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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20190924 윤이형
책을 다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쪽은 아니다.
세 번째 읽는 윤이형의 책이고, 내게는 셋 중 가장 별로였다.
날카롭고 컴컴하고 그런 와중에도 다 놓아버리지 않는 느낌이 이전의 책들에는 있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초월, 체념 그런게 너무 강해졌다. 너무 착하다 이런 것도 아니고 약간의 무력감, 눈물 줄줄 쏟으며 어떡해, 하고 안절부절하는 느낌. 사람은 변하고 나이들고 글도 그렇겠지만. 아쉽다. 게다가 그런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못된 나를 확인하는 건 더 싫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이 이 책에 있을 줄 알았는데 다음 책에 실으려는 건지 없었다. 쳇. 그래서 아직까지 못 읽었다. 반려 애완 문화 자체를 싫어한다. 동물이 싫은 건 아니고 그 동물을 곁에 두는 사람의 커지는 이기심과 인간중심성이 너무 싫다. 작가는 이번 달에 또 반려 고양이를 떠나보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보았다. 나는 애도의 대상을 그렇게 확장하고 싶지 않다. 인간만으로도 충분히 슬프다. 난 못 됐다.
-작은마음동호회
집회에 나서지 못했던 여성들이 제목과 같은 집단을 이루고 책을 내고 거리에 선다. 연대와 참여. 누군가에게는 실현하기 어려운. 상위의 욕구일까. 소설집의 표지는 소설에 묘사된 서빈이 디자인해 준, 그녀들이 발간한 책의 모습과 닮았다.
-승혜와 미오
절규, 루카에서 이어지는 동성애 서사. 작가는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고 오래 전 또다른 인터뷰에서 보았다. 우리가 LGBT 라고 커다란 범주로 뭉뚱그려 지칭하는 그 안에도 수많은 다양성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을까. 아이를 원치 않는 미오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승혜의 불협. 승혜가 베이비시터로 돌보는 이호와 이호엄마가 밀푀유 나베를 먹는 장면은 따뜻해 보인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장면들의 효과. 작위적이지만 본능은 반응한다. 모르지만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이해가 시작되는지도 모르지.
-마흔셋
자매의 기억을 가지고 남매로 살기 시작하는 재경과 재윤. 엄마는 죽고 둘은 늙고 있다. 죽지 않고 버티고 있다. 트랜스젠더를 다뤘는데, 잘 모르겠다. 와 닿지 않았다.
-피클
젠더감수성. 피해자를 보는 눈. 거짓말과 뒤얽힌 진실. 외면하지 못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 이것도 와 닿지 않았다. 약간 짜증이 났던 것도 같다.
-이웃의 선한 사람
내 아이를 구해준 사람이 내게 식초를 들이부은 이상한 사람이라면. 게다가 미래를 볼 수 있다면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불안이 가득 차 있는 느낌.
-하즐라프 1-의심하는 용, 2-용기사의 자격
각기 다른 지면에 발표된 연작소설인데 판타지이지만 약간 우화나 비유하는 바가 있는 듯한 소설이었다. IS에 투신한 아이들의 어머니가 용의 알을 접하고 용기사가 되어 사악한 나라로 가서 싸우다 용은 사악한 기운에 사로잡혀 죄없는 이들을 헤치고, 용기사는 그 용대신 죄값을 치르며 처형된다-는 이야기와 전투용도 번식용도 아닌 그저 사랑하고 의심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두 용 갈과 이파의 이야기가 나온다. 두번째 소설은 용기사 체험을 한 어머니들을 취재하는 여성 화자의 시점인데, 그녀가 어느 도시의 식당을 방문해 용기사 이야기를 구전해 듣는 형식이다. 솔직히 두 가지 다 읽어도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재미도 없어 힘겹게 읽었다.
-님프들
내가 사랑했고, 내게서 떠나거나 죽어 사라진 이들을 모두 준이라 지칭한다. 나에게 중대한 타자 모두가 준으로 대체되면 상당히 혼란하다. 분열적이기까지하다. 마지막에는 죽은 아이 준의 시점으로 독자를 향해 말을 걸듯하는데 이것도 잘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미러링? 사랑을 가장했던 폭력, 수치심의 치환, 구병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이었나 그 소설과 굉장히 유사한 느낌이었다.
-수아
대니에 이어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 차별에 대한 감수성. 그런데 꼭 이렇게 총구를 들이밀고 옷을 벗겨내고 남편과 사람들을 쓰러뜨려서 입장을 바꾸고 공감을 강요받아야 하나? 그만큼 절박함과 절실함을 느끼는 누군가들이 있지만. 그럴수록 식어버리고 나쁜놈이 되어 버리는 느낌에 진짜로 나쁜놈처럼 굴게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이해가 되요. 이런 일은 더 드물 것 같다.
-역사
알라딘 열일곱에서 읽었을 때도 좋았는데 다시 읽어도 괜찮았다. 끝내 열일곱이 되지 않지만 혐오와 핍박과 학살의 아픔을 잊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당신들은 우리를 끝낼 수 없다.’하고 맺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도 좁아 터졌는데 다른 방식으로 작아서 읽고 나서 온통 독한 말들만 쏟아 놓았다. 읽기 전에 무슨 기대를 했나 모르지만 소설들이 전과 달라지긴 한 것 같고 그게 나랑은 안 맞았나 보다. 손가락질이, 눈물 맺힌 시선이 자꾸 나를 가리킨다는 피해망상이 돋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죄의식이라니. 대체로 잔잔한 이야기들이지만 불편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