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과 마요네즈
나나난 키리코 지음, 문미영 옮김 / 하이북스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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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기름종이를 사진 위에 대고 희미하게 비치는 사진의 윤곽을 따라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릴 때 곤란한 점의 하나가 세세한 부분까지 따라 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진이 생각만큼 선명하게 기름종이에 비쳐지질 않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윤곽'만을 따라 그릴 수 있을 뿐이었고, 희미한 부분들은 생략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KIRIKO NANANAN의 그림은 바로 이렇게, 사진을 먼저 찍어 놓고 그 위에 종이를 대고 그린 게 아닐까하는 혐의를 두고 싶을 만큼 '기름종이 그림'의 느낌과 가깝고, 그런 의미에서 사진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만화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이 독특한 그림체는 평범한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을 표현하는 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객관화시키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잘 어울린다.

<호박과 마요네즈>의 등장인물들은 정면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옆모습이나 뒷모습, 혹은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간혹 얼굴이 드러날 경우, 그들은 멀리에 서 있어서 얼굴이 뚜렷하지 않거나, 담배를 피우느라 얼굴의 일부가 손에 가려진다. 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긴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얼굴의 상당 부분이 머리카락에 가려져 버리는 것이다.

작가가 이렇게 자신의 주인공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뒤에서나 옆에서, 혹은 멀리서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필사적인 노력인지도 모른다. 정면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되면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작가의 시선은 흔들리게 될 것이므로. 또 어쩌면 그것은 도시에서의 일상과 익명성을 표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인지도 모른다. 도시에서의 만남은 결국 상대에게 등을 보이거나, 혹은 상대의 등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므로.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주인공 츠치다의 독백은 스토리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이다.(실제로 이 이야기는 츠치다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츠치다의 독백으로 끝난다.)

독백은 제대로 사용하면 작품에 윤기를 더해주는 거름의 역할을 해주지만 자칫하면 작품에 똥칠하는 격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츠치다의 독백은 생략되어 있는 상황을 슬쩍 설명해 주거나, 그림으로 표현된 상황만으로는 읽어내기 힘든 츠치다의 심리를 표현해 준다.

글로써 상황을 설명하거나 등장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이유는 대개 작가의 역량 부족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황과 감정을 만화적으로 표현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냥 쉽게 '말'로 설명하고 넘어 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츠치다의 독백은 작품에 문학적인 느낌을 더해줄 정도로 작품과 잘 어우러져서,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묘사되어 자칫 건조하게 느껴지기 쉬운 스토리를 풍부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 오는 길에 슈퍼에서 파와 생선을 사고
- 국수집 앞을 지나면서는 배기구에서 풍겨나오는 맛있는 냄새를 맡으며 세이와 수다를 떨고
- 이런 사소한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어제 널은 빨래, 세이가 걷었네.
-나와의 약속에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칼같이 시간을 맞추어서 하기오가 왔다.
-세이가 잊고 간 아직 빨지 않은 옷이 아까워 빨 수가 없다.
-세이의 체취 때문에 빨 수가 없다.

'우리의 생활은 매일이 일상'이다. 그 '흔해빠진 일상'의 어느 한 순간, 문득 스스로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낯선 만화방의 진열장 한 쪽에서 하늘색 표지의 이 만화 <호박과 마요네즈>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그 낯선 만화방에서 <호박과 마요네즈>를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뭔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만화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은 아주 조금, 풍요로워질 것이다.

- 우리들의 이 흔해빠진 일상은 실은 아주 망가지기 쉬워서
- 끝내 잃어버리지 않는 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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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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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만에 이 시집을 펼쳐 보았다. 그것은 어떤 그리움 같은 것? 최근에 한 친구에게 이 시집을 추천해주었고, 곧 후회했다. 이 시집에 담겨있는 시들은, 아름답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 것들은 처.절.하.게. 아름답다. 아아, 절망과 죽음의 이미지들이 풍겨내는 아찔한 향기. 그 매혹.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들은 '까무라쳤다 10년 후에 깨어나'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나에게 다가온다. 피칠갑된 美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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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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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몸이 아파 병원엘 가게 되면, 늘 나를 주눅들게 하는 것이 있다. 알 수 없는 암호들로 이루어진 처방전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고 그 처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런 암호에 가까운 전문용어들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왠지 그게 속임수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성경 속의 '말씀'을 어려운 글과 언어(라틴어였다던가..?)로 기록하고 독점함으로써 '보다 신에 가까운 자'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누리던 저 중세시대의 종교인들처럼, 환자에대한 의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속임수... 처방전 속의 그 도무지 알 수 없는 암호문을 해독해보면 뜻 밖에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예를들자면 '이 환자는 열이 좀 높은 것일 뿐이니까, 해열제 주사 한 방 놔주고, 해열제 알약 두 알씩(사실은 한 알이면 족하지만)해서 사흘치(사실은 하루치면 족하지만)를 조제해주시고 단가(수가?)높은 영양제 두세알씩을 같이 넣어서 조제해주세요.' 뭐, 이런식으로... 그리고 병명을 궁금해하는 환자에게 역시 환자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문 식의 병명을 알려줌으로써 약간의 두려움을 심어준 후 '안심하세요'라는 말로 전능한 의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과 계약된 병원 앞 약국의 이름과 위치를 일러주는 자상함을 잊지 않음은 물론이다.

나름대로의 음모론... ^^ 그렇다. 나는 어렵거나 전문적인 용어 혹은 관념어들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신용하지 않는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보다 쉬운 말로 자신의 지식을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일찌기 예수께서 비유로 말하기를 즐겨하셨던 이유도 그것이다. 진리는 결코 어려운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다만 행하기가 어려울 뿐.)

그런 의미에서 김규항은, 그의 글을 통해서만 만나봤을 뿐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오랜 공부와 치열한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르고 상식적인 눈을 가지게 되었고, 그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대해 알기 쉽게 이야기해준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세상에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고, 그의 글 속에 드러나있는 그의 생활의 모습을 보며 나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고 부끄러워할 수 있었다. 책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책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김규항의 글에는 하늘을 쳐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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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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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처럼 가볍다는 말은 좋은 의미일까, 나쁜 의미일까? 화려하고 경쾌한, 한 마디로 쿨(Cool)한 삶을 그럴듯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들은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이미 기성사회에 편입해 단 맛 혹은 쓴 맛을 보고 있는 세대라면 경박스럽다며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그렇듯 쉽게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결론지어 버릴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역사의 현장, 끊임없는 변화의 순간을 살아온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은희경의 장편소설 <마이너리그>는 바로 그 '역사의 현장, 변화의 순간'을 살아온 4명의 고교동창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58년 개띠 동창생 네 친구의 얽히고 설킨 인생을 따라가면서 '마이너리그'란 상징어로 우리사회의 '비주류',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해당될 수밖에 없는 '2류 인생'의 역정을 가볍고 경쾌한 문체로 그려낸다.

어느날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함께 체벌을 받았다는 사소한 이유가 계기가 되어 '4인방'으로 얽혀버린 김형준, 배승주, 조국, 장두환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유신, 긴급조치, 10·26에서부터 12·12, 5·18, 삼청교육대, 재일교포간첩단사건, 6월 항쟁, 92년 대선, IMF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이 이들의 삶의 '배경'으로 펼쳐진다.

많은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이들도 그 역사와 변화를 이끌어가는 '메이저'의 위치에는 서지 못한다. 역사적인 사건들은 늘 이들의 곁을 스쳐지나갈 뿐이고, 간혹 이들과 정면에서 조우할 경우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눈앞의 삶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친다. <b>우리가 <포레스트 검프>를 보며 역사란 것이 그렇게 우연이 겹친 것에 불과하냐는 야유를 보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소설도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b>

그러나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휩쓸려버리는 풍선처럼, 이들의 삶도 역사와 변화의 바람에 쉽게 휩쓸리고 흔들린다. 물론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삶이 흔들리는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이 소설의 작가 은희경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은 ......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삶이란 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사회 속에서 모양이 만들어지고 구부러지고 닳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서가 아닌 '작가의 말'같은 다른 형식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은희경은 '작가의 말'을 통해서 어느 평론가보다도 훌륭하게 자신의 작품을 요약하고 핵심을 드러내 놓았다. 고등학교 때의 국어 문제를 풀듯이 '이 소설의 주제는 무엇인가?'가 궁금한 독자라면 굳이 소설을 읽을 필요없이 '작가의 말'만 읽어보아도 충분할 지경이다. 그러나 '작가의 말'의 어느 부분을 읽어보아도 소설 본문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에 미만한 갖가지 허위의식, 즉 패거리주의 학벌주의 지역연고주의 남성우월주의 등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마이너 인생을 애증으로 감싸안는다. 독자들은 좌충우돌하는 4인방의 행태에서 웃음과 동시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들 4인방의 비루하고 남루한 삶이 남의 이야기,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 그것이 바로 경쾌하고 재미있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농담으로 뭉쳐진 듯한 이 소설을 마냥 웃으면서 넘겨보다가도 문득, 입맛이 씁쓸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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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1 - 동터오는 모험시대
오다 에이이치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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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아동만화인 듯 보이는 표지로 인해 오랫동안 스쳐지났던 만화. 아아 그러나 이 작은 책 속에 그토록 넓고 신나는 세상이 들어있을 줄이야. 혹시나 하고 1권을 집어든 저는 단숨에 21권까지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곧 후회하였지요. 이렇게 유쾌한 만화는 조금씩 아껴보는 것인데... 아아.. 아까워라.. 이 작가는 어린 시절보았던 꼬마바이킹 비키로 인해 해적이 좋아졌고, 해적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어졌다고 하는군요. 저도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장르는 환타지 활극 소년 해적 모험물. 20세 이상은 감상을 삼가해주시구요,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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