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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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이언 매큐언

안녕하신가영-우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https://youtu.be/GG6VP77uv1w



줄리언 반스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내 말에 친구는 반스도 괜찮지만 이언 매큐언 쪽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어톤먼트 영화만 보고 이언 매큐언은 읽은 게 하나도 없어서, 그럼 읽어볼까 하고 이 책을 골랐다. 줄리언 반스는 슬렁슬렁 읽어도 잘 넘어갔는데 이언 매큐언은 표현이 더 비장?하고 열심히 문장을 꾸며놔서 그보다는 조금 더 집중해서 봐야 했다. 그래도 재미있고 잘 읽히는 편이었다.



아아,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국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셰익스피어, 『햄릿』



제목의 넛셸, 호두 껍데기는 햄릿의 구절에서 따왔다. 이 이야기 자체가 또다른 햄릿의 이야기라는 걸 드러내고 시작한다. 어머니와 삼촌이 눈이 맞아 아버지를 죽이고 그걸 알게 된 햄릿이 복수하는 이야기.

다만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보고 어머니와 삼촌의 악행을 알게 되어 저게 진짜 아버지냐 아니냐 저게 참말이냐 아니냐 고민하다 복수를 결행하지만, 넛셸의 화자는 어머니 뱃속의 태아로 불완전하나마 자궁 벽에 귀를 대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거짓말과 음모의 현장을 (목격은 못하지만) 듣고 상상한다.

호두 껍데기에 갇힌 알맹이마냥 좁은 뱃속에 뒤집혀 있으면서도 알 건 다 아는 아이. 아버지를 죽이려는 어머니를 끝내 미워할 수 없어 사랑하는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위에 따라 자신의 자유와 성장 환경이 달라질 것을 마냥 염려하고 저울질 하는 아이. 뱃속 아이가 바깥 세상을 낱낱이 이해할 수 있다는 설정. 아이는 엄마가 듣는 온갖 팟캐스트를 들으며 국제 정세와 세상 이치를 이해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낭송해주는 시를 들으며 운율을 이해한다. 다 듣고 있었단 말야? 첫애 임신 때는 마릴린 맨슨과 클래식을 번갈아 들으며 대항해시대를 죽어라 했더니 애가 자라서 음악 취향 독특한 겜돌이가 되었다. 둘째 태중에는 에어리언 1,2,3,4,프로메테우스,커버넌트까지 찍고 미드 덱스터 전편…낳기 직전까지 읽은 책이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유혈 낭자한 컨텐츠를 많이 소비했지만… 아직은 착하게 잘 크고 있다.



이 소설 보면서 거짓말에 대해 인식론으로 접근하는 철학책도 같이 읽는 중이다. 엄마 트루디는 이름부터 디카페인마냥 진실한-에 디가 붙었다. 내연남이자 아이의 삼촌인 클로드와 함께 낡았지만 비싸게 팔 수 있는 집을 차지하기 위해 집의 소유주인 아이 아빠 존 케언크로스를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고 거짓을 준비한다.



“그럼.” 아버지가 말한다. 그의 말에는 그가 알지 못하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만 가볼게.”



여기 왜 밑줄 쳐놨냐. 죽음과 사랑의 컵을 들이킨 존의 마지막 말이 왠지 슬펐나 보다. 독이 든 스무디를 마시게 하려고 트루디는 존이 상기시킨 옛 사랑을 위한 건배 제의를 한다.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게된 사이는 사랑한 적 없던 사이보다 훨씬 못한 게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그저 헤어지고 멀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증오하고 제거하고 싶어진 마음이란. 그래서 건네는 거짓말이란. 거기에는 돈과 욕심이 끼어 있다.



뱃속의 태아란 바깥 세상을 얼마나 간파하건 간에 무력하고 무기력한 존재라, 그 아이가 실행할 수 있는 복수란 이미 예측 가능하고 그래서 결말도 약간 싱겁긴 했다. 존의 유령이 나타나 클로드와 트루디를 휩쓸고 가는 장면의 으스스함은 마음에 들었지만 읽으면서도 그저 뱃속 아이의 꿈일 뿐, 하면서 더 서글퍼질 뿐이었다. 테레즈 라캥의 두 커플이나 박쥐의 태주와 상현은 그나마 극심한 죄책감 속에 결국 죽음 밖에는 다른 끝을 생각하지 못하지만, 여기 두 커플은 죄책감조차 너무나 희박해 더욱 밉살스러웠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안 예쁜 커플은 처음 본다. 섹스도 안 예쁘고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도 꼴보기 싫고. 서로를 증오하고 물어뜯고 빈정대는 게 이미 다 끝난 놈들 같은데 오로지 합의점이라고는 존을 없애고 싶고 그의 집과 돈을 차지하고 싶다는 마음 뿐인데 그게 이렇게 일치단결해서 너무 쉽게 사람을 죽여버린다. 어쩜 뒷수습은 제대로 생각도 안 하는 멍청함도 똑같다.



이웃의 리뷰에서 존이 죽임 당한 이유를 시를 읊어서, 라고 했는데.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아이 아빠가 (클로드처럼 상투적인 말을 남발하진 않더라도) 건조하고 실용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고, 엄마가 새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시를 쓰고 시를 읽고 시를 낭송하는 사람이라면, 뱃속 아이의 입을 빌린 소설가는 누구에게 더 호의적인 말을 했을까. 일리가 있네, 아버지는 죽어도 싸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ㅎㅎㅎㅎㅎ.

조금 더 나아가서 엄마를 밤낮없이 뚜들겨패는 아버지를 내연남과 엄마가 공모해서 죽여버리는 이야기라면, 뱃속 아기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설정하다보니 갑자기 우리 엄마 생각난다. 신혼 3일 만에 술처먹고 때리고 옷단추찢어서 벗어던지고 유리를 박살내는 미친놈이 남편이 된 걸 깨달았을 때, 그런데 뱃속에 나라는 호두 껍데기 만한 게 생긴 걸 알아서 도망갈수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절망의 나락은. 죽여버릴 생각은 못했을까. 아빠의 줄줄이 남동생들은 엄마를 참 좋아하고 잘 따랐다. 엄마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따뜻하게 답변해주는 사람이었으니. 외국 나가서도 형수형수 하면서 편지 쓰던, 자기 신혼집을 굳이 우리집 근처에 마련하던, 자기 부인에게 형수 좀 보고 배워, 하던 그 삼촌들 중에 엄마를 좋아했던 놈도 몇몇은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매일 술처먹고 그 착한 형수를 괴롭히는 자기 형을 죽이고 싶은 놈도 한둘은 있지 않았을까. 그럼 뱃속에 있던, 그러다 태어난 나는 누구를 응원했을까. 누구를 응원해야 했을까. 그래도 유전자 반을 물려준 아빠? 엄마를 해방시켜줄(그리고 다시 유사한 지옥으로 끌고 내려갈) 삼촌? 결국 다같은 할아버지한테 난 남자새끼들이라 다 노답이지 싶다. 나도 얼마간의 유전자를 나눠가진 노답 집구석. 암튼 그런 지옥이 싫어서 스물 다섯 살의 나는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때리고 엄마 손을 잡아 당겨 구급차를 타고 집을 나왔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아빠는 독이 든 스무디를 진작에 마셨을 거에요. 그러니까 혼자 살아남은 걸 기쁘게 여기고 잘 사세요.

기승전패륜ㅋㅋㅋㅋ



자유의지에 대해 부정하며 사랑에 대해 아이가 남긴 슬픈 코멘트를 밑줄 쳐놨다. 유전자와 지나온 날이 만든 두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를 되게 냉소적으로 써 놨다. 아이야, 그래도 네 말대로 네 ‘추측은 전에도 틀린 적이 있다.’

이제 복수를 위해 태어났으니 진짜 ’잔을 통해 마시는 와인, 불빛 아래 직접 읽는 책, 바흐의 음악, 해변 산책, 달빛 아래서의 키스’ 를 누리며 진짜 사랑을 겪어보길. 네 말대로 ‘그 모든 것이 비싸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으며,’ 네 앞에 놓여 있으니까.



‘하지만 나조차 안다. 사랑이 논리를 따르지 않으며, 권력이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연인들은 갈망뿐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첫 키스에 이른다. 늘 이점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피난처가 필요하고, 또 어떤 이는 그저 황홀경이라는 초현실만 요구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나 비이성적인 희생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경우는 드물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기억도 빈약하다. 어린 시절은, 유익하게든 그렇지 않게든 성인의 피부를 뚫고 빛난다. 성격을 형성하는 유전의 법칙 또한 그러하다. 자유의지 따위는 없음을 연인들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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