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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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 같은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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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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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찌보면 통속적인 이야기라 한들 그게 삶의 본질인 것을... 드라마란 이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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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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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지만 경쾌하고 은근한 노랫자락에 얹어서 똑같이 쿨하다고 착각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쿨하지 못한 우리네 인생. 아무래도 사는 건 구차하고 남루하다. 인연은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이어졌고, 생의 흔적은 먹고 내버린 파리 껍질처럼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속에서 나는 한 마리 호랑거미처럼 발 디딜 자리를 찾는다. 그런데 이건 뭐야. 내가 살아가는 이 덥고 끈적끈적한 세상을 한없이 쿨하게 냉소하는 너희는 누구야. 나는 일본인이 썼는지 한국인이 썼는지 분간되지 않는 몇몇 쿨한 소설들에서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일말의 모욕감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뜨겁게. 여한 없이 뜨겁게. 어차피 한 번 왔다 가는 세상 뜨겁게.

- 작가의 말

 

  할아버지라는 인물은 원래 그러했다. 당신의 인생은 확실히 셀 수 없이 많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졌고 그중에는 불균형하거나 치명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그 많은 요소들을 모두 제압하여 하나로 뭉뚱그리는, 범속한 사람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강력한 압착의 능력이 있었다. 도무지 이음매라고는 없이 치밀하게 하나가 되어 있어서, 어느 쪽으로 바라보아도 내가 끼어들 틈새라고는 애초에 찾을 길이 없었다.

- p. 15

 

 

  소진이 다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봐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 합격하면서 우리의 사랑은 끝났다. 그녀가 나와 사랑을 하면서 수능 준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하긴, 무단히 그녀의 방을 드나들면서 책꽂이 한번 훑어보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었다. 나는 수업 시간 이후 그녀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소진은 여전히 사랑한다고 했고 함께 서울로 떠나자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단 며칠도 고민하지 않고 입대를 택했고, 그녀가 떠나기 전에 먼저 학교를 떠났다.

- p. 52

 

 

  생모와 헤어진 후 흘러간 20여 년의 세월이 갑자기 내 목을 졸랐다. 나는 끝없이 허물어지는 개미귀신의 구덩이에 빠진 여섯 다리 곤충이었다. 서안 조씨 가문 양정공파 17대 종손 조상룡이란 이름과 종손에게 부과되는 많은 임무와 결코 가져서는 안 될 소망들이 깔깔한 모래알처럼 나의 숨구멍 속으로 쏟아져 들었다. 나는 생시에나 몽매간에나 하염없이 몸부림쳤다.

- p. 113

 

 

  내 인생이 그동안 나를 우습게 보고 그토록 어지러이 휘둘러 댄 것은 순전히 나의 물리적인 무게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인생이 왜 이렇게 한 조각도 내 뜻대로는 되어 가지 않는지, 나는 단지 그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계속 울었다.

- p. 167~168

 

 

  「니 각시는 이삔하고 고와야제…… 내매이로 널찐 메주띠이 같은 기…… 몬생기기만 했나 어데…… 다리빙시에다 부엌디기에다…… 얼라도 못 놓을 기라 아이가…… 내는 암 때도 시집 못 갈 몸이이까네 맹 니가 맘대로 해도 괘핞다.」

  「삼복에 얼어 디질 소리 언가이 주낀다. 고마 치아라.」

- p. 171

 

심윤경, <달의 제단>

 

 

  종가와 종손의 삶이라니. 생각해본 적 없는, 어쩌면 조금은 동떨어진 소재가 아닌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그저 여유있는 궁금증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단숨에 읽었다. 어느 단단한 고치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읽고 난 후 맑은 하늘이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 서서히 가라앉더니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룡의 이야기가 나를 똑같이 끌어내리고 있었다. 소름돋을 만큼 정확한 문장이나 묘사가 아니라도 분위기에 맞는 자연스러운 문장과 개성적인 인물, 그들의 어투만으로 이야기는 온전히 완성된다. 드라마란 이런 것이구나! 통속적인 남녀 관계라고 한들 그게 관계의 본질인 것을. 매끄러운 호흡과 적당한 깊이를 넘나들며 근원적인 갈등이 힘 있게 서사를 이끈다.

 

  '언찰'이라는 소설적 장치는 주 서사에 양감을 만듦과 동시에 스토리를 이끄는 역할까지 했다. 소설 소재에 맞게 고풍스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뒤로 가면 그 자체만으로 옛글이 가진 고유의 매력을 느끼게끔 했다.  

 

  처음 심윤경 작가에 대해서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소설 <사랑이 채우다>를 낭독하는 것을 듣고 관심을 가졌다. 이 작가 글은 꼭 읽어봐야겠구나, 하고 기억해둘 만큼 그녀가 쓴 문장들은 충격이었다. 단순히 '잘 쓴다'를 넘어서는 금세 훅하고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선 초기작품부터 읽어보잔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이번엔 문장보다 장편소설로서 많은 걸 느꼈다.

 

  잘 쓴 소설에서 무언갈 배운다는 것이 오히려 좀 어렵다. 매끈하게 쌓아올린 탑을 보면서 '정말 잘 쌓았네' 감탄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만 그걸 찬찬히 바라보면서 어디서 시작했을까, 어떻게 한 거지, 혼자 질문하다 보면 그만 진이 빠질 때가 있다. 바로 재능에 대한 감탄이 일 때다.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고. 이번이 그렇다. 이걸 쓰기까지 작가가 쌓아올렸을 내공에, 이 소설 밑에 자리하고 있을 고증과 노력에 한 번 더 배워간다.

 

 

※ 유일한 단점은 책 표지. 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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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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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라는 꿈을 꾸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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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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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 p. 15 (처음)

 

 

  나는 밖으로 나가 부드러운 황혼에 휩싸인 동쪽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고 싶었지만, 나가려고 할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밧줄처럼 내 발목을 잡아당겨 의자에 앉아 버리곤 했다. 그런데도 도시의 하늘 위로 줄지어 있는 노란 창문들은 조금씩 어둠이 깔리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보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비밀을 속삭여 주고 있음에 틀림없었으리라. 나 또한 위쪽을 올려다보며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만화경(萬華鏡)처럼 변화무쌍한 삶에 매혹당하기도 하고 혐오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나는 집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집 밖에도 있는 기분이었다.

- p. 60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폭풍우가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밤에 잠을 잘 때면 너무나 기괴하고 환상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시계가 세면대 위에서 째깍거리고 촉촉한 달빛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을 적시는 동안,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우주가 그의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피어났다. 매일 밤 그는 졸음이 몰려와 생생한 장면을 막각의 포옹으로 감쌀 때까지 새로운 환상을 계속 늘려 나갔다. 얼마 동안 이런 환상은 그의 상상력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현실이 꿈처럼 비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충분한 암시요, 이 세상의 주춧돌이 요정의 날개 위에도 안전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 p. 144

 

 

  "나 같으면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과거는 반복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불쑥 말했다.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말고요!"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마치 과거가 바로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자기 집 앞 그늘진 구석에 숨어 있기라도 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난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p. 159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뉴욕 외곽의 웨스트에그로 이사오면서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려 하는 닉은 그곳에서 개츠비라는 사람을 만난다. 매일 밤 호화파티를 벌이는 이웃 저택의 개츠비에 대해서는 온갖 루머가 무성하지만 굉장한 부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곧 그와 친구가 된 닉의 시선으로 주변 인물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관찰자 시점을 택한 것이 딱이다. 주인공은 닉이지만 그는 개츠비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톰과 데이지 그리고 잠깐 연애를 하기도 하는 조던 베이커가 대표하는 상류층의 모습과 당시의 미국 사회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방법이 아니었다면 개츠비를 이만큼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개츠비에게 맞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작가가 바라보는 개츠비는 무엇인지. 다른 작중인물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사람은 아닌지. 무언가에 홀려 공허하고 허황된 세계를 꿈꾸는 인물은 아닌지.

 

  다른 사람들이 화려한 불빛에 달려드는 부나비같은 삶을 산다면 개츠비는 어슴프레한 초록빛을 손에 쥐려 하는 사람이었다. 밝게 빛나는 밤하늘이 어떤 비밀을 품고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손을 뻗어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였다. 두 발을 딛고 선 현실의 소란함과 질펀함마저 고귀한 목적으로 귀결시킬 줄 아는 인물이었다. 흥청망청 벌이는 매일 밤의 파티마저도 자신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으니. 특별한 낭만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그런 개츠비를 알맹이 없이 빈껍데기 삶을 사는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보인다. 

 

  작가는 인물 간의 갈등으로만 진행될 것 같던 흐름을 한 사건을 통해 개츠비의 파국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틀어놓는다. 자동차 사고는 미묘한 관계 · 불륜과 애정 · 이상과 현실의 대립 따위가 '뻥'하고 터지는 순간이다.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처럼 그러나 운명대로 흘러간다. 그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구성한 점도 인상적이다.

 

  개츠비라는 인물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이루고 또다시 멀리 반짝이는 사랑을 꿈꾸는 모습이. '위대한' 이라는 표현은 고작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쓰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결말도 절망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열망하는 것은 언젠가 손에 쥘 수 있다. 그것이 불완전하거나 미완성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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