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181221 이승원
 택시 기사와 카카오 카풀의 이해 관계 대립이 한창이다. 고통스러운 불길에 몸을 사를 만큼 생계를 넘어 생존의 위협을 호소하는 택시 기사들은 새로운 기술과 그것이 가능하게 한 새로운 서비스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두려운 미래를 미루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미래에 대한 책들을 읽거나 연수를 받으러 가면 4차 산업혁명, 인공 지능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금 있는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반복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굳이 인공 지능까지 언급 안 하더라도 사회 변화와 함께 무수히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생겨났다. (당장 몇 년 전만 해도 유튜버란 직업은 이름 조차 없었으니. 한 때 애들이 선망하던 프로게이머란 직업은 또 금세 시들해 졌으니.)

사람 대하기 어려워하는 내게 인터넷은 거의 혁명이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 인터넷 숍에서 음반 시디를 주문했다. Suede의 ‘Coming up’과 Oasis의 ‘Morning Glory’였다. 그 다음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샀다. 동네 서점보다 저렴했고 발품 팔 필요도 없이 집까지 책을 가져다 주니 그렇게나 좋았다. 그 땐 몰랐다. 내 소비 패턴의 변화가 결국 동네 음반점을 문 닫게 하고 서점들을 망하게 할 줄은.

가스검침을 위해 매월 문 앞 스티커에 계량기의 숫자를 적어야 한다. 어느 날 ‘스마트앱 설치하고 자가검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매월 특정 기간에 알림이 뜨면 앱을 열고 계량기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찰칵-찍는다. 앱은 사진 속 숫자를 인식해 사용량을 입력하고 곧바로 예상 요금까지 알려준다. 편했다. 문 앞 스티커에 ‘앱 자가 검침 이용중’이라고 네임펜으로 적어 놓고 더 이상 기록하지 않는다.
검침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문자 메시지로 검침 숫자를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앱 자가검침 이용중입니다.’하고 답신을 보냈다. 얼마 뒤 답신이 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딸이 일괄로 보내다보니 실수를 하였습니다.’
순간 어딘가가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검침 숫자를 적어가는 것은 기계가 아닌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딸이 있고 실수도 하는 사람이었다. 나처럼 앱 자가 검침을 하는 사람들이 늘다보면, 언젠가는 직업을 잃고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었다. 인터넷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과 신발을 사고 키오스크에서 햄버거를 주문하고, 그러면서 마음 편하게 여기는 사이 내가 없앤 일자리의 수와 직업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돌고 돌아 그것이 내 차례가 되는 날은 또 언제일까. 
“죄송하다고 하지 마세요. 당신 일자리를 위협하는 사람한테 죄송할게 뭐 있어요. 그런데 전 사람을 직접 대하는게 무섭고 현관 밖을 나가는 것조차 무서워요. 이런 나라서 정말 죄송해요.”
보낼 수 없는 답신 메시지를 마음 속에서만 쓰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라는 추상적인 명칭으로 뭉뚱그려진 것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만 보았다. 그렇지만 이 책은 저자가 열심히 뒤진 사료-주로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배 시절의 신문, 잡지-를 통해 그 시대 그 이름의 직업 아래 살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딱히 대접 받지도 벌이가 시원치도 않았던 직업이 그나마 사라져 가며 삶을 위협 받았을 사람들의 목소리.
한참을 먹고 살던 일을 그 일이 사라진다고 금세 작파하고 다른 직업인으로 거듭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런 적응 능력을 갖도록 우리는 길러지지도 않았다. 
교육에서 역량 이란 말을 강조하는 최근이다. 평생 학교에만 갇혀 한 우물만 파던 교사들이 변화에 적응하는 역량을 기르기란, 아니 그것에 관심을 가지기란 장님 코끼리 만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아마 이런 무용함이 커지면 언젠가 교사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까. 오랜 화두이면서도 현재의 최고 화두인 것도 같다. 정확히 하면 ‘무엇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소개된 직업과 특이점, 사라진 이유 정리.
1. 소리의 네트워커, 전화교환수
-특이점: 어린 여성 대상 모집(친절을 이유로). 느리게 연결한다고 온갖 욕 먹고 성희롱에도 시달림. 오늘날 전화상담원과 비슷. 
-사라진 이유: 기술 발전으로 자동 전화 연결 가능해짐. 114안내원도 뭔가 비슷하게 등장했다 사라짐. 
2. 모던 엔터테이너, 변사
-특이점: 한 때는 슈퍼스타, 오늘 날 연예인 같은 존재. 무려 변사 시험도 있었음.(변사들이 상영 도중 일제에 대한 반발심을 일으키고 선동할 것을 우려해 거의 사상 검증 수준의 문제가 등장하기도..)
-사라진 이유: 기술 발전으로 유성 영화 등장. 변사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외화를 엉뚱하게 해설해 불신을 삼. 신기하게도 영화는 아직 살아 있다. 
3. 문화계의 이슈 메이커, 기생
-특이점: 일,이,삼패로 나뉘어 기생도 급이 있었다. 모두가 성매매 특화는 아니었다. 그러다 천대 받기는 마찬가지. 기생 조합도 있었다. 국가가 기생을 관리하는 독특함(변사또가 기생점고 한 것도 사실 나름 행정 업무)에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적 환상을 부추기기도. 
-사라진 이유: 신분제 철폐, 공창제 폐지. 기생에 대한 편견과 일반인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예능인이나 전통 예술 전수자가 될 기회를 얻지 못함. 
4. 이야기의 메신저, 전기수
-특이점: 이승우의 ‘전기수 이야기’ 라는 소설 제목만 듣고 안 읽어 봤는데 이야기 책 읽어주는 사람이 직업으로 있었다는것이 신기함. 쿠바에는 아직도 lector라는 전기수가 있음. 공장 노동자들에게 소설 뿐 아니라 사회과학 개론서 읽어주며 의식화?깨인 노동자를 만드는 역할. 우리나라는 주로 엔터테이너 역할이었음. 
낭독과 공동 독서의 독특함과 함께한 직업. 묵독과 혼자 하는 독서가 생각보다 긴 역사가 아니란 것이 의외였다.
-사라진 이유: 책에서 밝힌 건 아니고 내생각에는-근대교육과 함께 문맹도 거의 사라짐. 라디오, 텔레비전 보급으로 직접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재미거리가 많아짐.
5. 트랜스 마더, 유모
-특이점: 근대 초기에 지면 상에서 지식인들이 의외로 친모에 의한 모유수유를 강조했다. (사실 제대로 만든 분유 보편화 전이라 대안은 유모, 곡식 미음 같은 것 밖에 없었으니.) 그런데 저자는 이를 건강한 국민을 길러내기 위해 모성을 강요하고 여성의 역할을 이에 한정짓는 점을 지적한다. 갑툭튀 페미니즘 프레임(수긍할 만한 지적이긴 하지만). 수유부로 인한 아동의 수직 감염은 많이 들어 봤지만 사례에선 기생인 매독 환자 엄마에게 감염된 매독 환자 아기가 유모에게 젖 먹는 중 매독을 옮겨 상해죄 성립 여부가 쟁점이 된 독특한 사례는 여기서 처음 듣는다. 
나름 친엄마 젖 먹을 형편이 안 되면 유모의 모유 수유도 괜찮은 대안 같은데 유모가 돈 벌기 위해 남의 아기 먹이느라 자기 아기 굶어 죽인 사연 같은 호러블도 있으니...젖이라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란...눈물 뚝뚝
-사라진 이유: 유모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난(친모 젖이 짱이고 돈 받고 파는 젖은 나쁜 젖, 건강에도 심리적으로도 등등…)책에서는 말 안 하지만 사실 제일 큰 이유는-모유를 대체할 만한 양질의 분유 등장. 굳이 사람 안 구해도 돈만 있으면 엄마가 분유 타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음. 소가 아기들을 구했네.
6. 바닥 민심의 바로미터, 인력거꾼
-특이점: 인력거는 도입 초기에는 의외로 고급진 (오늘날 외제차 같은)이동 수단이었음. 불쌍한 김첨지(와 그의 아내)…인력거꾼들이 인력거삯 인하로 물가를 낮추겠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처우 개선 위한 파업도 함.
-사라진 이유: 자동차 등장. 택시 등장...그 택시도 이제는 인력거와 비슷한 걱정 중입니다. 
100만원(당시 물가로 100억 넘는 돈)이 있으면 시내 자동차 다 사다 부숴버리고 싶다는 인력꾼의 넋두리.
7. 러시아워의 스피드 메이커, 여차장
-특이점: 뻐스껄. 양장을 한 어린 그녀들을 향한 에로 서비스 운운 하는, 허영심 운운하는, 남성 중심적 대상화 시각(여기서도 갑툭튀 페미니즘). 별로 좋지 않은 노동 조건, 소매치기 위험, 삥땅친다는 의심과 잠재적 범죄자 취급으로 몸수색 하며 또 성범죄 노출...화난다. 으으.
-사라진 이유: 책에는 언급 안 됨. 삥땅 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여차장 이후엔 기사가 검표와 요금까지 책임지게 된 듯. 지금은 뭐 교통카드까지 도입된 마당이니...
8. 토털 헬스 케어? 물장수
-특이점: 물을 사고 파는게 의외로 봉이 김선달 마냥 허황된 것이 아니었음. 우물 등 물자리 사용권과 이를 사고 팔고 여기에 고용되어 물 지고 나르는 직업이 꽤 있었음. 수도회사가 광고하는 것이 공포 마케팅 이용하는게 (순량한 물 먹으라! 우물물 니 만병의 근원!!) 지금이나 비슷함. 위생에 대한 근대적 관점 도입과 급수의 문제. 
생각해 보니 나 어려서 20년 정도 살던 셋집이 상수도 안 들어오고 지하수를 펌프로 퍼 먹던 집이었다. 그 펌프 옆에는 옆 집이 쓰던 재래식 화장실이 바로 붙어 있었다. 그냥 그게 생각난다. 우물물 먹고 자랐네 나...
-사라진 이유: 근대식 상수도 보급.(강물 정수해서 보급하는 수도회사 등장)
9. 메디컬 트릭스터, 약장수
-특이점: 가짜 만병통치약 파는 약장수 부터 일반의약품에 가까운 매약 판매 장수까지. 오늘 날 떳다방과 연관. 그런데 근대 의료체계와 국가의 의약 관리에 대해 뭔가 부정적인 서술 느낌. 한의학을 무당과 동급으로 규제했다는 것에서도 문제 제기를 하는데 오히려 예시로 든 한의학 치료 중 급사한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 엄격한 관리하게 된 것이 긍정적인 것 같음. 
제약 회사에서 허위 과장 광고 하고 약 권하는 사회가 된 점을 지적한 점은 좋음. (이제는 약으로는 못하고 건강기능식품으로 비슷한 명맥 유지중인….)
-사라진 이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엉터리 약, 과대 허위 과장 광고, 오남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관리. 

세세하게 우리가 살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관련된 소설(예:더 리더와 전기수)이나 좋은 글들, 현대의 직업이나 사회의 모습과 연관짓는 점이 좋았다. 그런 연관들이 크게 갸우뚱하지 않고 나름 설득력있게 와 닿았다. 무엇보다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앞 부분 보다는 뒷 부분이 더 잘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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