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칸트인가 -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서가명강 시리즈 5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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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김상환

어제까지 올해 읽을 책 다 읽었다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이 책이 빌려져 있었다. ㅋㅋㅋ 전에 4부 조금 남겨둔 채로 자동 반납되어 버려서 올해 안에는 못 보겠구나 했는데, 결국 다시 보게 되었다. 항상 급한 성질머리...한 해 다 가기도 전에 결산 따위 하니 한 권 더 따라 붙는다.
칸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때가 대략 기억난다. 초등학교 3,4학년 쯤 이름도 거창한 뉴턴 이라는 월간 학습지를 엄마가 시켜줬었다. 얄팍한 두께인데도 맨날 밀렸다. 거기서 쉬어가는 이야기처럼 딸려온 어떤 글에, 칸트라는 철학자가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매일 같은 시간 산책을 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며 틀어진 시계의 시간을 맞췄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 때 그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런 이야기를 어떤 출처에서 읽었다는 걸 기억하는 것만 해도 꽤나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이후 몇 년이 더 지나 허세 가득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일기 검사 시간에 내 일기의 열혈 독자가 되어 함께 일기를 돌려보던 (아마도 지금 내 나이 즈음의) 동학년 선생님 중 실과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선생님이 나를 어른 취급해 주는 게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으로 그려서 선물했던가, 여하튼 어떤 보답이라면서 최인호가 당시 낸 따끈한 에세이집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라는 책을 주셨다. 별들의 고향도 안 본 꼬마애가 그게 뭐라고 엄청 재미나게 읽었다. 또 그 선생님이 권해주는 소피의 세계라는 당시 핫한 철학 소설을 사서 열심히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거기서 또 칸트를 만났다. 뭔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 안나는데, 담임 선생님이 글씨 쓰기 연습하라고 하면 10칸 깍뚜기 공책에 그 책을 딱 펼치고, ‘머리 위엔 별빛 가득한 밤하늘, 내 마음 속엔 도덕법’ 이라든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같은 뜻도 모를 인용구들을 베껴적던 생각이 난다. 존경하는 위인에 떡 하니 칸트를 쓴다던가, 장래희망에 철학자라고 쓰기 까지...중학교도 가기 전에 뭣도 모르고 쥐뿔도 모르고 인생을 말아먹으려다가 금세 잊어버렸다. (그리고 결국 장래희망에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절대 그 직업 만은 갖지 않겠다고 담임교사에게 선언한 그 직업을 가지고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인생이란…)
귀여운 개론서 덕후님(이하 귀개덕 그러나 이하 나올 일 없을 듯..ㅋㅋㅋ)의 검증과 자문을 받은 이 책의 제목과 표지가 어른거려서 빌려 보았다. 책의 초입에 주요 키워드를 정리해주고 시작하는 것부터 굉장히 친절해서 마음에 들었다. 총 4부로 나뉘어져 칸트의 저작인 순수이성비판(인지 혁명), 실천이성비판(윤리 혁명), 판단력 비판 전반(미학 혁명), 후반(생태 혁명?자연에 대한 인식)을 다룬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어려운 내용인데도 이 책은 그럭저럭 읽을 만 하구나, 역시 개론서 전문가 추천 받은 책이라 다르구나 했다. ㅎㅎ 강의록에 바탕을 둔 저작이라 그런지 중간 중간 나오는 도식들도 개념과 용어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개념들이 처음이 아니구나 싶었다. 집에 뭔 철학 개론서들 막 꽂혀 있었는데 언젠가 읽은 기억은 전혀 없지만 어쨌거나 주워보긴 했나 보다. 보고서 다 까먹고 아 그냥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 할 정도로 스쳐지나간 느낌이다.
생각한다. 라는 말을 자주 글에 쓰는데 칸트는 그 생각한다는 일을 마구 쪼개고 분석해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설명해 놓았다. 대단한 것 같다. 칸트의 저작과 이론들은 나중의 철학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 분야의 기틀이 되었다. 도덕법칙, 윤리학, 이런 부분에서의 영향력은 하도 도덕 시간 같은 때 많이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예술이나 과학에까지 뻗어 있는 줄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나서, 생각난 김에 초6 때 읽던 소피의 세계가 아직 뒷통수 부근에 꽂혀 있길래 뽑아 보았다. 1996.4.26. 산 날짜인지 읽은 날짜인지 어쨌든 이름까지 적어 놓았구나 어린 나야.
이 책을 읽고 소피의 세계에 소개된 칸트 부분을 읽으니 왠지 뭔 말인지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ㅎㅎ30쪽 남짓에 압축한 칸트의 사상을 대화체로 설명해주듯 (어거지로) 풀어놓은 내용을 초6의 내가 이해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글자가 눈을 스치며 아 뭔말인지 하나도 몰라도 폼나네 했겠지.
책갈피 사이에서 마른 장미꽃잎과 장미잎이 떨어졌다. 아마 노란색 장미였을 건데 꽃잎은 갈색이 되어 있다. 잎은 여전히 초록에 가깝다. 20년 넘어 기억하는 건 읽은 책 내용이 아니라 그때 내가 갈피에 끼운 꽃의 원래 색이 노란색이라는 거다. 뭐 아무렴 어때.ㅎㅎㅎㅎ
원전 여러 번 파며 머리 싸매는 것보다 다양한 개론서와 교양서가 같은 사상과 사상가를 다루는 걸 반복해서 읽는 게 꽤 괜찮은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물론 나는 멍청하고 집중력이 부족해서 읽을 때마다 아 뭔말인지 모르겠고 나는 멍청하구나 ㅎㅎ 하고 깨닫는 용도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걸 잊지 않으려고 철학책을 가끔 읽는 거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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