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함과 더러움 - 청결과 위생의 문화사
조르주 비가렐로 지음, 정재곤 옮김 / 돌베개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20190506 조르주 비가렐로

손을 자주 씻는 편이다. 편집증적 수준임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매일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는 건 아니다. 그냥 손만 엄청 닦고 손으로 입이나 얼굴을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 중고책을 사면 육면체의 온 면을 물티슈로 박박 닦는다. 종이 한 장씩은 닦아 낼 수 없는 걸 애석해 하면서. (그럴거면 새 책을 사란 말야.)
이 책에 나온대로라면 내가 강박적으로 가진 위생관념은 19세기 이후에야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편집증 중 결벽증은 없었을까? 확인하진 못 했지만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세까지 목욕탕, 한증막이 있었지만 위생을 위한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목욕은 곁다리고 쾌락과 범죄의 장처럼 여겨졌다.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이런 장소들은 대부분 폐쇄된다.
16-17세기 무렵에는 물 목욕은 위생과 상관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페스트 이후 물이 몸을 병들게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대신 사람들은 옷에 닿는 내의를 자주 갈아입어 청결을 유지하려 한다. 물로 안 씻었다 해서 청결에 무심했던 게 아니라 옷이 몸을 세척한다 믿었다. 이 시기의 청결은 겉으로 보이는 옷의 새것 같음, 단정함, 깨끗함으로 판단된다.
18세기 후반에는 차가운 물 목욕이 신체를 단련한다는 믿음이 유행한다. 주변을 깨끗이 하고 거리를 물청소하고 옷을 자주 갈아입는 노력도 하기 시작한다. 과학이 조금씩 발전하면서 물이 몸을 약하게 만든다는 믿음이 약해진다.
19세기에는 국가 주도로 공중목욕탕을 만들고 위생학이 발달하고 상하수도 시설도 본격 정비한다. 미생물에 대해 알게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병을 일으킨다는 공포를 가지고 물이 미생물을 씻어낼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계몽적인 방식으로 목욕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부유층은 수많은 내의를 소유하고, 호화로운 목욕탕, 욕조, 수도시설을 갖추거나 비싼 요금을 내는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등 당대 청결 관념에 맞는 물질이나 서비스를 누렸다. 반면 빈민층은 청결에 반하는 생활을 지탄 받거나 계몽의 대상이 되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공중 목욕시설, 적은 비용으로 여러 사람을 씻길 수 있는 샤워 시설의 첫 실험대상?이 되는 등 위생 면에서 소외되었다.

저자가 프랑스 역사학자라 참고 사료가 대부분 프랑스사에 한정되고 일부 영국 등 주변 국가 사례를 참고한 수준이다. 시대도 중세 이후부터 19세기까지로 국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위생, 청결, 깨끗함이라는 개념 하나를 가지고 온갖 사료를 뒤져 시대별로 사람들이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나름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취한 방안들을 방대하게 정리해 놓은 게 놀랍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개념, 어휘들이 시대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고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을 반영하고 계속 변해왔다는 걸 새삼 또 확인했다.

우리나라도 특정 시대별로 위생, 목욕 등에 대해 정리한 연구가 있는지 궁금하다. 재미있을 것 같다. 멀리 못 가면 현대사 속 목욕탕의 변천사라도.검색해보니 온라인 서점에 목욕의 역사에 대한 책은 단 세 권, 그 중 두 권은 같은 캐나다인 저자가 쓴 것이고, 한 권은 한국온천에 대해 일본인이 쓴 책이다. 둘다 뭔가 특이하다.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신문기사 아카이브 같은 거 뒤져서 한국 대중탕의 역사 -흥망성쇄를 책으로 써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안 팔릴 것 같으니 안 쓰는 거겠지?)
위생사에 대한 책은 주로 의료 쪽에 초점을 두고 있다. 청결에 대한 것은 다소 관념적이라 객관적 기술이 어려울 법도 하다. 당장 조르주 비가렐로도 사료뿐 아니라 온갖 당대 프랑스 소설에서 사람들의 인식과 생활 습관을 유추한 부분이 많다. 조선인들 더럽다 하는 서구인, 일본인 관점의 기술은 많은데 우리 조상들 스스로는 깨끗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유지했는지 궁금하다. 이것도 누가 좀 써 주면 좋겠다. 어렵고 안 팔리겠지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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