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의 책 중 가장 술술 읽어내려간 책이 아닌가 싶다.
밀란 쿤데라 특유의 철학적 분위기와 이중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글이었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불멸"보단 훨씬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근간 읽은 책중 레이몬드 카버이후로 젤 잼있는 책이였다고 할 수 있다. (흐뭇^-^)
네살 연상의 여자와 한 남자와의 정체성찾기 숨바꼭질이라고나 할까?
이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책의 거의 대부분이 이들 대화내용과 심리적인 부분을 기술하고 있다.
여자가 문득 내뱉은 “남자들, 그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라는 이 말로 인해 둘 사인 걷잡을 수 없는 미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
# 책 엿보기 -- 과연 어떤 사랑도 침묵에 배겨날 순 없을까?
이들이 말없이 식사만 하고 있는 옆테이블의 노부부를 보며 나누는
대화.
<그날 저녁 그녀는 장-마르크와 함께 레스토랑에 갔다. 옆자리에 앉은 부부는
끝없는 침묵 속에 침잠해 있었다.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침묵을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은 시선을 어디에 놓아야만 할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눈만을 바라본다면 우스워 보일 것이다. 천장만 본다면?
그것은 침묵 시위처럼 보일 것이다. 옆 테이블을 구경한다?
그러면 그들의 침묵을 재미 삼아 구경하는 시선과 부딪힐 공산이 크고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경우이다.
쟝-마르크가 샹탈에게 말했다.
“두사람이 서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야.
사랑이 무관심으로 바뀐 것도 아닐거야. 두 인간이 나눈 말의 양에 따라
그들의 애정을 저울질 할 수는 없어.
단지 저들 머리가 텅 비어 있을 뿐이야. 아무 할 말도 없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상 말하기를 거부하는 걸 거야.’
(생략 : 수다가 많은 친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 담은 권태에 관해
한참을 이야기한다)
“당신을 알고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 내 하찮은 일이 예전보다 흥미로워진 것은 아니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우리 대화이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쟎아요?”
“세상에서 외따로 떨어져 사랑하는 두 존재, 그건 아주 아름답지.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아무리 경멸할 만한 것일지라도 그들에겐 이 세계가 필요해.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침묵할 수도 있을 텐데요”
“옆자리에 앉은 저 두 사람처럼?”하고 장-마르크가 웃었다.
“아니야, 어떤 사랑도 침묵에 배겨날 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