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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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7 제임스 설터
 개인 셀러에게 제임스 설터, 존 치버, 가즈오 이시구로, 필립 로스 중고책 네 권을 주문했다. 마지막 책은 이미 팔렸다고 해서 환불 받고 나중에 알라딘 중고로 다시 샀다. 도착한 책과 함께 멋부린 손글씨로 쓴 편지가 있었다. 부모님 집에 퇴비를 주고 제주도에 돌아왔다며 고른 책 모두 의미 있게 읽힌다는 본 적 없는(아마도 나이 지긋한 아저씨) 셀러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받는 것은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설터가 마흔 초반에 쓴 이 책은 프랑스를 여행하는 미국인 화자(아마도 삼십 대 즈음, 이혼녀를 짝사랑하고 사진을 찍는)의 눈과 입을 빌어 그린 미국인 주인공 필립 딘(이십 대의, 대학을 중퇴한 잘 생긴 부잣집 아들)과 프랑스 여인 안마리(십 대 후반의 예쁘지만 계급이 드러나 가끔 필립 딘이 부끄러워하는..)의 연애담이다. 제목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코란에 나오는 구절”현세의 삶이란 한낱 스포츠와 여가일 뿐임을 기억하라”와 관련 있다고 한다. 
화자는 딘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지만 딘에게 들었거나 상상했을 법한, 혹은 그 이상의 전지적 시점으로 딘과 안마리의 밤과 낮을 그려낸다. 거기에 있던 것처럼, 거기에서 사진이나 영상이라도 찍어둔 것처럼 섬세하게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들, 그들의 동작, 그들의 기분과 심리, 사소한 대화, 창 밖의 풍경, 들른 곳들, 차로 지난 곳들을 묘사한다. 
등장하는 여인들의 세부 묘사가 그녀들의 액세서리, 몸매, 복장, 피부, 말투 등 디테일 일부를 취하면서 그럴 듯하게 나타나 있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모인 테이블, 식사 장면, 파티, 바 등의 광경을 잘 그리는 것 같다. (호우 좀 놀아본 놈인가.) 
여태까지 본 책 중에 섹스 장면이 제일 많이 나왔다. 그것도 단 한 커플을, 그들은 들라주를 타고 돌아다니고,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이나 그녀의 방에서 섹스를 한다. 아주아주 많이 한다. 읽으면서 기필코 다 보고 나면 몇 번이나 나오나 세어 봐야지 했다. 세어 보니 내가 놓친 것도 있겠지만 스무 번은 확실히 넘고 서른 번은 안 되는 것 같다. 제일 마음에 드는 묘사는 프랑게라는 마을에서 창 밖에는 어떤 대가족이 식사를 하고 창 밖의 시간 흐름으로 그들의 정사 시간을 표현한, 마치 식사 장소에서 섹스를 하듯 뒤섞이는 부분이다. 
잠시만, 안타깝게도 화자는 (적어도 이 책에서는) 한 번도 못 해 본다.(눈물 좀 닦고…)

프랑스는 가 본 적도 없고 프랑스어도 잘 몰라서 프랑스에 대해 잘 모르고 그닥 관심 없었는데 설터가 자신이 둘러 본 프랑스 지방 곳곳의 모습을 세세하게 그리려 애쓴 덕에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글로 본 것을 상상하는 것은 당연히 불완전하겠지만 어쨌거나 어떤 분위기와 풍경이 그려질 수 있도록 시각 묘사를 치밀하게 해 놓았다. 
그렇게 세세하고 치밀하고 정교하게 적어두지 않는다면 사라질 어떤 것들, 반짝이고 아름답고 그 순간에는 가슴 속에 어떤 강렬한 느낌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사라지고 그 느낌을 받은 사람이 사라지면 역시 함께 소멸될 어떤 것들을 소설로 엮고 책으로 낸 덕에 이 책을 쓴 설터가 죽었어도 내가 여기서 그런 비슷한 느낌들을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 들라주라는 예쁜 차를 타고 달리는 이십 대의 젊은 남녀, 그들의 섹스, 그들이 거쳐간 식당과 호텔과 마을들, 상점들... 예쁜 것들은, 즐거운 순간들은 지나고 나면 참 덧없고 가벼운데 그런 덧없고 가볍고 사소한 것들조차 남기는 것이 소설의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라고 소설이 있는 것이다. 

필립 딘은 그렇게 신나게 잘 놀고 여기 저기 돈 빌려서 빚잔치하고 안마리의 젊음을 취하다 미국으로 가 버린다. 그리고 복선처럼 나타났던 시트로엥의 사고처럼 그도 죽는다. 딘을 떠나게 만들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해서 안마리를 울리더니 마지막 몇 줄로 그래도 그녀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하고 퉁치는게 영 찝찝하고 부당해 보였다. 괴롭혀 놓고 그 말 한 마디로 보상이 되냐. 소설가 놈 넌 왜 그렇게 잔인하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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