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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 신원문화사 / 1993년 3월
평점 :
절판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인내였다. 혼돈의 시절, 절망과 고독을 사치스럽게 탐닉하던 그 때에 카프카를 알게 되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이나 알고 싶었다. 그가 작가인만큼 작품을 통해서 그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변신이라는 제목의 책을 구입했다. 몇 페이지를 읽어가다가 바로 성경 읽기와 같은 어려움을 느꼈다. 환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 정신마저 혼미해져 곧바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 지 벌써 3년, 아니 4년이 지났나 보다. 왜 그랬을까. 짧은 내 인생에 혼돈의 시절이라할 만한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좋아하던 단어는 고독과 우수였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즐겨 들었고 카프카의 소설 역시 진정한 고독이 아닌 사치놀음으로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음악은 직관적이었지만 문학은 그렇지가 않다. 보다 집중력이 필요하고 고도의 이해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의 소설을 다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내 스스로 지적 능력을 의심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책을 덮고 난 후 결국 내 능력을 의심하게 되어버렸고 카프카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그나마 <변신>은 나은 편이었다.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 '심판'은 작가가 제정신으로 이 글을 썼다고는 보여지지 않았다.
<변신>
여유롭지 않은 집안의 가장으로써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독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더 이상 수입을 벌어들이지 못한 채 효용 가치를 상실한 그는 더군다나 독충이기 때문에 가족으로서의 가치조차 점점 상실해 간다. 처음에는 형체와는 관계없이 자신이 인간임을 자신하지만 날이 갈수록 독충으로서의 본능에 익숙해짐에 따라 자아는 파괴되어 가고 고독과 허무 속에 자신을 가둬간다. 아무리 가족들에게 자식으로서 형제로서의 모습을 인정받으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냉정한 사과 세례를 받고 썩은 사과를 등에 박은 채 서서히 죽어간다.
카프카는 그레고르를 통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고독을 얘기한다. 수입 좋고 멋들어진 성공적인 인생 속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이 보기 좋은 조건에 기인하는 것일 뿐 진정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오는 고독의 고통은 등에 박힌 사과가 살과 함께 썩어들어가는 고통과 비례한다. 고독은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심판>
거대 은행의 부장으로 근무하는 요셉 K. 어느 날 그는 기소되어 체포당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재판소의 실체는 소설의 끝까지 드러나지 않고 오직 주변인물들을 통해 암시될 뿐이다. 요셉 K는 실체도 드러내지 않은 재판소에 항거해 보지만 결국 무죄인지 유죄인지도 모른 채 소송에 계속 말려들다 칼로 심장을 도려냄 당하는 처참한 최후를 당한다. 이 소설은 요셉 K의 심리상태와 나름의 논리로 재판소에 항거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여 처음에는 잘 읽혔지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글의 구성 때문에 갈수록 흥미를 잃게 되었다. 특이할만한 점은 분명 환상인데도 마치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처럼 꾸며내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권력에 대한 무력함을 표현하려 했다는 것으로 부족한 나의 이해를 대변해야겠다.
이제 세월은 흘렀고 더이상은 절망과 고독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다. 물론 때로 재즈 선율 속에서 위스키 한잔을 벗하며 분위기를 잡아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카프카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모독스러운 일이 되겠는가! 작품이 작가의 입장과 그가 처했던 현실을 대변한다고 했을 때 평생을 뼈저리게 느껴야했던 고독감을 나는 그저 유희로써 즐기고자 한다면 작가의 대한 큰 모독일 것이다. 그러나 무게의 경중을 떠나 많은 사람들 속에 함께하면서도 느끼게 되는 고독은 자신만의 것이다. 모든 것이 진지함이 희화화 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고독 마저도 놀이로 즐겨버리고 말자. 그것이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