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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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0 손보미

손보미의 소설 중 처음 본 것은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오빠에게 에 실린 이방인 이다. 시간도 장소도 뭔가 현재와는 먼 듯한 낯설면서도 독특한 느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을 읽었는데 이것도 뭔가 외국 소설을 번역한 듯, 아니면 외국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면서도 재미있고 신선했다.
손보미의 첫 단편집 제목을 보니 애들 고모와 고모부가 생각났다. 고모부는 스윙댄서이자 강사이고 스윙바를 운영한다. 나는 춤에는 문외한이고 지독한 몸치이지만 그덕에 스윙댄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게 되었다. 고모도 한 때는 스윙댄스 강사도 하고 대회에서 상도 탈 만큼 춤을 잘 추는 것 같다. 린디합도 스윙댄스의 일종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 실린 소설은 린디합에 대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영화, 사랑, 진실에 대한 궁금증 등등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소설들은 역시나 외국 소설을 번역한 듯한 느낌이 강했다. 제임스 설터도 생각나고 가츠오 이시구로도 생각나고.(영어권 소설이라곤 본게 얼마 없으니 뭐 그냥 본 것들 중에 그런게 떠올랐을 것이다.) 묘한 접점과 겹침, 소설이 겹치고 영화가 겹치고 인물 이름이 겹치고 그러면서도 사실은 서로 전혀 다른 세상이다. 손보미가 만든 세상. 소설이란 무엇일까. 소설가가 만든 세상, 가능성, 허구, 그런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슷한 문체나 구성인데 이상하게 매력적이고 빠져들게 되었다. (호불호도 갈릴 것 같다. 아마 번역체의 외국 소설 흉내에 이게 뭐야 하고 반감이 먼저 들었다면 계속 비슷한 패턴에 미처 다 못 보고 덮었을 수도 있겠다.)

담요-밴드 공연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 경찰의 이야기를 ‘난 리즈도 떠날거야’(애드벌룬의 번역가가 이 소설을 번역하는 접점)라는 소설로 썼다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은 뒤에야 울게 된 소설가. 늘 지니던 아들을 덮었던 담요를 밖에서 방황하는 커플에게 건넨 아버지 장. 이 소설은 끝의 소설 애드벌룬에서 다른 가능성으로 다시 등장한다.
폭우-소설에서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소설이다. 가난한데다 불행한 사고로 실명한 남편과 그의 아내, 아내가 듣던 교양 강좌의 강사, 잡지에서 본 가사와 비슷한 노래, 아들을 데려오겠다고 고집 피우며 남편에게 화가 난 아내. 두 부부의 이야기가 관계가 없는 듯 교차되다 만나고 결말은 그들과 먼 세상 사람 같은 고메 식당의 솔로 아저씨의 안도로 맺는다. 특이하다.
침묵-읽고 있으면 왠지 여자와 남자가 외국 사람일 것 같은 기분. 금주 모임에 봉사 나갔다가 결국 금주하지 못한 남자와 결혼한 여자. 포르노 번역가. 밤새 술마시고 딴짓하다 돌아온 남자. 왠지 자포자기.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코트 입은 남자. 신체 변형에 대한 이야기. 뭔가 꿈 꾼 것 같은 소설.
그들에게 린디합을-댄스, 댄스, 댄스 라는 영화와 죽은 길감독과 그들에게 린디합 이란 영화와 문감독과 허배우. 해외 다큐멘터리 보는 것도 같고 페이크 다큐 같기도 하고. 온갖 가상의 잡지와 가상의 인터뷰와 가상의 기사와 가상의 영화로 이야기를 끌어내는데 왠지 진짜 이런 일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과학자의 사랑이나 디어 랄프 로렌도 이것과 아주 비슷한 스타일의 소설이다.
여자들의 세상-바이올린 연주자 아내와 그 아내를 사랑한다면서 세상의 타락을 한탄하면서 사실은 고루한 자신의 욕망을 남탓으로 돌리는 남자 이야기
육 인용 식탁-집에서 제일 좋은 식탁으 둘러싸고 아내가 나를 개자식이라 부르며 내가 기억하지 못한 부정을 지인 모임에서 까발린다.
달콤한 잠-팽 이야기-팽과 진호와 수지와 윌리엄. 그 안에 액자 같은 안나와 랠프 이야기.
과학자의 사랑-굴드와 비비안과 에밀리. 오해와 사랑. 이것도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디어 랄프 로렌하고도 비슷. 폭우에 나온 노래가삿말 같은 편지의 마지막 문구.
애드벌룬-정작 애드벌룬은 안 나오는데. 유에프오? 그 날 아들이 죽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꿈 속일까. 다른 소설과 연결고리 있는 것을 빼면 이 소설 자체의 임팩트는 잘.

자기 색 뚜렷하고 문장과 구성에서 자기 만의 무언가를 만들려 애쓰는 작가. 뭔가 태연하게 재미있는 거짓말 하는 새초롬함의 매력.익숙한데 낯설고 우리 나라도 다른 나라도 아닌 손보미 나라. 다음 소설집도 궁금해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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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10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로 제가 말씀하신 호불호에 당해 3년 전에 이 책을 집어던지며 도대체 왜 손보미가 이렇게 고평가를 받는단 말인가, 나의 안목은 왜 이렇단 말인가, 이러면서 고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님의 리뷰를 읽고 나니, 이제 다시 한 번 손보미에 도전해 내 안목 검정시험을 치를 때가 되었구나 싶네요.

반유행열반인 2018-12-1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향은 다양하고 읽을 좋은 책 많은데 굳이 스스로를 괴롭히진 마셔요ㅎㅎ 얜 일부러 이렇게 썼다.를 의식하며 보면 어느 순간 이거 봐라? 이러고 재미있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