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0110 옌롄커
중국 소설은 별로 읽은 게 없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 단 두 권. 그리고 옌롄커의 사서를 읽었다. 중국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몇 편의 소설 속에서 마주한 이미지들에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일이란 완벽할 수 없고, 어떤 대의와 신념과 확신으로 뭉쳐 무언가를 이루려는 자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런데 그 힘이 향하는 방향이 생각보다 한참 잘못되었을 때 그 영향력 아래 놓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고통을 당하고 인간의 존엄을 잃고 쉽게 죽어간다. 그 와중에 할 거 다하는 우리 인간들...이라는 이웃의 코멘트에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제목처럼, 네 개의 책이 교차 서술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실 시시포스 신화 한 권은 마지막에만 짧게 등장하고, 저자를 알 수 없는 하늘의 아이, 작가가 몰래 쓴 옛길, 작가가 아이의 지시에 따라 쓴 죄인록 세 작품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죄인록은 중반부에 사라지지만 작가가 아이에게 식량을 구걸하고 나중에 뒤늦은 죄책감을 깨우치는 장치로 종종 등장한다. 여러 책을 병치하며 서술을 달리하는 구성이 나름 신선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뻘짓을 다하면서 온갖 실패를 겪어도 인간이란 이내 적응한다. 일부는 살아남는다. 또 일부는 그 와중에 사랑도 한다. 책이 뭐라고,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책을 지킨다. 아니 그런데 또 극한에서는 역시 목숨이랑 먹을 게 우선이긴 하다.
왠만한 괴작들 아무렇지 않게 보는 편인데 읽기 힘든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 작가가 황무지에 홀로 나가 밀을 키우는 이야기, 음악의 비밀, 작가가 학자와 음악에게 사죄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그랬다. 단순히 장면의 고어함이 문제라기보다 그만큼 절박하고 한계에 몰린 인간 상황을 감당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그게 다 있을 법할 이야기로 느껴지는 동시에 말이 되나, 아니 또 저럴 수도 있겠다, 오락가락거려서 더 그랬지 싶다. 피를 팔아 아이를 살리려는 허삼관 매혈기 속 아버지, 인생에서 홀로 남아 콩을 퍼먹다 죽은 가여운 손자, 극심한 기아의 끝에 아이를 잡아먹거나 생살을 베어 먹이거나 시체를 뜯어먹는 설화 같은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저런 이야기가 반복해 나오는 건, 언젠가는 누군가 정말 겪은 일들인지 몰라, 그게 아니라도 저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겠다 싶은 처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내내 전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 아이의 존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랑을 가진, 선량한 의도, 동시에 자신의 명예와 허영을 채우려는, 호기심 많은, 천진한, 죽고 싶은, 마지막에는 자기 희생을 감내하는, 알고 보니 책의 수호자인, 그의 죽음을 도교적으로 구름 까치 등등 온 자연이 슬퍼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징이었다. 저자가 나는 인민의 반동도 아니고, 사실 국가가 나를 아껴서 그런 거 알아, 뭐 이렇게 물타기하려고 저렇게 그린 건가 싶기도 했지만 조금 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중간 마름에 착취에 일조하는 멍청이 아닌가. 이 소설 보니까 애들한테 스티커 나눠주면서 동기 부여하는 일이 되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많이 하던 짓인데. 아 싫으다. 빨간 꽃 종이별 강철별 온갖 치장의 말로 탐미적으로 아름답게 그린 장면들이 많지만 그냥 섬뜩하기만 하다.
황폐해 가는 자연 풍경,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예쁘게 써 놓은 문장들이 많았다. 지나온 역사에 상상을 더하고 사람의 마음과 일을 전하고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내는 소설의 일을 생각한다. 많은 생각과 씀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1-16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6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6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6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