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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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손보미

세 번째 읽은 손보미. 그러니까 여태 낸 책 다 봤다.
책 제목에 고양이 넣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첫 소설과 끝 소설에 고양이가 나온다. 나는 고양이고 개고 애완 반려 문화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면역력이 있어 다행인걸까. 아니지 나 같은 사람은 괜히 반감을 가질지도. 반칙! 이번에는 소설집 제목과 동명의 소설은 없다.
손보미 월드에는 한강변에 거대한 대관람차가 유유히 빛나며 돌고 있다. 희생자들을 추모 또는 기억하기 위한. 길광용 감독이 만든 영화는 두 책을 넘나들며 유명하다. 소설책 페이지에 푹 뚫어둔 구멍으로 왔다갔다 하는 웜홀 만든 것처럼 그 평행한 우주들을 관통하고 공유하는 조각들을 줍는 재미가 있다. 전작 소설집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다. 사실 두 책 간에 오 년의 간극이 있는데 이번 책에 실린 소설들은 제법 오래된 글들이다. 소설을 쓰기 힘든 날을 보낸 것 같다. 그래서 많이 울었나 보다. 온도도 색깔도 딱 손보미네, 하는 건 있지만 너무 그대로라 아쉬움도 크다. 그런데 세게 뭐라 그러면 또 막 울 것 같아 뭐라 못하겠다.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알라딘 17주년 기념 책에서 읽었던 짧은 글인데 이거 읽고 아 왜 점점 못 쓰지 했었다. 함축하고 압축하는 게 너무 밀도가 세고 짧으면 잘 안 와 닿는 것 같다. 내가 고양이 안 좋아하는 것도 한 몫. 그래도 다른 소설들은 이거 보단 좋아서 다행이었다.

대관람차-소설은 따지고 보면 그럴 듯한 거짓말이고 세상에 없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름을 붙여 그래? 하고 귀기울이게 만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 같다. 손보미 소설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깜찍한 뻥쟁이. 대관람차 스케일 봐봐ㅎㅎ 아시안파크에서 대관람차 타고 꼭대기 올라갈 때 진짜 무서워 죽을 뻔했다. 다시는 안 탈 거야.
오래된 호텔이 불타고 그 자리에 대관람차가 세워지도록 P는 여배우를 대신해 연설문과 칼럼을 쓴다. 아들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라고 말하기엔 소설 안을 꽉 메울 많은 일이 벌어진다.

산책-아버지가 밤중에 부재중인 걸 알고 아버지의 도시로 달려가는 딸은 사실 화자인 남편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담요를 받은 어린 부부 같은 커플이 아버지 입을 빌어 또다시 나왔다. 맨날 놀이터만 전전하고. 그래도 늘 같이 있으니 좋겠다.

임시교사-우리 엄마도 오랫동안 베이비시터를 했다. 이야기 속 부부와 봐주던 아기의 가정과 있었던 상황이 매우 흡사해 깜짝 놀랐다. 소설보다 훨씬 뒤의 영화지만 기생충도 생각났다. 시간을 왔다갔다 하며 각자의 회상 속에 그 시절을 떠올린다. 돌봄이라는 일. 그것을 맡은 타인. 지나고나면 아무 것도 아닌 사이. 대관람차가 보이는 그 집 거실의 뷰. 영국제 찻잔. 책장의 책. 보이지 않게 그어진 선.

고귀한 혈통-아버지와 닮아버린 아들 패리스. 홀로 오래 살아남은 어머니 이사벨라. 랄프 로렌처럼 또 깜찍한 거짓말에 동원된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출신과 핏줄에 집착하는 헛됨.

죽은 사람(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도 생각나고. 처음부터 화자가 어떤 상황인지 너무 예측가능했다. 그래도 소설 끝에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게 되었다. 케이가 죽지 않았다면, 하고 그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애틋했다. 무용했던 그녀의 탄탄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느낌. 무용 참 좋아하는구만.

상자 사나이-이건 너무 하루키. 종수도 생각난다. 실패한 대학원생. 나 결혼해, 하는 옛 연인. 같이 있기 위해 아무말잔치 하다 생겨난 상자 사나이. 빨간 페도라 우체부는 귀엽다.

몬순-모순. 이랑 말장난 하다 지은 제목 아닐까. 계절풍. 여기도 무용. 신혼여행의 어두운 예감을 부정하다 울기. 주인공한테 너무 가혹하다. 자기만 고통을 안다고 징징댔다고 그러기야. 따지고 보면 불행할수도 있겠네 뭐.

고양이의 보은-여기는 또 린디합. 또 빨간 페도라 배달부. 딸래미가 한 때 너무 좋아해서 수십번은 봤을 지브리의 망한 애니메이션과 오버랩(대놓고 애꾸눈 고양이라니 너무한 거 아냐). 거기에 너의 이름은! 하고 또 오버랩 될 것 같은. 다른 세계의 다른 내가 나타나 내 눈물도 반쯤 거둬가고 쓸 거리도 주고 가고 축복해 주고 가면 좋겠다, 하고 엉엉 울다 생각난 이야기 같다.
현실은. 날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걸. 어쨌든 고양이는 반칙이다.

울음은 멈추고 좀 더 잘 쓰게 되면 좋겠다. 울어야만 쓰는 사람도 있어서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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