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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전후사의 재인식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이별전후사의 재인식’은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8편의 단편들을 한 권으로 묶어 낸 단편집이다. 각기 제목들만 보면 내용들이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내용을 읽어 보면 몰입이 잘 안되어 읽기가 불편했다. 긴 호흡의 문장들이 많아서 인지 많이 지루한 감이 있다. 평론을 보면 아주 좋다는 내용들이 가득한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 내가 부족한 지도 모르겠다.
‘꾸꾸루꾸꾸 빨로마’는 약수터 민박집에서 요양하는 사내가 산신당에서 불러 낸 환영들의 이야기이다. 제목은 정말 궁금했는데 내용은 예상을 빗겨 갔다. 이 사내는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산신당 나오는 이런 얘기 나는 싫어한다.
‘떡 - 병점댁의 하루’는 선한 눈빛 하나만을 믿고 나이 많은 한국 농촌총각에게 시집온 젊은 베트남 여성이 구타와 성적 노예로 취급하는 술주정뱅이 남편의 학대를 참아내고 남편과 시어머니가 죽자 오갈 데가 없어진 여자가 두 아이를 키우며 베트남 부모에게 돈을 송금하기 위해 공사장을 전전하며 떡과 커피, 심지어는 몸까지 파는 이야기이다. 다큐나 TV뉴스에서 많이 봐 오던 것을 소설로 풀어 쓴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여자의 내면묘사라든지 리얼리티가 살아 그녀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메밀꽃 질 무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후일담으로 보면 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어 죽은 아버지 허생원을 그리워하는 동이의 꿈이다. 현실과 겹쳐지며 현실에 과거라는 시간적 깊이를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바람자루 속에서’는 네비게이션과 대화하는(?) 듣도보도 못한 작품이었다. 거기에 고라니와 멧돼지가 살아 움직여 환상속에서나 볼 수 있는 제일 지루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북대’는 진부면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절로 돼 있지만 실제로 오대산에 존재하는 절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북대는 택시기사인 ‘나’와 다방 아가씨 ‘밀크셰이크’가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 같은 곳이다. 석가모니와 제자 수보리의 문답이 이어지는 금강경이 나온다. 역시 몰입이 안돼 내팽개치고 싶었던 부분이다.
‘사람 살려!’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로 올라가 쓴 이야기이다. 김성기라는 한량과 하인 개똥이가 한양으로 도망가는 이야기이다. 구미호와 도깨비, 산적들, 갓 쓴 호랑이, 물귀신이 나온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퓨전 사극정도(?) 그런데 코믹이다.
‘이별전후사의 재인식’은 연인이던 두 남녀가 1997년 무렵 서로에 대한 싫증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헤어졌는데 2007년 무렵 유부남과 유부녀가 되어 팔 년 만에 불륜 관계로 재회한다는 내용이다. 연인이었을 때도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불륜이었을 때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두 남녀는 섹스하는 중에도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 한다. 박세리와 박찬호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열광하고 박지성에 흥분한다. 우리가 그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결국 두 남녀는 더 좋은 사람 만나라며 헤어진다. 불륜과 대통령 선거, 그리고 스포츠 선수. 제목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저 언덕으로 건너가네’는 임질에 걸려 그 최초의 원인제공자가 자신인지 아내인지 애인인지 자신도 모르는 또다른 관계인지(애인이 말한 스님도 포함해서)를 질문하는 희비극적 상황에 빠진 택시기사 ‘양봉주’가 그 와중에 불교 성지순례를 떠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도 절이 나오고 스님이 나온다. 그리고 불교까지.
이 책의 저자 김도연님은 2000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영화화됐지만 그리 큰 히트를 치진 못했다. 그가 지난 봄날 영화 촬영현장인 수정사를 기웃거리며 주지 수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님. 영화 관객이 천만 명이 넘으면 이 절을 아예 ‘맙소사’로 바꾸는 게 어떨까요?” 스님이 웃으시며 그러겠다고 했다는데 절 이름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 책은 구성도 독특할 뿐만 아니라 저자가 강원도 출신이라 배경도 모조리 강원도이다. 이 책을 보니 왜 단문으로 쓰라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장이 긴 탓에 지루함만 있을 뿐 몰입이 안돼 한 동안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끝까지 완주한 데 대해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