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은 책 3
제씨 펜 루이스 지음, 채대광 옮김 / 좋은씨앗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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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꺼운 책이 아닌데 책을 읽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이다. 참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꾸준히 참고 읽어 보았다.
저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십자가에 대한 것이다. 요즘 시대에 강력하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 같다. 무기력하게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정신이 번쩍 나게 말하고 있다. 십자가의 진리와 능력으로 무장한다면 강력한 그리스도인이 될 거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십자가란 무엇인가?
먼저 십자가는 모든 것에 중심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류 구원의 중심인 동시에, 죄, 세상, 육체, 사탄에 대한 승리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십자가 바로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는 새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이전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성령님께서 우리는 새롭게 창조하셔서 예수님 닮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과 부활이라는 것을 맛보게 된다. 즉,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 속에서 영적인 삶을 추구해야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영적인 길을 따라 행하라고 말하고 있다.
첫째, 항상 영의 일을 생각하라.
둘째, 성령의 인도하심에 늘 순종하라.
셋째, 하나님과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을 알아라.
넷째, 영적 생명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하라.
우리가 이러한 영적인 일을 행할 때 생기는 갈등의 부분에 대해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이 대적의 권세에 맞서 굳게 설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우리가 이러한 십자가를 알고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간다면 영적 부흥을 일으켜야 한다. 이러한 영적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성령님과 함께 동역할 수 있는 방법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무한한 능력을 주는 십자가의 도는 무엇인가? 저자는 십자가의 도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하시려는 유일한 방법에 대한 하나님의 내면의 생각이 표출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능력은 바로 십자가의 말씀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재창조하시는 길에 관하여 하나님이 제시하신 유일한 길이 바로 십자가의 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통해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여야만 한다.
어떻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다음 2가지가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첫 번째, “주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대속 사역을 모두 완성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이제 그분의 심부름꾼인 저는 주님이 갈보리에서 이루신 일을 근거로 죄인인 여러분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로 초청합니다.”
두 번째, “구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은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죽으심을 여러분에게 실제로 적용시켜 주십니다. 그분의 죽으심이 당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살아계신 주님께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의 경우에서는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즉, 부활만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로 죽으셔서 우리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만 한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측면과 부활이라는 측면을 동시에 강조하여만 올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저자의 글이 들어 온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읽은 책이다. 그리고 책 또한 여행하는 동안 나의 부주의로 많이 찢어지고 깨지게 되었다. 이런 책의 모습 속에서 더욱 십자가 의미가 내게로 다가 온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십자가의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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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여, 일어나라 - 교사의 관심과 열정이 주일학교를 살린다!
최윤식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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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나라의 교육이 많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의 무너지면서 우리의 아이들은 사교육의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물론 대도시의 경우 더 치열하겠지만, 지방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제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주말에 교회에 나가는 것이 사치라고 생각하고, 부모들도 아이를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더 심해짐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교육의 현실에서 교회의 주일학교는 쇠퇴는 거의 모든 한국 교회의 고민이 되어가고 있다. 점차적으로 교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인성 교육은 사라지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교회의 주일 학교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해답을 있는 것일까? 예전 같았으면 교회의 주일 학교의 교육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전략과 이에 따른 멀티 미디어 교육 등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론적인 것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을 몰라서 현 주일학교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 책을 읽는 나도 이 의견에 동조한다. 그리고 저자도 이 책에서 주일학교를 부흥시키는 방법론을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먼저 주일학교를 맡고 있는 교사의 마음가짐을 다시 하라 라고 말하고 있다. 즉, 주일학교를 섬기는 교사는 먼저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없이 주일학교를 부흥시키는 것은 그것은 지금의 한국 교회의 양적인 팽창의 부흥과 일맥 상통한 이야기 이다. 결국은 겉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은 것이다. 즉, 진실한 회개 속에서 내적인 성장에 집중하여만 든든한 반석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주일학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 인 것이다.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의 학생 수는 많기 때문에 부흥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진정한 부흥이 필요한 것이다.
주일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그 헌신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이 점차적으로 짐으로 여겨지고, 부담으로만 여겨진다면 우리 교사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닌 그냥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면 저절로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아이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이렇게 하라 라는 기준만을 정해서 아이를 교육시킨다면 그것은 바로 바리새인들이 정죄한 것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기도하면서, 이 사역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뜻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능력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줄 것이다. 우리 교사는 우리 기독교의 미래를 담당하고 있는 최후의 저지선이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깨어 일어나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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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마음 - 위대함에 이르는 하나님의 비밀
데이빗 케이프 외 지음, 이상준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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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명한 토미 테니와 데이빗 케이프와의 공저의 책이다. 물론 두 분 모두 존경 받을 만한 목사님이시다. 그러나 종의 마음으로 섬김을 행하는 일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이나 일은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 부부의 사역에서 볼 수 있다. 정말 안정적인 사역장소를 놓아두고 그 험한 길은 하나님께서 명령한 대로 순종하면서 나가기는 쉽지가 않다.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섬김의 리더쉽이 한창 붐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섬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도 말씀하셨듯이 인자는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섬기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마음으로 사셨다. 그래서 우리는 왕이시면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머리로만 종이라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종이 되고 싶지 아니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종으로 일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종의 취급을 받고 싶지 않는다는 말로 하고 있다. 그렇다. 실제로는 우리는 종으로 잠깐 일할 수 있지만 정말로 종의 신분은 되고 싶지 아니 한다. 이러한 모습으로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살아가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점점 이런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생활화하는 이런 섬김의 생활화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데이빗 케이프의 사역에서 강력한 도전 의식을 받는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순종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매일 섬김이 될 수 있는 일곱 가지 열쇠를 가지고 순종하는 일을 해 보아야겠다.
책의 내용 중에서 나는 늘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땅에서는 섬김의 수건으로, 하늘에서는 성령의 검으로 싸워야 하다는 저자의 말이 새롭게 다가 온다. 우리가 섬김의 수건으로 모든 사람에게 나아 간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모든 땅에 펼치게 되는 중요한 무기가 될 것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하나님의 둘째 계명을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섬김의 수건이 정말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 우리가 종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되고, 바로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펼칠 수 있는 일이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신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가 되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도 제자 훈련 중에 한 프로그램으로 아내의 발을 씻어 주는 세족식이 있다. 이 의미가 이제는 나의 마음 속에 잘 다가온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정말 종의 마음이 없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종의 마음을 잘 기억한다면 누가 나의 주인인가를 얼게 되고, 그러면 어떻게 주인을 기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의 주인이신 하나님 저는 당신의 종이 되고 싶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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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도가 빚어낸 하나님의 가능성
박은희 지음 / 두란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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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렇게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가 있을까? 생각을 하게 하는 엄마이다. 물론 아이의 나이가 이 정도일 때는 지금보다는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계획적으로 교육시키고, 체계적으로 양육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공부시키기 위해 책을 사주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저자는 그 돈으로 복음 전도에 사용하고 6세 이전까지는 성경만을 읽어 주었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정말 너무한 부모가 아닌가 하는 마음을 들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본인도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책을 수 십권 이상 읽어본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양육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책이 정말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책 속에 나와 있는 방법대로 양육을 한다. 그러나 양육과 교육의 경험이 생김에 따라서 예전에 읽던 책이 최고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점점 많은 양육 책들을 읽음에 따라서 더 혼란스럽게도 되고, 자기 자신만의 양육이나 교육관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특히,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쓴 양육의 서적의 경우 내가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별로 양육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군!” 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 때는 좀 더 실용적이고, 좀 더 아이가 빨리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원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에 와서 보면은 최고의 양육과 최고의 교육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로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청지기의 마음으로 양육과 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 아이가 내 소유라는 개념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저자도 이야기 한 것처럼 아이가 우상이 되기 시작하게 되고, 아이를 비교하게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어떤 교육을 받으면 우리 아이도 그런 교육을 받게 하려는 마음이 매우 크다. 그러나 좀 마음을 비우고 내려 놓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알려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선한 길로 가는 동안에 늘 행복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속에서 연단이라는 불로 정금같이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길을 계획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한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아브라함이 사라와의 사이에게 자식이 생긴다는 것을 굳게 믿고 오래 참았으면 지금의 중동 상황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선한 뜻을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교육과 양육에 별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늘 하나님께서 기도하면서 그 뜻을 구하고,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욕심이 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욕심을 버린다면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더 큰 비전과 사명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면이 있는 부모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아이에 대한 많은 깨달음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 드린다. 우리는 기도로써 묵묵히 우리의 아이들은 후원할 뿐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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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정재영 지음 / 풀빛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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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흥미롭게 서양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도시를 여행하면서 철학을 이야기 한다는 내용이다. 철학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우리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나름대로의 답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의 가치관을 정립시켜 주는 가장 기본이 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라는 학문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철학이라는 학문은 머리가 아프며, 철학이라는 책은 쉽게 읽어 나갈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좀 더 쉽게 철학의 흐름을 알려주는 방법으로 이 방법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도시 속을 여행하면서 철학자들과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 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떻게 우리에게 철학의 여행 코스를 만들었는가? 그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시간 순의 철학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지금 이 순간, 현재에서 철학의 명제를 삼고 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던 의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제목에서 나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관점에서 현대 철학의 지도를 새로 그리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저자의 관점인 것이다. 이 저자의 관점에 우리가 어떻게 동의할 것인가? 아닌가? 는 우리 스스로가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여행의 출발점을 비엔나 라는 도시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과학적 세계관을 토해서 세상을 바라 본 비엔나 학파, 그들은 절대적인 과학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리에서 만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관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세계관에 일침을 놓는 포스트모더니즘, 그러나 이것으로 올바른 철학관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모순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다른 하나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리얼리즘’ 이라고 부르고 있다. 과연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지는 의심스럽다.
그는 이렇게 우리에게 자신이 제시한 의제의 해답을 우리 스스로가 찾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철학사의 가장 큰 흐름이 있는 근대 철학으로 우리를 여행시키고 있다. 근대에서 우리가 대부분이 알고 있는 철학자들이 다 나온다. 데카르트, 존 로크,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도시 여행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그가 근대에 대하여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현대의 철학이 근대의 철학을 벗어나기 위한 탈 근대화 프로젝트의 개념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의제에 대하여 답변하기 위해서는 근대를 알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의제에 대해서 나도 저자처럼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주의로 생각하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모순 없는 절대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대표적인 철학자의 책들을 읽고 싶은 자극을 또한 받았다. 철학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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