데 이 영화가 일깨우듯이, 시란 괜찮지 않음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미자는 거기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지, 우리가 다 괜찮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로 나아가요.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팔십 되면 모두 죽여 버리니
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
(이언진)
‘아우아불우인’我友我不友人, 나는 나를 벗하지 남을 벗하지 않는다고 해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믿고 나아간다는 거죠.
하지만 나 가난하여, 오로지 가진 것 꿈뿐이라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 드리니
사뿐히 밟으라, 그대 내 꿈을 밟는 것이니.
(예이츠, ‘그는 하늘의 옷감을 바라노라’)
가능이 아니라 불가능을 꿈꾸는 것, 불가능의 힘을 믿는 것, 그래서 마지막까지 우리가 자기 안의 힘에 눈 뜨고 최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