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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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밀란 쿤데라

루드빅
몇 년 전 클래시오브클랜이라는 게임을 한동안 열심히 했다. 아이디에 ludwig을 넣었다. 다들 루드윅님, 루드위그님, 러드윅님, 하면 루트비히입니다, 하고 정색했다. 꼴에 다 까먹은 제2외국어 독일어했다고. 같은 이름 참 많다. 베토벤, 비트겐슈타인, 노이슈반슈타인성 만든 오스트리아 황제?황태자?
그런데 여기서 또 본다. 너를 잊고 있었구나. 반가웠다. 체코에서는 루드빅이네. 내가 가진 판형이 아닌 곳에선 루드비크인가 봐? 하긴 토마스 테레사는 쇄와 판이 늘면서 번역은 그대로고 이름만 토마시 테레자가 되어 울컥 한 적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본 건 루드비크가 당과 학교에서 추방되어 검은 군대에서 뺑이치던 나이쯤일 것이고, 그로부터 15년쯤 흘러 현재 서술 시점의 루드빅 나이에 다시 읽게 되었다. 안 그래도 영감님 책 다시 둘러보고 싶은 참이었다.
구애 중인 여자친구 마르케타에게 재치있는 척 던진 농담 한 줄,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스스로 공산당에 충실해왔다고 믿었던 루드빅의 삶은 이 농담 한 마디 담긴 엽서가 공개되면서 통째로 꼬인다. 반동분자로 몰려 당과 학교에서 쫓겨나 그동안 자신이 적이라 여겼을 만한 이들이 모인 검은 군대에 소속되어 탄광에서 일한다.
처음 이 책을 볼 때는 루드빅의 관점에 몰입했던 것 같다. 반항적인 무신론자에 의심에 가득차 권위있는 것들을 희화화하는 데 몰두하던 어린 나였다. 신이 있고 지옥이 있더라도 믿지 않고 그냥 불구덩이를 택한다고 단언하던 시절. 나의 광대짓이 언젠가 나를 옥죌 수도 있다는 불안이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것 같다.
루드빅과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의 영감님이 스스로 충분히 어른이고 늙었다고 생각하며 썼을 이 소설을 지금 읽으면 참, 귀엽다. 어딘가를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떠나야 했던, 일찍 늙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근데 영감님, 나중에 80살 넘어서까지 소설책 내실 걸, 그러고도 90넘어서도 계속 살아 있을 줄은 그땐 몰랐죠? 나중에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소재들이 수십 년, 평생에 걸쳐 변주될 것을 알고 있었나요? 나중에 젊을 때 소설 읽고 귀여워서 이불킥 한 적 없어요?
헬레나
이번에는 헬레나랑 동화되어 읽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그 사이 처지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헬레나는 참, 말도 많고. 사랑에도 잘 빠지고. 그 사랑 때문에 너무나도 가혹한 일을 겪는다. 마침표 대신 쉼표로 그녀의 시점을 서술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사실 너무 오래되어 내용 하나도 기억이 안 났는데 내 어딘가는 결말에서 그렇게도 심하게 우습고 비참하게 그려질 걸 알았나 보다. 그래서 보는 내내 가여워 하면서 아냐, 나랑은 달라, 자꾸 거리를 두었다. 변태같은 빻은 영감님! 겨우 여자 화자를 넣은 게 이 정도 수준이다. 게다가 목차에서 두번이나 나오니 헬레나가 루드빅 인생에 꽤나 중요한 위치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도구적이고 애정 한 가닥 없는 수단으로써의 여성. 이땐 이 정도였구나. 그나마 테레사 사비나의 입장이 된 나중 소설은 엄청나게 진보한 거였어.
루치에
헬레나 보다는 루치에가 루드빅의 마음 속에 전설이나 신화처럼 자리 잡은 젊은 날 사랑의 상징이다. 검은 군대 시절 루드빅은 그녀를 향한 갈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결국 그녀에게서 거절 당하지만, 이후로도 그녀는 어떤 향수처럼 마음 깊이 남아 있다. 그런 그녀를 십오년 만에 마주하지만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한다. 이쯤되면 루치에 관점도 나올 법 한데, 루드빅과 코스트카의 회상으로만 묘사된다. 그녀의 목소리는 소설내내 끝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한공주 급의 비극적인 성범죄 희생자인 과거까지 등장한다. 이 소설 안의 여성들은 내내 타자이다. 젊은 할배의 한계를 본다. 사실 나이 처먹고도 뭐 특별히 달라지진 않는다. 이런 할배가 뭐가 좋다고. 나는 뭐할라고 이런 인간 혐오와 여성 혐오와 애정관을 오래도록 나한테 새겨왔나. 어쨌거나 행복하렴, 루치에, 헬레나.
야로슬라브와 제마넥
둘은 노골적인 대척점의 상징이다. 민속음악 덕후인 야로슬라브는 과거, 전통, 향수, 고향, 집, 놓아버린 음악, 잊었던 옛 친구, 추방당한 왕이라면 제마넥은 힘을 가진 자들 편, 한 때 같은 편이라고 믿었으나 기대를 꺾고 나를 내친 공산주의, 신념, 진보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다. 루드빅은 결국 제마넥에게 추방 쳐맞고 헬레나를 통해 복수를 꿈꾸지만 이미 늦은 타이밍임을, 복수는 커녕 폭망한 며칠만을 인정하게 된다. 시대착오적인 야로슬라브에게 루드빅은 향수를 느끼며 다시 같이 민속음악 합주를 하고 돌아온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 이미 그 오랜 향수 대상조차 거의 죽었고, 죽어간다는 것만 확인할 뿐이다. 그런 내용이 대놓고 제시되는 제7부에서 관현악 피날레처럼 굉장히 화려하고 정신 없고 현란하게, 축제의 분주함과, 왕의 행차와 기사들이 외치는 운율 속에 인물들이 서로 꼬이고 풀고 물고 뱉고 난리가 나는데, 약간 연극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코스트카
아 이새끼가 제일 싫다. 기독교의 수호자인 양, 루드빅을 사랑한다면서 속으로는 비난하고, 순응하지 않는 걸 오만으로 여기고. 정 떨어지는 부인을 피해 시골로 튀고, 하나님의 사랑 운운하면서 루치에랑 한 번 하고 튀는 주제에 다 하나님 부름 핑계댄다. 자기도 그게 위선인 걸 안다. 아 진짜 천하의개샹놈이다. 이런 인물 현실에도 생각보다 많다.

소설책 마지막 겉표지 사이에 처음 읽던 무렵의 젊은 내가 젊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내가 한참 더 많이 좋아하던 시절이네. 15년 전 귀여운 어린 애들. 이것도 참 농담같은 경험이었다.

어쨌거나 전설의 시작, 영감님의 젊은 시절 소설을 다시, 같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삶들이 소재는 진부할지 몰라도 변주하는 이가 기교부릴 여지는 남아있잖아? 하고 위안 삼는다.
나는 다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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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1-16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찾아봤는데 여기 루드빅은 Ludvik이다...뭐 비슷한 놈들이지 피터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폴이나...(우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