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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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몸이 아파 병원엘 가게 되면, 늘 나를 주눅들게 하는 것이 있다. 알 수 없는 암호들로 이루어진 처방전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고 그 처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런 암호에 가까운 전문용어들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왠지 그게 속임수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성경 속의 '말씀'을 어려운 글과 언어(라틴어였다던가..?)로 기록하고 독점함으로써 '보다 신에 가까운 자'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누리던 저 중세시대의 종교인들처럼, 환자에대한 의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속임수... 처방전 속의 그 도무지 알 수 없는 암호문을 해독해보면 뜻 밖에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예를들자면 '이 환자는 열이 좀 높은 것일 뿐이니까, 해열제 주사 한 방 놔주고, 해열제 알약 두 알씩(사실은 한 알이면 족하지만)해서 사흘치(사실은 하루치면 족하지만)를 조제해주시고 단가(수가?)높은 영양제 두세알씩을 같이 넣어서 조제해주세요.' 뭐, 이런식으로... 그리고 병명을 궁금해하는 환자에게 역시 환자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문 식의 병명을 알려줌으로써 약간의 두려움을 심어준 후 '안심하세요'라는 말로 전능한 의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과 계약된 병원 앞 약국의 이름과 위치를 일러주는 자상함을 잊지 않음은 물론이다.

나름대로의 음모론... ^^ 그렇다. 나는 어렵거나 전문적인 용어 혹은 관념어들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신용하지 않는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보다 쉬운 말로 자신의 지식을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일찌기 예수께서 비유로 말하기를 즐겨하셨던 이유도 그것이다. 진리는 결코 어려운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다만 행하기가 어려울 뿐.)

그런 의미에서 김규항은, 그의 글을 통해서만 만나봤을 뿐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오랜 공부와 치열한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르고 상식적인 눈을 가지게 되었고, 그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대해 알기 쉽게 이야기해준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세상에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고, 그의 글 속에 드러나있는 그의 생활의 모습을 보며 나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고 부끄러워할 수 있었다. 책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책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김규항의 글에는 하늘을 쳐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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