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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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9 박지리

박지리를 너무 늦게 알았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상자 가득 원고를 담아 출판사에 보낸 글쓰기를 배운 적 없는 작가라는 아우라를 먼저 접했다. 책을 몇 권 모아두었지만 여태 읽지 않았다.
제목은 좀 후진데 자꾸 궁금하기도 한 이 책을 살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 전자 도서관에 올라온 걸 보고 빌려 읽었다.
너무 늦게 읽었고, 지금이라도 읽어 다행이었다. 아직 한 권 밖에 안 봐서 남은 책들이 다행이고 더 새로운 이야기는 그 이상 나올 수 없어 안타깝다. 글을 쓰는게 뭐라고, 그 무게가 뭐라고 견디지 못했을까. 그에게는 단순히 뭐라고 정도가 아니었겠지.

희곡 형식의 이야기 전개가 책 초반부와 종반부에 섞여 있다. 그 부분은 정말 배우의 독백과 방백과 연기를 보는 기분이다. 중간의 전개는 연수원에 들어간 M의 의식과 심리와 인식을 시간대를 명시하며 잘 보여주고 있다. 술술 읽힌다. 고대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희곡 같은 느낌, 그런 걸 이런 식으로 응용하는 게 신기하다.
사실 1인칭으로 내면까지 보여주는 방법은 과연 주인공이 제대로 된 인식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완전 미친 놈인 건지, 또다른 음모가 있는 건지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읽으면서도 오락가락한다. 이건 왠지 노렸을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얻어 쳐맞을 남자가, 여자가, 하는 성고정관념도 아예 노골적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것도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손가락 말고 달을 봐야 한다.
문장도 전개도 탄탄했고 전달하려는 상황을 읽는 이가 파악하는데 어려움 없게 서술하고 있다. 생전에 박지리의 소설은 청소년 권장 도서로 인기를 끌었었다. 읽기 쉬운 것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읽기의 쉬움이 결코 생각이나 감상의 쉬움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 때 그 청소년 권장 목록의 책은 아직 읽지 않아 정확히 모르지만 이번 책은 그랬다. 48번인지 49번인지 50번인지 면접을 보며 면접형 인간이 되어 버린, 평가와 경쟁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해버리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고 그러다 뒤늦게 진실을 알아채며 무너져버리는 M의 모습은 실존주의 소설 속 인물 부조리극의 주연 배우 그 자체였다. 거리감을 두고 보다가도 나는 안 저런가 하고 이입하고 슬퍼지기도 하는, 줌인아웃을 반복하게 했다.
그런 주인공의 입을 빌어 그의 관찰대로 주변 인물을 묘사하는데, 신기하게도 주인공의 편견 한 겹 씌워진 뒤로 그 인물들의 다른 모습도 같이 보였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망설이는 독자에게는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저 내 취향일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고 나보다 어린 작가를 훨씬 오래 전에 잃어버린게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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