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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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처럼 가볍다는 말은 좋은 의미일까, 나쁜 의미일까? 화려하고 경쾌한, 한 마디로 쿨(Cool)한 삶을 그럴듯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들은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이미 기성사회에 편입해 단 맛 혹은 쓴 맛을 보고 있는 세대라면 경박스럽다며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그렇듯 쉽게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결론지어 버릴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역사의 현장, 끊임없는 변화의 순간을 살아온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은희경의 장편소설 <마이너리그>는 바로 그 '역사의 현장, 변화의 순간'을 살아온 4명의 고교동창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58년 개띠 동창생 네 친구의 얽히고 설킨 인생을 따라가면서 '마이너리그'란 상징어로 우리사회의 '비주류',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해당될 수밖에 없는 '2류 인생'의 역정을 가볍고 경쾌한 문체로 그려낸다.

어느날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함께 체벌을 받았다는 사소한 이유가 계기가 되어 '4인방'으로 얽혀버린 김형준, 배승주, 조국, 장두환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유신, 긴급조치, 10·26에서부터 12·12, 5·18, 삼청교육대, 재일교포간첩단사건, 6월 항쟁, 92년 대선, IMF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이 이들의 삶의 '배경'으로 펼쳐진다.

많은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이들도 그 역사와 변화를 이끌어가는 '메이저'의 위치에는 서지 못한다. 역사적인 사건들은 늘 이들의 곁을 스쳐지나갈 뿐이고, 간혹 이들과 정면에서 조우할 경우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눈앞의 삶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친다. <b>우리가 <포레스트 검프>를 보며 역사란 것이 그렇게 우연이 겹친 것에 불과하냐는 야유를 보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소설도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b>

그러나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휩쓸려버리는 풍선처럼, 이들의 삶도 역사와 변화의 바람에 쉽게 휩쓸리고 흔들린다. 물론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삶이 흔들리는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이 소설의 작가 은희경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은 ......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삶이란 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사회 속에서 모양이 만들어지고 구부러지고 닳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서가 아닌 '작가의 말'같은 다른 형식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은희경은 '작가의 말'을 통해서 어느 평론가보다도 훌륭하게 자신의 작품을 요약하고 핵심을 드러내 놓았다. 고등학교 때의 국어 문제를 풀듯이 '이 소설의 주제는 무엇인가?'가 궁금한 독자라면 굳이 소설을 읽을 필요없이 '작가의 말'만 읽어보아도 충분할 지경이다. 그러나 '작가의 말'의 어느 부분을 읽어보아도 소설 본문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에 미만한 갖가지 허위의식, 즉 패거리주의 학벌주의 지역연고주의 남성우월주의 등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마이너 인생을 애증으로 감싸안는다. 독자들은 좌충우돌하는 4인방의 행태에서 웃음과 동시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들 4인방의 비루하고 남루한 삶이 남의 이야기,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 그것이 바로 경쾌하고 재미있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농담으로 뭉쳐진 듯한 이 소설을 마냥 웃으면서 넘겨보다가도 문득, 입맛이 씁쓸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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