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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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에밀 아자르(로맹가리)

어제는 백만년 (같은, 2018년 1월 이후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기생충을 보았다. 말하려는 게 너무나 분명한 비유를 담고 있었다. 설국열차의 수평적 이미지보다는 그 수직적인 이미지가 더 적합해 보였다. 그런데 뒤이은 장면의 설정상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현실은 계급 계층이 낮을 수록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간다? 신림동 달동네, 판자촌이었던 봉천고개 살아보면 알지. 
100에 30하던, 밤마다 변태들이 들여다보는 것 같은 두려움에 떨던, 곰팡이 퐁퐁피며 아토피를 심하게 만들던 반지하를 벗어난 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잠적으로 개포 주공 자가(그걸 들고만 있었어도, 하는 근심이 지금 어머님을 더 아프게 하는지도.)에서 전세로, 다시 보일러도 고장난 월세방에서 사춘기 긴 기간을 보내고도 다행히 번듯이 자라 나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사람. 
운 좋게도 시험 잘보는 능력을 가졌던 둘은 신림동 1층(이지만 역시 곰팡이 퐁퐁피어 아기를 아토피로 아프게했던 망할)다세대, 엘레베이터 없는 신림동 산꼭대기 4층 빌라를 거쳐 여전히 산꼭대기지만 곰팡이 안 피고 엘레베이터도 있는 옹벽뷰 아파트 저층에 안착했다. 
평창동 같은 곳의 대저택에 사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내가 누리게 된 많은 안정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밀어내고 배제한 다음 얻게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써놓고 보니 누가 보면 재벌3세라도 되는 줄 알겠네. 이번달로 무급 전환된 육아휴직자 주제에. 

슬플 때는 책을 읽는게 답인데. 하필이면 읽고 있던 책이 자기 앞의 생이야.
친구가 자기 앞의 생을 가지고 어디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부탁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읽어봤다. 
엘레베이터 없는 칠층의, 전직 창녀와 그녀가 위탁 받은 아이들이 사는 삶.아랍인, 유태인, 아프리카계 흑인, 트랜스젠더, 창녀, 마약 중독자, 창녀의 아이들, 독거 노인, 정신병자...  늙음과 병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난하고 가족마저 없는 이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도와주는 이웃이 있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삶을 지탱한다. 그렇지, 그나마도 누군가 있어야, 돌려 받을 수 없는 사랑이라도 쏟아야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지하생활자, 은둔자, 도망자, 그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누군가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영영 가질 수 없을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면 자신이든 타인이든 파괴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들을 보며 위안 삼는 속물이 되기는 싫다. 벼랑 끝에 걸리거나 떨어지거나 죽었을 수도 있는, 그런데 그러지 않은 내 삶에 감사하자, 이런 마음도 싫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런 삶들, 나도 언젠가 빠질 수 있는 가능성들에 대해 보고 들으며 슬퍼할 뿐이다. 해결할 의지도 넓은 사랑을 품을 그릇도 못되는 자신을 탓할 뿐이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누군가를 인질로 붙잡아 죽이는 것 말고는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었다. 아아, 세상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산과 바다로 동시에 바캉스를 갈 수 없어서 한군데를 선택해야 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치나 베트남전쟁처럼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에 사는, 과거에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유태인 노파 같은 건 누구의 관심사도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이 관심을 끌 일은 없다, 절대로.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수백만 이상의 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그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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