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천사 이야기
김재신 지음 / 비아토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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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천사이야기 #김재신지음 #비아토르

푸르른 나무와 벤치에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여인인지 남자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그림의 종류중에 하나이다. 어떠한 멋드러진 배경에 사람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그림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고 그 자체로도 힐링이다.

저자는 장애인시설에서 일하며 있었던 이야기와 뜻밖의 천사의 도움의 손길, 그리고 저자의 영적체험이라고 해야겠다. 첨에는 간증에세이쯤으로 봤는데 넘기면 넘길수록 지혜롭게 대처하는 저자의 판단력과 도움의 손길로 어려움을 잘 이겨내니 사람마다 주어지는 능력은 다르리라 생각했다. 장애인 정식시설로 허가받기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시기적절하게 주시는 도움의 손길에 놀라고 또 놀란다. 그럴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며 도움을 주고 계시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돈이 많이드는 합병정화조공사도 큰 틀은 공사를 진행하는 곳에서, 나머지 일부는 일반인도 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어떻게 해야할지 전전긍긍하는 시기에 군인들의 도움으로 잘마칠 수 있는 일부터, 믿음으로부터 오는 감사하고 고마운 도움의 손길에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새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중증장애가 있는 분홍자매의 이야기였다. 집이 너무 가고싶던 자매의 소원을 들어주며, 저자의 판단에 박수를 보냈다. 중간중간 체크하며 여러일을 경험하게 하며 집으로 돌려보내며 가족과의 상봉을 이뤄주는 이야기도 좋았다. 가족이 아닌 남이지만 장애인시설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속에 천사에겐 천사가 돕는다는 것을 느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천사주위에는천사가있다 #보면서마음이따뜻해짐 #표지자체가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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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 하나님 나라의 성례
알렉산더 슈메만 지음, 김아윤.주종훈 옮김 / 터치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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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알렉산더슈메만지음 #터치북스

교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성례를 무시하고 생략하며, 간과하는 요즘의 세태를 꼬집어 성찬의 의미를 알려준다. 어려운 듯하지만 저자의 경험에 의해서 쓰여졌고, 한번읽기에는 내용이 풍부하고 생각할 꺼리를 주기때문에 두번이상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코 쉬운 주제는 아니지만 꼭 읽어봤으면 한다.

저자의 다각도로 분석한 글에서는 성례의 중요성을 조명하고 있다. 차례를 보면 성회, 하나님나라, 입당, 말씀....등등 12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무엇하나 소홀할 수 없는 주제는 없다. 넓게 보여지는 성찬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전달한다.
<<성찬>>은 본문을 최대한 손대지 않았으며 필요한 곳에는 약간의 설명을 보탰다고 한다. 저자의 경험이 서려있고 독립된 내용을 묶은 성찰로 이루어진 책이다.

다 중요한 주제이지만 눈에 들어왔던 주제는 연합의 성례이다. 현재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자주봐오며 연락한 친구나 지인, 교회의 식구와의 거리감은 상당히 멀다. 코로나 전에는 혹시나 데면데면 얼굴을 못익힌 성도가 있을세라 예배시작하면서 성도끼리 "사랑합니다"라는 쑥쓰러운 인사를 하며 아이컨택을 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며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미비하기도 한 듯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참 좋은 인사법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안에 사랑이 있는 존재로 한번 더 확인시켜주는 간단하지만 깊이있는 인사라고 생각했다. "사랑합니다"는 기독교적인 사랑의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P.217 기독교는 사랑의 계명일 뿐 아니라 사랑의 계시와 선물이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이 계명보다 먼저 우리에게 사랑이 계시되고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임되었다.

P.218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것은 '교회'안에 거한다는 뜻이고, 또 그 안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인류에게 알려지고 수여된 그리스도의 삶이고,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고 그의 사랑안에 거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의 삶의 근원이자 내용이며 목표이다.

교회의 본질에 대해, 교회안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지 다시금 새겨본다. 교회됨을 이루는 것이고, 교회는 믿음의 연합으로 사랑을 이루는 공동체이다. 교회안의 만남은 하나님의 연합의 회복이며 연합은 본질이나 핵심이다. 교회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룩한 교회됨을 이루어보자.

#이해되는듯안되는듯 #성찬의부흥이교회의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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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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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나의푸른영혼 #알랭제르보지음 #정진국옮김 #파람북 #세계일주단독항해기

항해, 세계일주, 여행이라 참 들으면 벅차고 또 좋을 것 같다. 알랭 제르보는 1892년 건초한 초소형 요트로 세계일주 단독항해를 성공해 낸 인물이다. 유럽인 중 최초로 지구바다 한바퀴를 일주하며 단독항해를 해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사진으로 알랭 제르보의 세계일주를 사진으로도 보여준다는 점으로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고, 남태평양의 섬을 사랑한 마음이 한껏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 문학작품이다.

좋은것은 사진도 함께 있어서 좋았다. 섬마다의 분위기와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대략 이야기하자면 마누아섬의 원주민의 대부분은 산호를 삶아 우려내어 염색을 희게 했다. 알랭은 섬곳곳을 사랑하고 살피고 원주민을 존중하였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원주민의 도움도 받고, 지나가는 통보함 '카시오페호'를 우연치 않게 만나서 극적으로 요트를 고치는 등, 여러가지 사건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당당함과 친화력과 그의 젊음이 서려있는 항해기라고 보았다.

섬 특유의 분위기와 순수한 섬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어 행복한 여정으로 보았다. 중간중간 거쳐갔던 여정에 섬사람들은 살아있는 공기이며 알랭은 바람이었다. 주민들의 환대와 또다른이별을 통해 삶을 배웠다. 바다는 여전히 알랭을 부르고, 알랭은 다시 바다로 나가 항해를 끝내고, 마쳐야 했다. 중간중간 배를 수리하는 것도 주기적으로 하야하는 듯 했다. 알랭은 바다를 사랑했고, 섬을 잊지못하였고, 원주민의 순수함을 사랑했다.

몇년전에 나도 티비로 충남 당진 왜목마을에서, 왜목항에서 알랭과는 다르지만 국내최초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를 210일간 세계일주를 성공한 방송을 본 기억이 있다. 입고 먹는 것도 다 그 안에서 알아서 조달해야 하고, 바다의 칠흙같은 밤을 혼자 장장 몇달을 지내면서 바다와 맞서 싸우고, 낚시로 고기도 혼자잡으며 무슨 생각으로 저 망망대해를 보낼까 호기심이 많았다. 세계일주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적도를 2회이상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일주는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의 로망이며, 거기에다가 단독항해라니, 바다를 사랑하고, 항해를 사랑한 알랭 제르보의 작은 돛배로의 여행은 즐거웠다.

#요트로세계일주 #세계일주단독항해 #푸르른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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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소 싱크대 앞
정신실 지음 / 죠이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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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성소싱크대앞 #정신실지음 #죠이북스

표지를 보며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주방에서 시작되고 주방에서 끝나는 내 일상, 여기서 나의 하루를 보내는 곳이라 제목이 와 닿았다. 정말이지 주방은 집안의 위치에서도 정 가운데 센터를 맡고 있는 중요한 위치이다. 나도 내가 주방에서 모든것은 하고 있다보니 아이들도 내가 앉아있는 바로 옆켠이나 식탁바로밑에서 조잘조잘대던지, 작은 식탁앞에 아이들 좌식식탁도 비치를 해놔서 과일을 먹던지 그림을 그리던지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하기도 한다.

목사의 아내, 사모. 참 많은 일들을 감수하고 감내, 인내로써 묵묵히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을 보고 내가 느끼기엔 사모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보통의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모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자리라고 느끼기도 했다. 보통의 엄마는 가정만 돌보면 되지마는, 사모의 존재는 가정과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P.36 사모가 되기전에 인간이 되고 싶다. 사모가 되기전에 매주 예배에 거룩한 떨림으로 나가서 어떻게든 자아를 복종시켜드림으로 일주일을 참된 사람으로 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테다.

아이가 다 크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만 재우고 새벽예배를 떠나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두근거리고, 걱정되고, 떨릴까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왜냐면 어릴 때 대략 7세, 8세정도됐을때인데 아빠가 전파사를 하시고, 그 전파사안에 단칸방에 5식구가 살았다. 집이 너무 좁아서 그랬나. 아빠가 그 단칸방 바로 위에 다락방도 만들어주셨던 정말 아담했던 집이었다. 부모님은 밤에 집앞에 금은방주인내외와 모임약속을 하였고, 늦은시각에 만나기로 했으니 나를 빨리 재울요양으로 빠른시각 잠들었었다. 그러다가 새벽 4시쯤인가 아무튼 새벽녁에 눈을 떴는데 방안에는 칠흙같이 어둡고, 무서워서 울부짖어도 아무도 없었고, 불을 켜보니 없다. 가족이 없었다. 놀래서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와보니 유리문은 잠겨있고, 셔터는 굳게 닫혀있었는데 진짜 그 공포는 당해 본 사람만 아는 극한의 공포다. 그때 엄마가 전화번호부를 적은 기억이 있어서 전화번호부에 아빠친구분 성함을 보고 전화해서 오셔서 나를 꺼내준 기억이 아주 디테일하게 남아있다. 그 뒤로도 두번은 더 그랬었는데.. 그래서 아이두고 새벽기도를 간다는 글을 봤을 때 당한 경험자로써 진짜 생각하기도 싫다.

저자의 고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떠밀려서 가는 예배가 아니라,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길 바라며 "어떤 사람이 될테다"로 끝나는 고백속에 간절함과 고단함이 묻어있다. 새벽예배는 아이가 클때쯤 나가도 충분하지 않을까? 여건이 안되면 집에서만이라도 말이다.

P.49 도대체 양육이라는 것이 매끄럽게 되는 게 없다. 이럴때 나를 붙드는 것이 '존재로 양육하기'라는 한마디다. 몇가지 원칙이나 행위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그대로 아이들에게 양육의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와..엄마의 자체가 양육환경이라는 것에 공감백배이다. 공감가고 위트있는 저자의 글에 공감꾸욱, 무릎이 탁쳐졌다. 위에 글은 정말 새기면서 아이를 양육해야겠다.

#부엌은나의삶과인생 #감사히잘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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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4
알리나 브론스키 지음, 송소민 옮김 / 걷는사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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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모든여자는체르노보로간다 #알리나브론스키지음 #송소민옮김 #걷는사람

체르노빌 지역안에 있는 체르노보의 바바두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음의 흙빛도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나고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그런 죽음의 도시안에 다시 들어와서 삶의 터전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원전사고가 있는 마을에 정말 소수인원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외부에서 바바두냐를 촬영하기 위해 체르노보로 들어온 완전무장한 기자들이었다. 방사능 보호복으로 무장하고 그런 기자에게 바바두냐는 거리낌없이 편백나무 수액을 건네주는 모습에서 기자는 죽일려고 작정했냐는 듯이 손사래를 친다.

그곳에서 바바듀냐는 망자가 된 남편과 떠다니는 망자들을 보며 체르노빌의 어둠이 서려있는 죽음의 땅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수록 몸의 쇠해지지만 그 지역에 대한 알수없는 포근함을 느끼며, 마을 사람들을 돌보는 바바듀냐에게 알수없는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바바듀냐의 몸은 방사능에 너무 노출되어 몸 자체가 작은 원자로라고 한다. 방사능 물질이 뼛속까지 스며들고 침투하여 있기에 그 자체가 방사능인 것이다. 방사능 오염의 무서움을 군데군데 설명해주는데 기괴하면서 슬프면서 안타깝고 여러가지 기분이 느껴졌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무엇을 사려고 가려고 해도, 쉽지 않는 그곳에 낯선 남자가 건강한 어린 딸을 데리고 오면서 사건하나가 터진다. 그 사건으로 인해 바바듀냐와 마을사람들의 인생이 또 한번 바뀌게 된다. 표지에 띠지는 인터넷으로 보고 알았다. 에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였으나 너무 염두해보고 읽지는 않았다. 피복에 피해를 그대로 몸으로 받고있는 바바듀냐에 초점을 두고 보았다. 간접적으로 느꼈던 원전사고의 끔찍함, 마을에서 죽은 망자를 보는 바바듀냐를 보며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환경이 몽환적이며 그로테스크했다. 떠나는 땅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방사능 문제를 다시금 떠오르게 되는 소설이다.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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