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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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도 소리도 감촉도 냄새도 모를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 내 머릿속에 공산주의 같은 유령이 멈추지 않고 떠돈다.
어떤 사람들의 뇌는 무언가를 강렬하게 아름답다고 반응하더라도, 같은 대상을 보는 누구나 다 같은 정도의 감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예쁘네, 알록달록하네, 하고 말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새의 깃털이 그런 대상이 되었다. 내 눈에는 그저 가볍고 부드럽게 날리는 게 장점의 전부인, 냄새날 것 같아 찝찝한 동물의 체모가 누군가에게는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고 고액에 거래된다. 새들 스스로도 아름다운 깃털을 선호한다. 이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화려한 깃털과 현란한 춤실력을 발전시켰다. 발전시켰다는 건 정확하지 않고, 그런 유전자를 갖춘 개체가 자손을 남기는 데 성공해 그런 형질이 여태 남았다. 다윈의 종의 기원과 자연선택설에서 다뤄진 이야기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월리스라는 박물학자 또한 세계 오지를 누비며 수많은 동식물 표본을 모으는 과정에서 같은 통찰을 얻게 된다.
월리스와 다윈의 표본은 자연사박물관에 보관중이었다. 그중 트링의 박물관에 에드윈 리스트라는 플루트 전공 학생이 침입해 새 수 백마리를 훔쳐 간다.
난민 구호 단체에서 일하다 지쳐 송어 낚시에 빠져 있던 화자는 그 사건에 관해 흥미를 가지고 범인 본인과 그 주변 인물, 플라이 동호회 사이트 사람들, 박물관 관계자와 경찰 등과 접촉하며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고 아직 회수되지 못한 도난된 새들을 추적한다.
책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 소설인 줄 알았다. 월리스의 고단한 수집 여정, 빅토리아 시대 깃털 모자 유행, 낚시를 위한 또는 낚시 없이 플라이 자체에 매료된 플라이 타잉 매니아들의 세계를 소개한 글이 중간에 있는 게 흥미롭네, 했는데 뒤늦게 어 이거 논픽션이네 하고 깨달았다. 나 바보 ㅋㅋㅋ
에드윈이 교묘하게 빠져나가고도 내가 뭘 훔쳤는데? 하고 화자에게 당당히 말하는 부분은 섬찟하면서도 얄미웠다. 사실 그런 반응 읽기 전부터 그러게, 잊혀진 채 그저 처 박혀 있는 표본이 무슨 소용이야, 지식의 추구가 미의 추구나 부의 추구보다 상위 가치라는 건 누구 마음대로야,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의 깃털 구매자의 허무주의에도 악간 흔들렸다. 어차피 인간이 다 없애고 있는 거. 이미 죽은 걸 그냥 두느니 이용하는 게 왜. 그러면서도 찜찜했다. 어쨌든 자기들은 별 노력 없이 남들이 다른 목적으로 이루고 지키는 것을 자기들 이익을 위해 다 해체하고 돈 몇 푼에 팔아 먹었잖아. 그럼 나쁜 놈들인 건 맞다. 그런 주제에 그런 핑계라니.
아스퍼거증후군이 이제는 DSM에서 삭제되고 자폐증에 통합된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금은 없어진 그 질병 진단이 에드윈이 감옥에 가지 않을 구실이 된 게 씁쓸하다.
낚시를 잘 모르니 플라이라는 도구를 처음 알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니 깃털과 실을 이용해 정말 날벌레 같이도 만들어놨다. 만든 사람들이 정말 예쁘고 정교하게 만들려고 애썼구나 싶었다.
언급된 새들도 몇 가지 사진을 찾아보았다. 극락조는 화려하고 긴 꼬리털이 매력적이었다. 우리 주변 참새같은 애들은 고양이한테 채이지 않으려고 짤뚱한 꼬리로 진화했지만 얘들 사는 뉴기니에는 그런 천적이 없어 가질 수 있게 된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수많은 극락조가 인간들 손에 죽었고 멸종 위기에 놓였다.
책 다 읽고나서야 맨 뒤에 책 속에서 비싸게 거래되던 멸종 위기의 새들, 깃털과 플라이, 관련인들의 사진이 있는 걸 알았다. 미리 살펴보고 책을 읽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름다운 것들을 그저 지켜보고 지켜주는 사랑도 있는데, 어떻게든 소유하고 원하는대로 이용하고 거기 만족 못하고 더많이 쥐려는 사랑도 있다. 사랑을 아무데나 붙이면 안 되지. 탐욕, 집착, 파괴다. 수많은 동식물이 그 덕에 사라진다. 사람의 마음이 부서진다. 공동체의 미덕이나 공공이익이 파괴된다. 그런 걸 정당화하는 편에 서서는 안 된다.

사건을 추적하는 집요함 뿐 아니라 서술 방식과 시간 전개를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고 잘 읽혔다. 이전 책 보며 심통났던 게 둘다 대출기간 짧은데 앞에 빌린 책이 너무 재미없고 이 책이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영국 배경의 소설은 좋아하고 인도 작가 관점의 책은 힘들어 한 건 내 문화 축적경험조차 이미 식민지화되서 그런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재미있고 없고 잘 쓰고 못 쓰고 차이일수도 있고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뭐라고 답을 못하겠다. 어쨌든 책을 읽을 수록 영국에는 가고 싶은 곳이 늘고 (길 가는 여성이 자기 몸을 만져대는 수많은 남자 새끼를 피해다녀야 하는) 인도는 엄두를 못내게 되는 걸 보면 조금 슬프다. 난 너무 쫄보야.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도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이젠 더 보고 싶다. 그런데 너무 비싸...일단 가지고 있는 종의 기원이나 먼저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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