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1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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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본절판


바스티안은 책 속의 환상세계에서 많은 모험을 한다.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들... 즐겁고 신나고 때론 무섭고... 때론 의기양양하고 때론 좌절하기도 하면서 그 모험들을 헤쳐나간다. '끝없는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안의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며 그 책 안에는 또 다른 '내'가 모험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신나고 색다른 경험인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바스티안이다. 바스티안이 내면 속에서 부딪혀 나가는 좌절과 장벽들을 나 역시 어린 시절에 겪었으며 성인이 된 지금도 시시때때로 겪고 있다. 엔데는 오만하고 때론 형편없이 허약한 우리의 정신과 감정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잠언'들을 들려준다.

절대 '동화'가 아니다. '어린왕자'에 비견할만한 철학과 깊이를 가진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그 복잡성으로 인해 심플함을 강조하고 즉자적인 것을 선호하며 가벼운 읽을거리를 원하는 우리들에게 깊이에의 성찰을 동화의 형식을 빌어 보여준다. 해리포터? 이 책에 비하면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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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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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허영만의 만화 에세이에서 본 것 같다. 아빠는 낚시를 하고 있고 아이는 물가에서 놀고 있으며 엄마는 조금 떨어진 집에 있다. 잠시 후 아이는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게 되고 아빠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린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내가 들어가서 둘 다 빠져 죽는 것보다는 수영 국가 대표였던 애 엄마를 데려오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한 아빠는 뛰어가서 엄마를 불러온다. 물가까지 다달은 엄마는 재빨리 뛰어들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버렸다. 놀라운 것은 엄마의 허리 밖에 차지 않는 수심이었다...'사랑은 실천이다'라고 만화는 결론 내린다.

사실 신변잡기적인 내용의 소설은 잘 안보는 취향이지만 우연히 친구가 빌려준 가시고기를 읽으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읽어가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를 고치기 위해 능력없는 아빠가 보여주는 극적인 사랑은 한편으로 보면 비현실적으로까지 비쳐진다. 하지만 작가는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아빠와 아이의 관점을 오가면서 둘 사이의 감정의 교감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가시고기... 엄마 고기는 알만 낳고 도망가 버린다. 아빠 고기만 홀로 남아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오로지 자식들이 부화하기만을 기다린다.때로 미지의 적들이 다가오면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워가면서... 알들이 부화하면 돌 틈에 머릴를 박고 죽는다. 그러면 새끼 고기들은 아빠의 시체를 뜯어먹는다고 한다.

아직 결혼이 이른 나이기에 부성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은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사랑은 헌신이며 희생이다. 때로는 융통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가시고기 아빠처럼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그 거리감 때문에 서글프다... 나라면...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지독한 자기애에 빠져서 조금이라도 잘나 보이려고 아둥바둥 거리면서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나의 가슴 저 깊은 한 구석에 사랑이 숨어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랑을 끄집어 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의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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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 신원문화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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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인내였다. 혼돈의 시절, 절망과 고독을 사치스럽게 탐닉하던 그 때에 카프카를 알게 되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이나 알고 싶었다. 그가 작가인만큼 작품을 통해서 그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변신이라는 제목의 책을 구입했다. 몇 페이지를 읽어가다가 바로 성경 읽기와 같은 어려움을 느꼈다. 환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 정신마저 혼미해져 곧바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 지 벌써 3년, 아니 4년이 지났나 보다. 왜 그랬을까. 짧은 내 인생에 혼돈의 시절이라할 만한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좋아하던 단어는 고독과 우수였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즐겨 들었고 카프카의 소설 역시 진정한 고독이 아닌 사치놀음으로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음악은 직관적이었지만 문학은 그렇지가 않다. 보다 집중력이 필요하고 고도의 이해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의 소설을 다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내 스스로 지적 능력을 의심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책을 덮고 난 후 결국 내 능력을 의심하게 되어버렸고 카프카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그나마 <변신>은 나은 편이었다.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 '심판'은 작가가 제정신으로 이 글을 썼다고는 보여지지 않았다.

<변신>
여유롭지 않은 집안의 가장으로써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독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더 이상 수입을 벌어들이지 못한 채 효용 가치를 상실한 그는 더군다나 독충이기 때문에 가족으로서의 가치조차 점점 상실해 간다. 처음에는 형체와는 관계없이 자신이 인간임을 자신하지만 날이 갈수록 독충으로서의 본능에 익숙해짐에 따라 자아는 파괴되어 가고 고독과 허무 속에 자신을 가둬간다. 아무리 가족들에게 자식으로서 형제로서의 모습을 인정받으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냉정한 사과 세례를 받고 썩은 사과를 등에 박은 채 서서히 죽어간다.

카프카는 그레고르를 통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고독을 얘기한다. 수입 좋고 멋들어진 성공적인 인생 속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이 보기 좋은 조건에 기인하는 것일 뿐 진정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오는 고독의 고통은 등에 박힌 사과가 살과 함께 썩어들어가는 고통과 비례한다. 고독은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심판>
거대 은행의 부장으로 근무하는 요셉 K. 어느 날 그는 기소되어 체포당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재판소의 실체는 소설의 끝까지 드러나지 않고 오직 주변인물들을 통해 암시될 뿐이다. 요셉 K는 실체도 드러내지 않은 재판소에 항거해 보지만 결국 무죄인지 유죄인지도 모른 채 소송에 계속 말려들다 칼로 심장을 도려냄 당하는 처참한 최후를 당한다. 이 소설은 요셉 K의 심리상태와 나름의 논리로 재판소에 항거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여 처음에는 잘 읽혔지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글의 구성 때문에 갈수록 흥미를 잃게 되었다. 특이할만한 점은 분명 환상인데도 마치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처럼 꾸며내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권력에 대한 무력함을 표현하려 했다는 것으로 부족한 나의 이해를 대변해야겠다.

이제 세월은 흘렀고 더이상은 절망과 고독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다. 물론 때로 재즈 선율 속에서 위스키 한잔을 벗하며 분위기를 잡아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카프카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모독스러운 일이 되겠는가! 작품이 작가의 입장과 그가 처했던 현실을 대변한다고 했을 때 평생을 뼈저리게 느껴야했던 고독감을 나는 그저 유희로써 즐기고자 한다면 작가의 대한 큰 모독일 것이다. 그러나 무게의 경중을 떠나 많은 사람들 속에 함께하면서도 느끼게 되는 고독은 자신만의 것이다. 모든 것이 진지함이 희화화 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고독 마저도 놀이로 즐겨버리고 말자. 그것이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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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아는 만큼 들린다
최영옥 지음 / 문예마당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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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클래식은 정말 아는만큼 들린다. 또 이해한만큼 더 잘 들린다. 게다가 조금만 노력하면 대중음악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선사해 준다. 최영옥 씨는 우리 땅에서 클래식이 얼마나 오해받고 있는가를 현실적인 예로써 보여준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클래식이 우리나라에서 가지는 위상과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 등과 관련하여 매우 적절한 실례들이어서 무척이나 공감이 갔다.

클래식... 어렵지 않다... 누구나 친해질 수 있으면서도 고급음악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초반 분위기는 잘 잡았지만... 결국 뒤로 갈수록 클래식 잡학사전이 되고 말았다. 제목처럼 아는 만큼 듣게 하려고 한건지 각 시대순, 작곡가순, 각 파트별 연주가순으로 나열하고 끝나버린다. 용두사미랄까.. 처음엔 실제적인 이야기들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뒤로 갈수록 단순 설명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작가가 초반의 애정을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끌고가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마디로 아쉽다는 생각이다. 단순 설명일지라도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종종 가질 수 있는 그 음악가, 그 작품, 그 연주자에 대한 에피소드 정도는 달아서 더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었을텐데...그래도 클래식에 대해 다시금 애정을 붙여준 쉬운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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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기둥 1
송대방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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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미지아니노의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펼쳐지는 밀도 높은 지식의 향연. 스릴러 혹은 추리물로서의 긴장감은 후반으로 갈수록 형편없이 빈약해지면서 허약한 결말을 내지만 거대한 강줄기 같은 그림과 연금술에 대한 지식으로 2권 짜리 장편 소설의 분량을 채워내고야 말았다. 위대한 미술가들의 그림 속에 숨겨진 연금술사들의 비밀스런 결사 또는 헤르메스를 향한 간절한 기도처럼 작가 역시 신앙으로 승화된 헤르메스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다. 결국 작가는 이 시대에 새로운 프리메이슨을 만들고자 하는 혐의를 벗을 수 없게 되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2권의 책 속에서 무한에 까까우리만큼) 헤르메스에 대한 설명은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로움과 놀라움으로 시작했던 마음을 점점 지치게 만든다. 참신한 지적 미술사 스릴러로 봤더니 이건 헤르메스의 부활을 위한 연금술사들의 음모서가 아닌가!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들의 聖畵 속에 잔재된 헤르메스의 흔적과 우의적인 표현들을 설득력있게 설명하면서 이끌어간 작가의 노고와 방대한 지식에 찬사를 보낸다. 그것이 비록 이단적이고 기독교인들을 모독하는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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