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3
김민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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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무니없이 진지하기만한 극화체 만화에 지친 독자들에게 요절복통할 웃음을 선사하며 ‘만화란 바로 이렇게 낄낄거리면서 보는 것이었다’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자각시켜줬던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가 아쉽게도 완결편을 내놓았다.

 몰락한 왕국의 철부지 왕자 반(로뎀하윈즈 차미도르 구뜨 르브바하프 릴리 루미안)과 ‘가녀린 괴력’의 시녀 코나, ‘노령의 꼬마’ 사상가 시안 등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엽기적인 개성을 지닌 조연급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아기자기 위태위태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닥을 구르며 만화를 읽던 독자로 하여금 문득문득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러다가 왕국 재건은 어느 세월에 이루어질꼬….’

 그러나 제목에서 이미 노골적으로 왕국 재건을 암시하고 있듯이, 올바른 정치에 대한 고민을 통한 왕자의 (느린) 성장, 왕국 재건의 희망을 노래하던 음유시인의 희생, 백만 병력의 함성 소리(를 내는 구관조)와 함께 등장하는 장군 등 이야기의 흐름은 차분히 왕국의 재건을 향해 나아간다. 왕국의 재건은 어이없고 황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라는 독자의 기대는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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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1 - 탈주자
장 마르크 로셰트 외 지음, 김예숙 옮김 / 현실문화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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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래의 이야기.

 

전쟁이 터지고, 기후무기를 사용한 인류는 영하 85도에 이르는 혹한 앞에서 종말에 직면하게 된다.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백색의 세상에서, 1001량의 설국열차는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을 싣고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열차의 엔진이 멈추는 순간, 인류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열차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일의 종말을 준비하며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황금칸에서 꼬리칸까지, 엄격하게 나뉘어진 계급의 벽 앞에서 그들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 혹은 코앞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칠뿐이다. 호화로운 상류사회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황금칸 사람들과 돼지우리에서처럼 서로 뒤엉킨 채 단 한 시간만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소망인 꼬리칸 사람들. 종착역의 이름은 결국 ‘멸망’일 수밖에 없는 설국열차. 정보의 독점과 조작, 학살과 폭력이 지배하는 이 열차 속 풍경은 어쩌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올라타고 있는 ‘지구’라는 이름의 열차는 오늘도 우주 속의 무한궤도를 쉬지 않고 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미래의 이야기.

그러나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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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It Up! 2 - 만화로 보는 재즈역사 100년
남무성 지음 / 고려원북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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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다, 난해하다, 낭만적이다, 자유스럽다... 우리가 재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런 선입관들은 이제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유쾌하고 즐거우며, 심지어 ‘우끼기’까지 한 재즈입문서, <jazz it up!> 때문이다. ‘만화로 보는 재즈 역사 100년’이라는 부제가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만화로 펼쳐지는 재즈 100년의 역사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1권에서는 재즈 스타일의 변천 과정이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연주자 중심으로 서술되고 2권에서는 즉흥 연주의 개념, 난해하기로 이름난 아방가르드 재즈의 이해 등 딱딱할 것 같은 이론들이 재미나게 설명된다.

지은이 남무성은 연주자들의 개성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매력적인 그림을 선보이는데, 낮은 채도의 색감은 재즈가 가진 이미지와도 잘 어우러진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재즈전문지의 발행인, 공연기획자, 재즈비평가 등의 이력이 책의 내용에 신뢰를 더해준다.

*주의 : 재즈의 골수 매니아라면 책을 펼치기 전에 청심환을 복용할 것. 자신이 숭배하는 음악과 연주자가 희화화되는 데에서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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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y 2005-04-10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짓말의 대가로군요. 특히 별점을 보니... 그리고 오버에도 일가견이... 청심환 복용이라니 만화도 이해못할까바 오버를 하십니다.

loverror 2005-10-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과장하긴 했지만 어디가 거짓말이란 걸까요? ^^a 아.. 그런데,
실제로 '만화도 이해 못하는' 분들 굉장히 많아요. 나이 드신 분들이 요즘 영화를 보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어지럽기만 하다"고 하시는 것과 비슷하달까...
 
호박과 마요네즈
나나난 키리코 지음, 문미영 옮김 / 하이북스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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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기름종이를 사진 위에 대고 희미하게 비치는 사진의 윤곽을 따라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릴 때 곤란한 점의 하나가 세세한 부분까지 따라 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진이 생각만큼 선명하게 기름종이에 비쳐지질 않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윤곽'만을 따라 그릴 수 있을 뿐이었고, 희미한 부분들은 생략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KIRIKO NANANAN의 그림은 바로 이렇게, 사진을 먼저 찍어 놓고 그 위에 종이를 대고 그린 게 아닐까하는 혐의를 두고 싶을 만큼 '기름종이 그림'의 느낌과 가깝고, 그런 의미에서 사진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만화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이 독특한 그림체는 평범한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을 표현하는 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객관화시키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잘 어울린다.

<호박과 마요네즈>의 등장인물들은 정면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옆모습이나 뒷모습, 혹은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간혹 얼굴이 드러날 경우, 그들은 멀리에 서 있어서 얼굴이 뚜렷하지 않거나, 담배를 피우느라 얼굴의 일부가 손에 가려진다. 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긴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얼굴의 상당 부분이 머리카락에 가려져 버리는 것이다.

작가가 이렇게 자신의 주인공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뒤에서나 옆에서, 혹은 멀리서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필사적인 노력인지도 모른다. 정면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되면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작가의 시선은 흔들리게 될 것이므로. 또 어쩌면 그것은 도시에서의 일상과 익명성을 표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인지도 모른다. 도시에서의 만남은 결국 상대에게 등을 보이거나, 혹은 상대의 등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므로.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주인공 츠치다의 독백은 스토리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이다.(실제로 이 이야기는 츠치다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츠치다의 독백으로 끝난다.)

독백은 제대로 사용하면 작품에 윤기를 더해주는 거름의 역할을 해주지만 자칫하면 작품에 똥칠하는 격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츠치다의 독백은 생략되어 있는 상황을 슬쩍 설명해 주거나, 그림으로 표현된 상황만으로는 읽어내기 힘든 츠치다의 심리를 표현해 준다.

글로써 상황을 설명하거나 등장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이유는 대개 작가의 역량 부족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황과 감정을 만화적으로 표현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냥 쉽게 '말'로 설명하고 넘어 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츠치다의 독백은 작품에 문학적인 느낌을 더해줄 정도로 작품과 잘 어우러져서,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묘사되어 자칫 건조하게 느껴지기 쉬운 스토리를 풍부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 오는 길에 슈퍼에서 파와 생선을 사고
- 국수집 앞을 지나면서는 배기구에서 풍겨나오는 맛있는 냄새를 맡으며 세이와 수다를 떨고
- 이런 사소한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어제 널은 빨래, 세이가 걷었네.
-나와의 약속에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칼같이 시간을 맞추어서 하기오가 왔다.
-세이가 잊고 간 아직 빨지 않은 옷이 아까워 빨 수가 없다.
-세이의 체취 때문에 빨 수가 없다.

'우리의 생활은 매일이 일상'이다. 그 '흔해빠진 일상'의 어느 한 순간, 문득 스스로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낯선 만화방의 진열장 한 쪽에서 하늘색 표지의 이 만화 <호박과 마요네즈>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그 낯선 만화방에서 <호박과 마요네즈>를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뭔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만화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은 아주 조금, 풍요로워질 것이다.

- 우리들의 이 흔해빠진 일상은 실은 아주 망가지기 쉬워서
- 끝내 잃어버리지 않는 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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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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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만에 이 시집을 펼쳐 보았다. 그것은 어떤 그리움 같은 것? 최근에 한 친구에게 이 시집을 추천해주었고, 곧 후회했다. 이 시집에 담겨있는 시들은, 아름답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 것들은 처.절.하.게. 아름답다. 아아, 절망과 죽음의 이미지들이 풍겨내는 아찔한 향기. 그 매혹.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들은 '까무라쳤다 10년 후에 깨어나'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나에게 다가온다. 피칠갑된 美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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